[장민석의 연장전] 브루노가 소환한 전설의 '스램제'

장민석 기자 2021. 1. 1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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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6월, 11월, 12월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받은 브루노. 그는 이 상을 한 해 4차례 받은 최초의 선수가 됐다. / 맨유 홈페이지

누가 더 나은 선수인가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일은 스포츠 팬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축구에선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메·호 대전’이 유명하다.

그리고 일명 ‘스램제 논쟁’도 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미드필더 폴 스콜스(47), 프랭크 램파드(43), 스티븐 제라드(41) 중 누가 더 뛰어난 선수였는지를 논하는 것이다. 스콜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램파드는 첼시, 제라드는 리버풀을 대표하는 레전드다. 이는 축구계 최대 난제로 꼽힐 만큼 팬들 사이에서 토론이 치열한 주제이기도 하다.

사실 나이로 볼 때 스콜스의 전성기가 램파드와 제라드보다는 빨라 단순 비교는 쉽지 않다. 스콜스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보냈다면 램파드와 제라드는 2000년대를 통틀어 빛났다.

맨유 레전드 폴 스콜스. / 로이터 연합뉴스

◇ 맨유 황금기를 이끈 스콜스

일단 우승 트로피 숫자만 비교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황금기를 이끈 스콜스가 단연 앞선다. 프리미어리그 우승 11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를 포함해 25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램파드는 13개, 제라드는 9개다. 특히 제라드는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것이 감점 요소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축구 채널 ‘원투펀치’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지금의 위상으로 올라선 데에는 맨유의 1999년 트레블이 결정적이었다. 스콜스가 없었다면 트레블도 없었을 것”이라며 스콜스가 가진 상징성을 높게 평가했다. 한 위원은 “노장이 되어서도 후방으로 처져 플레이메이커로 기회를 창출하는 능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고 덧붙였다.

작년 3월 영국의 ‘기브 미 스포츠’가 축구스타 11명을 대상으로 투표를 한 적이 있었다. 제라드가 6표, 스콜스가 5표였고, 뜻밖에 램파드는 한 표도 받지 못했다.

첼시에서 램파드와 함께 뛰었던 미드필더 데쿠가 스콜스를 선택했다. 데쿠는 “스콜스는 내가 본 미드필더 중 최고 선수이며,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티에리 앙리는 “스콜스는 생각이 빨라 맨유에 특별함을 선사한 선수”라고 말했다.

리버풀 레전드 스티븐 제라드. /조선일보DB

◇ 개인 수상과 국대 활약은 제라드

6표로 최다 득표한 제라드는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는 다재다능함과 출중한 리더십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2005년과 2007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제라드와 맞붙었던 카카는 “제라드의 리더십으로 결과가 바뀌는 경험을 했다”며 ‘이스탄불의 기적’을 떠올렸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2005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선 리버풀이 AC밀란에 전반 0-3으로 뒤지다가 후반 3-3 동점을 만든 뒤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정상의 감격을 누렸다. 맨유 레전드 브라이언 롭슨은 “제라드는 득점과 패스, 수비, 태클, 헤딩 등 뭐든지 할 수 있는 선수”라고 평했다.

제라드는 셋 중 개인 수상 내역에서 가장 앞선다. 선수노조 회원들이 뽑는 PFA 올해의 선수를 2006년 받았고, 2005년엔 UEFA 올해의 선수로 뽑혔다. PFA 올해의 팀에도 8회나 이름을 올렸다. 2009년엔 FWA(영국 축구기자협회)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램파드는 2005년 FWA 올해의 선수 수상자다. 그해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상도 받았다. PFA 올해의 팀엔 3차례 선정됐다. 2005년 발롱도르에서 호나우지뉴에 이은 2위가 램파드, 3위가 제라드였다.

반면 스콜스는 프리미어리그 20년 베스트 플레이어에 뽑힌 것을 제외하면 변변한 수상 기록이 없다. 물론 여기엔 스콜스가 라이언 긱스와 데이비드 베컴, 로이 킨 등 너무 많은 스타들과 함께 뛰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제라드는 나이가 비슷한 램파드에 비해 롱 패스와 중거리 슛, 수비 능력 등에선 우위에 있다는 평가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경력에서도 114경기 출전해 21골을 넣은 제라드가 셋 중 가장 앞선다는 의견이 많다.

첼시 레전드 프랭크 램파드. / 조선일보DB

◇ 스탯은 내가 최고, 램파드

반면 스탯은 램파드를 따라오기 어렵다. 공격수가 아닌 미드필더임에도 램파드는 역대 프리미어리그 최다 득점 5위(177골)에 올라 있다. 어시스트도 역대 4위(102개). 7위가 92개의 제라드다. 리그 출전 횟수에서도 램파드는 3위(609경기)다.

스탯에서도 알 수 있듯 기복 없는 꾸준한 활약이 가장 돋보인다. 램파드는 창조적인 패스 능력과 프리킥, 스태미너, 활동량 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다.

아스널과 맨유에서 활약한 로빈 판 페르시는 “셋과 모두 뛰어봤다. 나는 램파드를 넘버원으로 꼽겠다”며 “내게 있어 좋은 미드필더는 다른 선수보다 상황을 먼저 읽는 것이다. 램파드는 그 분야에서 최고였다. 지네딘 지단과 비슷한 수준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램파드는 2018년 방한 당시 유튜브 ‘슛포러브’에 출연해 자신이 감독이라면 자신과 스콜스, 제라드 중에 누구를 데려오고 싶으냐는 질문에 “다 필요 없다”며 농담한 뒤 “어려운 질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번리전의 브루노. / 로이터 연합뉴스

◇ 그들처럼 전설의 길을 걷는 브루노

이 ‘스램제’ 논쟁에 최근 의견을 제시한 스타가 있다. 맨유의 중흥을 이끄는 브루노 페르난데스(27·포르투갈)이다.

브루노는 작년 11월 맨유 공식 팟캐스트에 출연해 “난 그들 모두를 보고 자랐다. 폴 스콜스는 박스에 침투를 잘하고 어시스트와 득점에 모두 능하다”며 “잉글랜드에선 많은 사람들이 골을 많이 넣은 램파드를 이야기한다. 제라드도 그렇다. 하지만 스콜스는 이들과 달리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세 명 중 최고를 꼽는다면 스콜스”라고 말했다. 물론 브루노가 맨유 선수라 팔이 안으로 굽어 맨유 레전드인 스콜스를 택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브루노는 현재 ‘스램제’와 같은 전설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포르투갈까지 날아와 경기를 직접 관전한 올레 군나르 솔샤르 맨유 감독의 눈에 들어 작년 1월 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이는 맨유 역사에 남을 영입이 됐다.

브루노는 맨유 이적 후 2월에만 2골 2도움을 올리며 프리미어리그 2월 이달의 선수상을 받았다. 코로나 사태로 리그가 중단된 후 재개된 6월에도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브루노는 2019-2020시즌 22경기에 나와 12골 8도움을 올리며 맨유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2020-2021시즌엔 초반 침묵했다. 공격수들이 번번이 기회를 놓치며 공격포인트에서 손해를 보는 모습이 많았다. 기가 막힌 패스를 해도 골을 좀처럼 넣지 못하는 공격수들로 인해 케빈 더브라위너(맨시티)와 더불어 고통의 아이콘이 됐다.

브루노는 11월 들어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6골을 터뜨리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또 받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솔샤르 감독과 행복하지 않다며 감독에게 “팀 내 출전 시간 1위가 되게 해달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12월에도 맹활약을 이어간 브루노는 프리미어리그 12월의 선수상을 받게 됐다. 1·6·11월에 이어 2020년에만 4번째 수상으로 이 부문 최다 기록을 세웠다. 브루노는 2020년에만 18골 14도움으로 맨유를 멱살 잡고 끌어올렸다.

그리고 맨유는 지난 13일 번리를 1대0으로 꺾고 8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선두에 올랐다. 브루노가 ‘퍼거슨 시대’ 이후 명문의 위세를 잃고 망신살이 뻗쳤던 맨유를 다시 일으킨 것이다.

맨유를 다시 프리미어리그 선두로 올려놓은 브루노. / 로이터 연합뉴스

◇ ‘스램제’가 보는 브루노는?

브루노가 맹활약하면서 팬들로부터 전설의 ‘스램제’도 소환되고 있다. 솔샤르 감독은 “브루노는 스콜스와 비슷한 타입이다. 불같이 열정적이며 지는 것을 싫어한다. 등번호도 18번으로 같다”고 말했다.

브루노가 넓은 시야로 자로 잰 듯한 패스를 하는 장면에선 자연스럽게 스콜스가 떠오른다. 왕년의 스콜스처럼 공간이 열렸다 싶으면 과감하고 빠른 템포의 전진 패스로 기회를 만든다.

오른발 왼발을 가리지 않고 쓰며 어떤 위치에서도 정확한 슛을 쏘는 브루노는 가공할 득점력이 램파드와 닮았다는 평가도 받는다. 브루노는 2020년 프리미어리그에서 30개의 공격포인트로 램파드의 미드필더 한 해 프리미어리그 최다 공격포인트 기록(2009년 29개)을 깼다. 브루노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 순위에서 11골로 3위, 공격포인트 순위에선 18개로 해리 케인(22개)에 이어 2위를 달린다.

강력한 중거리 슛과 리더십은 제라드를 연상시킨다. 브루노는 올 시즌 초반 맨유가 부진한 가운데 자신이 솔샤르 감독의 교체를 원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직접 나서 “나와 동료, 감독의 이름을 이용해 맨유에 분란을 일으키지 말아달라”며 분위기를 추슬렀다. 스포르팅 주장일 당시엔 정기적으로 유소년 팀을 방문해 어린 후배들을 격려하고, 새로운 선수가 영입됐을 때는 앞장서서 팀은 물론 리스본 지역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 도왔다.

2019-2020시즌 클럽 브뤼헤와의 유로파리그 32강 2차전에선 함께 교체된 대니얼 제임스와 스콧 맥토미니가 교체 후 라커룸으로 바로 들어간 것과 달리 패딩을 입고 혼자 벤치에 남아 경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 지켜본 장면도 화제가 됐다.

그렇다면 ‘스램제’는 브루노를 어떻게 평가할까. 물론 생각할 부분이 있다. 스콜스는 브루노의 소속팀 맨유의 전설이고, 제라드는 맨유에 결코 져선 안 되는 라이벌 리버풀의 레전드다. 첼시의 전설이자 현 사령탑인 램파드는 현재 리그에서 브루노를 상대하고 있다.

스콜스는 최근 브루노를 극찬했다. 그는 작년 12월 맨유 공식 홈페이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브루노는 경이적인 선수다. 브루노가 들어온 후 성적만 따지면 맨유가 1위”라며 “브루노가 나보다 낫다. 나보다 더 많은 골을 기록하고, 나보다 더 많은 골 기회를 만든다. 그와 함께 뛰어보고 싶다. 내가 그의 뒤에서 뛰면 딱일 것 같다”고 말했다.

첼시 감독인 램파드는 “브루노는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며 “그는 골을 넣을 줄 안다. 맨유에서 가장 위협적인 선수”라 평했다.

반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레인저스 사령탑으로 잉글랜드 리그에서 브루노를 만난 적이 없는 제라드는 아주 박한 평가를 내렸다. 그는 작년 7월 “브루노가 중원을 장악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는 포그바가 그를 위해 많은 지역을 커버하는 것을 봤을 뿐”이라며 “맨유의 모든 경기를 봤지만 나는 페널티킥을 차려고 기다리는 브루노의 모습밖에 보지 못했다”고 했다.

6개월이 흘렀고, 브루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점점 더 지배력을 넓혀가고 있다. 지금 제라드의 생각은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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