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딥키스 세례 그린데이 내한공연 끝내 무산

홍장원 입력 2021. 1. 1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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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오브락-175] 한국은 세계적인 록밴드들이 가장 공연하고 싶은 나라 중 하나다. 많은 로커들이 "한국 팬은 진정 미쳤다"고 말한다. 옆나라 일본과 어찌 그리 문화가 다르냐고도 얘기한다.

일본 사람들의 공연 문화는 대략 이렇다. 우선 큰 감흥이 없다. 크게 흥분하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팔짱을 끼고 '네가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판단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일본은 '배려의 민족'이다. 공연장에서 내가 흥분하면 주위 사람이 공연을 관람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서 '조용한 공연' 문화가 정착됐을 것이다.

한국은 다르다. '티켓값을 신나게 놀고 즐기는 것으로 뽕을 뽑겠다'는 마음가짐이 가득하다. 다수의 해외 아티스트들이 놀란다. 비영어권인 한국 공연을 왔는데 대다수 관객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가사를 다 외워 따라 부른다는 것이다. 좀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가수가 노래를 전혀 부르지 않아도 세션만으로 공연이 유지될 정도다. 관객들이 노래를 다 불러주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초청으로 '에미넴'이 한국 공연을 왔을 때였다. 뻣뻣한 태도로 관객을 대하기로 유명한 에미넴도 한국 관객의 열정을 보고 놀랐다. 능수능란한 라임으로 에미넴의 래핑을 쏟아내자 에미넴 눈이 휘둥그레졌다. 결국 그 쌀쌀맞은 에미넴이 한국 관객을 상대로 정수리에 두 손을 올려 대형 하트를 그리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만다. 호사가들은 에미넴의 본심은 하트를 그리는 게 아니었고 '너의 대갈통을 쪼개버리겠다'는 해석을 붙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전 세계에서 공연 많이 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비틀스 출신의 폴 매카트니도 한국에 공연을 왔다가 넋이 나갔고, 오아시스 출신의 노엘 갤러거는 훗날 인터뷰에서 "한국에 갈 때 좀 슬프다. 한국은 정말 좋은 곳이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놀 줄 아는 사람들이다. 보수적인 일본 사람과는 다르다. 한국인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공산주의에 갇혀 있지 않느냐. 그게 날 슬프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각설하고 또 한번의 역대급 공연이 끝내 무산됐다는 슬픈 사실을 전한다. 이게 다 코로나19 때문이다. 1년간 공연을 연기했던 미국 밴드 '그린데이' 내한 공연이 결국 취소됐다.

공연기획사 라이브 네이션 코리아는 14일 소셜미디어에 "올해 3월 24일로 예정됐던 그린데이 내한공연이 진행되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투어 일정 재조정이 불가능한 시점'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밴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아시아 팬들을 만나기를 희망하고 있다"면서 "팬 여러분들의 양해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그린데이는 지난해 3월 두 번째 내한공연에 나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이를 올해로 미뤘었다. 결국 코로나19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더 기다리지 못하고 공연을 취소한 것이다.

2010년 1월 첫 내한공연에 나선 그린데이 폭발력은 어마어마했다. 그린데이가 누구인가. 1970년대 펑크 열풍을 1990년대 판으로 재해석해 대박을 친 밴드다. 동시대 오프스프링(Offspring)과 함께 네오펑크 진영을 양분했다.

멜로딕한 '뽕키 펑크'의 대중성은 그린데이가 한 수 위였다. 1994년 나온 세 번째 앨범 '두키(Dookie)'가 대박이 터졌다. 이 앨범 하나로 사장됐던 펑크는 다시 록계를 주름잡는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온다. 3인조 멤버 구성과 3코드로 대표되는 군더더기 없는 곡, 3분을 넘지 않은 곡 길이로 대표되는 '3·3·3 법칙'으로 전 세계를 호령했다. 한국에서도 그린데이의 인기는 미국 본토 못지않다.

10년 전 열린 내한공연 당시에는 '딥키스녀'가 등장해 화제를 모았을 정도다. 관객석에 난입한 한 젊은 여성은 무릎을 꿇고 기타를 연주하는 보컬 겸 기타 빌리 조 암스트롱(Billie Joe Armstrong)에게 달려가 막무가내로 키스 세례를 펼쳤다. 일어나려는 빌리 조의 팔로 목을 감싸 안으며 키스를 했을 정도다. 곡이 끝나고 이 여성은 흥분한 말투로 "난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I deserve to die today)"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여성의 행동이 잘했다 잘못했다 평가를 떠나서 그린데이를 바라보는 한국 관객의 열정이 이 정도로 강렬했다는 뜻이다.

코로나19가 끝나고 그린데이는 언제 다시 내한공연 스케줄을 잡게 될까. 분명한 것은 다시 공연이 열릴 시점이 되면 아마 한국 관객들은 그동안 공연을 못 본 한풀이를 하듯 관객석에서 더욱 미친 호응을 보낼 거란 점이다. '보복적 관람'이라 표현해도 될까. 코로나19가 참 많은 것을 억누르고 있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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