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차관의 두번째 해외 출장.. 이번 이란서도 성과는 '글쎄'

김은중 기자 2021. 1. 16. 16:5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종건 차관, 전권 부여받고 종횡무진
취임 후 미국, 이란 출장.. 뚜렷한 결과물 안보여
대이란 외교 전반 지적 목소리도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1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과 이란 양국은 결과를 위한 커다란 걸음을 내디뎠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도움 주고 도움 받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통의 양자관계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고, 동결 자금을 포함한 최근 형성된 문제들을 속도감 있게 풀어나갈 것입니다.”

- 최종건 외교부 1차관, 2021년 1월14일 인천국제공항 귀국장에서

이란이 지난 4일(현지 시각) 호르무즈 해협에서 우리 선박과 선원을 나포한 뒤 억류 상황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란·카타르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14일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빈손 귀국’이라는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가 늘 강조하는 것처럼 이번 문제도 “열 사람의 한걸음으로 뚜벅뚜벅” 해결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외교부 안팎에선 최 차관의 이번 출장을 주목하는 눈들이 많았다. 이란이 “오지 않아도 된다”며 강경 대응을 하고, 문제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과의 공조도 요원한 상황에서도 강행한 출장이었기 때문이다. 또 40대 학자·역대 최연소·비(非) 외무고시 출신으로 지난해 8월 부임해 ‘실세 차관’ 또는 ‘왕(王)차관’이라 불리는 그가 이론을 넘어 실무에서의 실력을 증명할 기회이기도 했다. 최 차관은 취임 후 외교부를 ‘최종건 이전(Before Choi)’과 ‘최종건 이후(After Choi)’로 나누겠다며 직원들을 백방으로 동기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권 부여 받은 王 차관, 종횡무진했지만…

1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최종건 차관은 이번 출장에 앞서 태스크포스(TF)를 진두지휘했고 디테일까지 하나 하나 챙겨가며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한다. 코로나 백신 확보와 위안부 판결에 따른 한일관계 관리 등 여러 문제에 전선(戰線)이 걸쳐 있는 강경화 장관도 최 차관에 사실상 전권을 부여하며 나포 사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번 출장에도 통상 차관 출장에 동행하는 심의관급 실무자가 아닌 국장급 인사가 그를 수행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이란 정예군인 혁명수비대에 나포된 한국 유조선 'MT-한국케미호' 관련 대책본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최 차관은 10~12일 이란을 방문해 카운터 파트인 세이에도 압바스 아락치 외교 차관 외에도 자리프 외교장관, 헤마티 중앙은행 총재, 졸누리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장, 헤크마트니어 법무차관 등 이란 유력 인사들을 두루 만나는 ‘광폭 행보’를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11일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마네이에게 외교를 자문하는 카말 하라지 외교정책전략위원장도 만나 우리측 입장을 전달했다. 우리 선박을 나포한 혁명수비대가 하메네이 휘하에 있다. 급박하게 만들어진 출장 상황에서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만나고 온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최 차관은 “우리가 해야 할 말을 엄중히 했고, 그들의 좌절감을 정중히 경청했다”고 밝혔지만 이란이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며 자국 매체 등을 통해 우리 정부와 대표단을 비난하는 패턴이 출장 기간 내내 반복됐다. 이란 측은 선박 나포의 원인이 된 ‘환경오염’의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동결된 자금에 대한 이자까지 요구했다. 이란 정부측 관계자들은 우리 정부를 비난하면서 원색적인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12일 한국선박 나포 문제와 관련 이란을 방문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왼쪽)이 헤크마트니아 이란 법무부 차관을 만나고 있다. /이란 정부 홈페이지

특히 마무드 바에지 이란 대통령 비서실장은 최 차관이 비행기에 몸을 실은 13일(현지 시각) 밤 홈페이지와 언론의 인터뷰 기사를 올려 “이란은 구급차가 필요 없다”며 우리 정부와의 협상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 그는 우리 대표단을 ‘한국인들’이라고 지칭하며 “한국인들은 돌아가서 한국 정부로부터 이란 자산의 해제 허가를 받아오겠다고 약속했다”며 “만약 동결 자산 해제에 실패할 경우 법적 행동에 들어가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압박했다.

◇美·이란, 두 번의 출장 모두 성과는 ‘글쎄’

지난해 8월 부임한 최 차관의 첫 해외 출장은 미국이었고, 이란이 두 번째 방문국이었다. 미국 다음으로 중국, 일본도 아닌 이란을 찾는 게 파격이었고 “올 필요 없다”는 이란의 어깃장에도 승부수를 띄웠지만 결과적으로 물음표가 남게 됐다. 당초 ‘창의적 방안’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겠다던 정부가 이란 측을 압박 또는 설득할 카드 없이 오히려 숙제를 안고 귀국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1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과의 인터뷰에 앞서 준비한 메모를 들고 있다. /뉴시스

최 차관은 ‘빈손 귀국’이라는 비판에 대해 “조기 석방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본다면 사실상 이뤄지진 않았다” “결과물을 도출하지 못했다”며 일부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요구할 것들을 확실히 요구했고, 그리고 그 점에 대해선 이란 정부가 지금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 본다”고 했다.

최 차관은 “동결 자금이라고 하는 문제는 우리의 의도와 의지에 의해서 발생된 사안이 아니다. 미국 행정부가 이란에 독자적 제재를 하면서 미국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우리의 금융시스템이 그것을 준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과의 공조 문제에 대해 “미국의 신(新) 행정부가 들어서고 있는 즈음에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 ▲미국과 협의 과정을 통해 이뤄질 수 있는 것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진행하겠다”고 했다.

전직 외교부 고위 간부는 “이번 사태의 1차적 책임은 국제법을 위반해 무고한 선원과 선박을 억류한 이란의 일탈행동에 있다”면서도 “결과물의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최 차관이 밝힌 대미(對美) 공조도 미 행정부가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만큼 실제 유의미한 진전이 있기 까지 상당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선박 억류 상태가 장기화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왼쪽)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오른쪽)이 지난달 10일 저녁 서울 시내 닭한마리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최 차관은 지난 10월 취임 후 처음 가진 미국 출장에서도 한미 외교당국 간 국장급 실무협의체인 ‘동맹대화(가칭)’를 신설했다며 결과물로 들고 왔다. 그는 “미국 측이 적극 공감을 표했다”며 “(개최 시점은) 저희 목표는 10월 중순”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 국무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동맹대화에 대한 내용이 없었고, 단 한 차례도 개최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미 양국이 공감대를 재확인했다”면서도 “신행정부가 출범을 곧 앞두고 있는 만큼 공식 출범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개인기 아닌 대이란 외교 전반이 문제” 지적도

다만 외교가에서는 최 차관이나 협상단의 개인기 문제이기 보다는, 우리 정부의 대(對)이란 외교 전반에 아쉬움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길게는 2~3년전부터 이란 측이 미국 제재에 따른 동결자금 문제 해결을 원한다는 신호를 꾸준히 보내왔지만 우리 측이 적극 대응하지 못하면서 한·이란 관계의 뇌관이 될 수 있는 ’70억 달러' 문제를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조선일보DB

이번에 최 차관과 면담한 헤마티 이란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2019년 6월 방한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과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동결 자금을 한국이 나서서 풀어달라며 강하게 요구했고, 진전이 없자 그해 11월에는 유정현 당시 주이란 한국대사를 초치하는 일도 있었다.

이란의 불만이 노골화한 것은 작년이다. 지난해 7월엔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나서서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할 뜻을 드러냈다. 외무부 대변인을 내세워 “워싱턴과 서울은 주인과 하인 관계”라며 원색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비판했다. 인도적 교역에 관한 워킹그룹을 구성해 이란 문제에 대응하던 외교부가 이란 측의 보복도 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가능한 시나리오를 점검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고 한다.

특히 이란과의 의사 소통이 충분했고, 우리가 충분한 공을 들였는지에도 물음표가 남는다. 우리측 인사의 고위급 방한은 지난 2019년 11월 송웅엽 한국국제협력단 (KOICA) 이사가 외교장관 특사 자격으로 방문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란(2012년~2015년), 이라크(2016년~2018년) 대사를 지낸 최고의 ‘중동통’이지만 당시 실무 현장에 있어 실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는 아니였다.

또 정부 교섭대표단을 총괄해 지난 7일 출국했던 고경석 아프리카중동국장의 경우 지난해 3월 부임 후 이란 방문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