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정치의 모멘텀" VS "국민적 공감대 우선".. 정치권 시끌 [뉴스 인사이드]

김민순 2021. 1. 1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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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朴 사면 논쟁 수면위로
박근혜 전 대통령 형 확정 계기로 본격화
문재인 대통령 조만간 입장 발표 관측도
이낙연 대표 제안, 보선 앞둬 정치적 해석
특별사면 '선거용 선심·측근 봐주기' 비판
역대 정부 사면 대상 대부분 정치적 논란
갈등 조정·사법적 오류 시정 긍정 역할도
국민 56% 두 전직 대통령 사면에 부정적
4월 보선부터 차기 대선까지 '잠복 변수'
이명박 전 대통령(왼쪽),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제안으로 새해 벽두 부상했던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논쟁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 확정을 계기로 다시 촉발되고 있다. 박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통합정치’의 모멘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과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면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이 엇갈린다. 역대 정부가 ‘국민통합’의 명분으로 대통령 고유권한인 특별사면을 단행해 왔지만 ‘선거용 선심쓰기’나 ‘측근 봐주기’ 등 목적으로 남용됐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이 대표가 사면론을 제기한 시점은 문재인정부 레임덕(집권 말기 권력 누수 현상) 우려가 깊어지고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상황이다. 정치적 해석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 14일 대법원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형이 확정된 만큼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 발표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는 확정판결 직후 사면 여부를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문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통합’과 ‘통치’ 딜레마에 놓인 사면권

1948년 제헌헌법에 사면권이 규정된 이후 역대 정부의 사면 대상자는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특히 국회 동의 없이 대통령 결정만으로 이뤄지는 특별사면이 도마 위에 올랐던 경우가 많았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이광재 전 의원 등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고위층이나 정치인, 재벌에게 혜택이 집중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한 국민통합, 경제 활성화 등의 명분이 동원되지만 정치적 고려가 포함된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는 점에서 정당성과 형평성 시비는 늘 따라붙었다.

직선제로 선출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5공비리’ 주범들을 사면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내란·군사반란의 책임자인 두 전직 대통령과 불법 비자금 사건에 연루됐던 재벌 회장들을 풀어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부정부패 연루 정치인을 사면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불법 정치자금에 관여한 기업인과 측근들을 대거 방면한 바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원포인트 사면’하기도 했다.
노태우(왼쪽부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2018년 국회에 낸 개헌안에서 대통령의 특별사면 권한을 통제하자고 주장했던 문 대통령 역시 그 이듬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피선거권이 박탈됐던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에 대해 특별사면을 단행하고 복권했다.
3·1절, 광복절 등 특별사면이 이뤄지는 시기에는 대통령 사면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비판이 반복됐다. 부정부패나 성범죄, 인권유린 범죄 등 기본 가치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른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는 사면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사면권 행사가 사회갈등 조정과 사법적 오류 시정 등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2000년 헌법재판소는 사면법 관련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한 결정문에서 ‘사면권은 전통적으로 국가원수에 부여된 은사권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법 이념과 다른 이념과의 갈등을 조정하고, 법의 이념인 정의와 합목적성을 조화시키기 위한 제도로도 파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면권 행사를 통해 잘못된 사법적 판단을 바로 잡을 수 있고, 집회·시위 관련자나 생계형 사범, 특별배려 수형자 등 경미한 범죄를 일으키거나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사람의 원활한 교화와 복귀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연합뉴스
◆‘국민’ 빠진 사면 단행 가능할까
사면권한은 대통령 고유권한이지만 국가 운영의 ‘위임자’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국민여론을 도외시하기 어렵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이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사면을 위한 형식적 요건은 갖췄지만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재의 파면 결정을 받은 이례적인 경우다. 대통령이 사면을 단행해도 국민통합이라는 본래 취지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13일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국민’ 두 글자를 빼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의 말은 사면이 오히려 국정운영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여론도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8일 ‘전직 대통령 사면의 국민통합 기여도’를 조사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응답이 56.1%로 집계됐다. “기여할 것”이라는 답변은 38.8%였다. 국민 10명 중 6명 가까이가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효과를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진보층에서는 부정적 응답이 81.4%로 압도적이었다. 보수층(기여함 48.1%, 기여 못 함 50.1%)과 중도층(46.9%, 49.2%)은 오차 범위 내에서 긍정과 부정 응답이 팽팽하게 갈렸다.
14일 박 전 대통령 재판이 마무리되자 국민의힘 내부에선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여론이 분출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며 “당사자의 반성과 사과를 보이라”고 요구했다. 이 대표의 사면론 제기로 한 차례 당내 풍파를 겪은 데다 청와대도 유보적 입장을 보인 만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왼쪽),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연합뉴스
사면은 정치권에선 살아 있는 변수라는 인식이 강하다.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차기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 사면은 향후 정국 반전의 변수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문 대통령이) 자기 목적을 위해서 어느 때인가는 하리라고 본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현 정부는 최대한 중도·보수 유권자를 자극하지 않는 표현으로 원론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긍정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며 “사면은 민생이슈는 아니지만 중도·보수층 유권자를 끌어들일 카드가 될 수 있다. 차기 대선까지는 ‘잠복변수’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美, 대통령·각 州 각각 특별사면권 행사… 獨, ‘조건부 사면’ 의무 이행 않으면 철회

대통령의 사면은 해외에서도 논란거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우 ‘러시아 스캔들’의 핵심인물인 최측근 마이클 플린을 사면한 데 이어 최근에는 자신과 가족들에 대한 ‘셀프사면’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반발이 커졌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5년 임기 마지막 날 자신의 재정적 후원자인 억만장자 마크 리치를 사면했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딕 체니 부통령 측근을 사면하는 등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이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사면이 ‘측근 살리기’ 등에 이용된다는 비판은 우리나라와도 비슷하지만 미국에는 사면권 남용 방지를 위한 제한과 한계를 정해 두고 있다. 연방 대통령과 각 주가 각각 특별사면권을 행사하는 이원구조를 갖고 있다. 미국 연방헌법에 따른 대통령 특사 청원은 구금종료로부터 5년, 구금되지 않았으면 유죄 선고일부터 5년이 지나야 가능하다. 일부 주는 특정 범죄자를 사면할 수 없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앨라배마나 아이오와주 등은 살인과 같은 중범죄에 대해, 캘리포니아, 델라웨어 등에서는 탄핵된 경우 사면이 불가하다. 사면권 제한장치도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중죄로 2차례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판사 4명이 동의하는 주 대법원 권고가 있어야 사면이 인정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마이클 플린. 연합뉴스
독일도 연방사건은 연방대통령이, 그 외엔 각 주나 시에서 특별사면권을 행사한다. 독일은 특별사면권을 제한하는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진 않지만, 법치주의 기능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또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해서 권한 남용에 대한 우려가 적은 것으로 평가된다. 독일에서는 사면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조사가 완료되면 최종 보고서에 반드시 대상자의 인적·경제적 사항, 잔여 형기, 담당 재판부, 피해배상 여부 등을 적도록 하고 있다. 또 사면에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조건부 사면’도 가능한데,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사면을 철회하거나 반려할 수도 있다.

독일의 사면권 논란은 2007년 크리스티안 게오르그 알프레드 클라에 대한 논쟁이 대표적이다. ‘독일의 가을’이라고 불리는 테러활동으로 1982년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은 클라는 몇 차례 특별사면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이에 따라 사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진행됐다.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은 결국 클라의 뉘우침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면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사면이라는 용어 대신 ‘은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내각이 일왕(천황)의 인증을 거쳐 형의 전부나 일부를 소멸시키는 것을 말하는데, 은사 대상자를 제한하지 않는다. 일본 또한 사면 대상자의 신청으로 절차가 진행되는데, 형 선고 후 일정기간(유기징역 또는 금고의 경우 형기의 3분의 1, 무기징역 또는 금고는 10년)이 경과한 후에 사면 신청이 가능하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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