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레전드 남현희 "개인사업자로서 답답..스포츠 지원 너무 없어"

김재현 한국문화스포츠마케팅진흥원 이사장 2021. 1. 1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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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재현의 생각있는 스타톡]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 인터뷰

사진·청년서포터스 ‘젊은나래’

펜싱 국가대표를 지낸 남현희 ‘남현희 인터내셔널 펜싱아카데미’ 대표는 베이징올림픽 여자 플뢰레 은메달 등 국제대회에서 99개의 메달을 수확한 한국 스포츠의 ‘레전드’다. 하지만 ‘레전드’도 코로나19 상황을 헤쳐나가는 게 쉽지 않다. 펜싱을 대중에 보급하기 위해 연 펜싱아카데미가 영업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TV프로그램 <노는 언니>에 출연하며 한층 친밀해진 남 대표를 서울 강남구 자곡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펜싱아카데미는 선수생활 때부터 계획했던 건가.

“계획했던 건 아니다. 중1 때 선수생활의 첫발을 내딛자 주변에서 ‘비인기 종목을 왜 하느냐’고 하더라. 그때 ‘누가 펜싱을 인기 종목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4강전에 올랐는데 나머지 3명이 모두 이탈리아 선수였다. 4강전에서 이기면 결승에 가고, 지면 3·4위전으로 간다. 그런데 만약 지면 ‘노메달’ 아닌가. 그렇게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4강전에서 이기면 진짜 좋은 일 많이 하겠다’고 속으로 빌었다. 그런데 정말 이겼다. 펜싱을 시작한 뒤 항상 펜싱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늘 ‘나는 펜싱 홍보대사’라는 생각을 했다. 국제대회에서 99개의 메달을 따고 은퇴를 하니 무얼 해야 하나 막막하더라. 올림픽 메달리스트도 이런데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펜싱 저변도 확대하고, 후배들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게 펜싱이니까, 펜싱을 알릴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

코로나19로 모든 스포츠 시설이 힘들다. 펜싱아카데미도 타격이 많을 것 같다.

“운영비용이 계속 나가고 있는 상태다. 펜싱클럽을 오픈한 이후, 펜싱이 궁금해서 찾아오는 분들이 많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정부의 지침을 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2주 정도 문을 닫았다. 그런데 회원들이 운동을 열심히 다니다가 일단 문을 닫아버리면 다시 문을 열어도 재등록 횟수가 줄어든다. 시간이 지나면 자리를 잡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또 3주 동안 운영 금지 방침이 떨어졌다. 개인 사업자로 답답할 뿐이다. 나뿐만 아니라 직원들, 은퇴한 펜싱 후배 선수들의 지원, 일자리 창출 등을 생각하면서 아카데미를 연 것인데, 지금은 이 친구들의 급여문제와 월세, 펜싱을 지도하고 싶고 알리고 싶은 시스템이 모두 다 정지가 됐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체육시설 관련 체육계에 종사하는 분들 모두가 그럴 것이다.”

정부가 좀 해줬으면 하는 게 있나.

“사실 나는 운동만 했기 때문에 정부의 시스템이나 어떤 것들을 시행하고 있는지 깊게는 잘 몰랐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서 개인 사업자로 미팅을 하다 보니 그동안 내가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은 예술·문화 쪽으로 지원을 많이 해주는 것은 좋은데, 체육 쪽에 지원이 너무 없다. 나라예산이 체육 쪽으로 돌고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얘기다.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건 건강이고, 건강에 제일 근접한 건 체육인데, 왜 스포츠를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 안 하는지 스포츠인으로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운동으로 인한 효과는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그 이상으로의 효과가 많은데 과소평가돼 있는 것 같다.

“공부하는 친구들도 공부만 해서는 잘되지 않는다. 미국만 해도 시스템을 보면 운동의 한 종목이 필수로 들어가야 한다. 앉아 공부하다가도 한 번에 1시간 정도 운동한 후 공부할 때 집중도가 더 크다고 한다. 일반인들에게도 운동은 필수다.”

펜싱아카데미에서 펜싱을 배우면서 펜싱선수가 된 사례는 없나.

“20대 중반인데 뒤늦게 엘리트 펜싱선수의 길을 가는 게 가능한지 물어보는 분이 있었다.”

뭐라고 답했나?

“나는 운동신경이 있으면 가능은 하다, 불가능은 없다고 말했다. 초·중·고 12년은 기초 체력 훈련을 위주로 많이 한다. 내가 올림픽에서 플뢰레로 은메달을 땄을 때도 스물여덟 살이었다. 어린아이들보다 성인이 펜싱 동작을 습득하는 시간이 빠르다. 그래서 성인이어도 운동신경이 좋고, 펜싱을 하려는 의지가 있으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또 그런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줄 수 있는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

펜싱은 성인이 돼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는 말인가.

“맞다. 펜싱 붐이 일어났으면 좋겠다(웃음).”

펜싱이 아직 일반인에게는 낯설다. 어떤 스포츠냐.

“나도 사람인데 (오래한 펜싱이) 왜 안 질리겠느냐. 그런데도 26년 동안 펜싱 한 우물만 파고 살았다. (직접 해보면) 그만큼 펜싱이 너무 재밌다.”

사진·청년서포터스 ‘젊은나래’



국제대회에서 99개의 메달을 따냈다. 그전까지 펜싱은 국제대회에서 우리에게 어려운 종목이었다.

“나는 정말 단순하게 가슴에 태극마크 하나만 보고, 그동안 내가 열심히 했던 시간만 생각했다. ‘나는 한국인, 넌 다른 나라 선수.’ 그렇게 일 대 일로 붙었다. ‘경기니까 이겨야 한다. 난 여기서 그냥 못 내려온다.’ 이런 마음으로 임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펜싱선수들이 모두 그런 마음가짐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펜싱 위상이 높아진 것 같다.”

펜싱에는 ‘에페, 사브르, 플뢰레’ 등 세 종목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플뢰레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학교에 그 종목밖에 없었다(웃음). 그런데 내가 종목을 정말 잘 선택한 것 같다. 이 세 종목이 조금씩 경기 룰이 다르다. 플뢰레는 조금 더 섬세하고, 공격과 수비가 나뉘어 있고, 그 안에서 두뇌 플레이를 해야 하는 종목이다. 공격과 수비가 나뉘기 때문에 나는 키가 작아도 빠른 발이라는 장점을 살려 상대방의 틈을 노릴 수 있다. 그렇게 타이밍을 뺏는 공격으로 잘하는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역시절, 다른 선수들보다 신체가 작아 ‘땅콩검객’이라고 불렸다.

“제일 불편했던 건 펜싱화와 마스크, 검의 손잡이였다. 첫 번째로, 내가 얼굴뿐 아니라 신체가 작다. 독일에서 펜싱용품을 수입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이즈가 주로 들어온다. 그래서 S나 XS사이즈가 맞는데도 무조건 M사이즈를 써야 했다. 나는 역동적으로 쉴 틈 없이 움직이는 편인데 M사이즈를 쓰니 투구도 같이 움직인다. 그것 때문에 목에 통증을 고스란히 겪었고, 일자목에 척추측만증까지 생겼다. 두 번째로 선수가 검 끝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손잡이가 맞춤형인 것이 가장 좋다. 일본이나 독일은 선수에게 맞춤형으로 손잡이를 제작할 수 있는데, 우리는 수입품을 쓰다 보니 테이프를 감거나 손잡이를 갈아 스스로 맞춰야 한다. 손잡이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검을 사용하기가 힘들었다. 손잡이 때문에 기술을 바꿨다. 내가 동작을 스스로 만든 것도 있다.”

체조에서 여홍철 선수가 자기 기술을 개발한 것과 비슷하겠다.

“나는 잘하는 선수의 동작을 모방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상대를 찌르기 위해) 팔을 돌리는 시간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짧고, 힘이 부족했다. 그래서 내가 새롭게 만들고, 최대한 단순한 동작을 선택했다.”

신발사이즈는?

“모든 성인용 신발이 220㎜부터 나온다. 그런데 나한테는 이것도 크다(웃음). 게다가 펜싱화는 일반 운동화보다 5~10㎜ 정도 더 크게 나온다. 펜싱화를 신을 때는 항상 스포츠 양말 두개를 신고 직접 제작해 일반 깔창보다 더 두꺼운 인솔 깔창을 깐 후에 운동화 끈을 양쪽 구멍이 맞물릴 정도로 묶어야 했다.”

검 손잡이, 투구, 펜싱화까지 어려운 조건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딱 한가지만 생각했다. ‘어쩔 수 없으니까.’”

남현희에게 펜싱은 어떤 의미인가.

“선수생활할 때 펜싱이 나에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전부’나 ‘희로애락’이라고 대답했다. 펜싱을 하면서 별일을 다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퇴를 하는 시점에 생각이 바뀌었다. ‘펜싱은 나에게 책임감이다.’ 선수 시절에는 이 책임감이 타인을 위한 경우가 많았다. 나라를, 팀을, 동료를 대표한다는 의미의 책임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의 미래를 위한 ‘책임감’이다. 후배들한테 타인을 위한 책임감도 있어야 하지만, 결국에 본인을 사랑하고 챙겨야만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김재현 한국문화스포츠마케팅진흥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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