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보행자 사망, 구호 운전자 중상..'강진 국도 참극' 그날밤 무슨일이?

조홍복 기자 2021. 1. 1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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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블랙박스]
국도 걷던 70대 노인 사망
가해 운전자, 구호하다 중상
4차례 연쇄 사고로 아수라장
지난 14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 국도 2호선에서 70대 보행자가 차량에 잇따라 치여 숨졌다. 가해 운전자 중 한 명은 구호조치를 하다 '2차 사고'로 중상을 입었다./전남소방본부

전남 강진군 강진읍 국도 한복판에서 70대 노인이 주행하는 차량 3대에 잇따라 부딪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차에 치여 쓰러진 노인을 구조하던 가해 차량 운전자 중 한 명은 ‘2차 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경찰의 조사를 토대로 참극(慘劇)의 상황을 재구성했다.

지난 14일 오후 7시12분쯤 강진군 강진읍 송전리. 생태호수공원 부근 편도 2차로 국도를 따라 A(78)씨가 걷고 있었다. 도로 변에는 가로등이 전혀 없었다. 지나가는 차량 불빛이 없으면 칠흑 같은 어둠 만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기온이 올라가 도로 표면은 결빙되지 않은 상태. 차량이 빠른 속도로 운행하고 있었다.

A씨는 강진읍에서 성전면 방면으로 걸음을 옮겼다. 귀갓길에 오른 것으로 보였다. A씨는 1·2차로 경계선에서 2차로로 약간 치우쳐 위태롭게 이동했다. 이 도로는 국도 2호선으로, 제한최고속도가 80㎞인 준(準)고속화도로다. 중앙 분리대가 있고, 갓길에 보행로가 따로 없어 평소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이다.

◇정적 깨는 ‘쾅쾅쾅쾅’

‘퍽.’ ‘끼~익.’ 둔탁한 타격음과 타이어 마찰음이 정적을 깼다. 2차로를 질주하던 B(55)씨의 로디우스 SUV 왼쪽 백미러에 A씨의 몸이 부딪친 것이다. A씨는 그대로 1·2차로 경계선에 쓰러졌다. B씨가 사고 충격에 당황하는 사이 C(여·28)씨가 운전하는 소나타 승용차가 2차로로 다가왔다. A씨를 구조할 틈도 없는 순간이었다. 소나타 승용차는 도로에 쓰러진 A씨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강진소방서 구급대는 119 신고 접수 7분 만인 오후 7시19분쯤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 다른 사고가 두 차례 더 발생했다.

119 출동 일러스트./조선DB

차량에 두 번 부딪힌 A씨의 상태를 살피던 C씨를 D(여·57)씨가 몰던 K5 승용차가 덮친 것이다. C씨는 사고 지점 후방에 다가오는 차량에 위험 신호를 알리는 안전 장치인 안전 삼각대와 섬광 신호기를 설치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맨몸으로 구조 활동을 하다 2차 사고를 당했다. 충격에 몸이 공중에 붕 떴다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진 C씨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옮겨졌다.

2차 사고는 사고 등으로 멈춘 차량이나 주변의 사람을 뒤따르면 차량이 충돌하는 사고다. 고속으로 달리던 차량에 사람이 맨몸으로 노출돼 매우 위험하다. 평균 시속이 일반 도로보다 20㎞ 빠른 고속도로의 경우 사고가 발생하면 치명상을 입는다.

◇‘2차 사고’ 치사율 60%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5~2019년)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2차 사고 사망자는 170명으로 연 평균 34명에 달한다. 이 기간 중 고속도로 2차 사고 치사율은 60%로, 일반 사고 치사율(9%)의 7배에 육박한다. 특히 야간 시간대에 전체 2차 사고 사망자의 73%가 발생한다. 시야 확보가 어려운 데다, ‘설마’하는 생각에 운전자가 주행 도로와 주변의 교통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국도에서는 규정 속도보다 10~30㎞ 빠르게 이동하는 차량이 많았다. 고속도로와 교통 환경이 비슷해 그 만큼 2차 사고 위험이 컸던 것이다.

사고는 끝나지 않았다. 2차로로 이동하던 E(여·53)씨의 아반테 차량이 쓰러진 A씨를 또다시 충격했다. 몇 분 사이에 일어난 4차례 사고에서 A씨가 3차례, 가해 운전자이자 피해자인 C씨가 1차례 충격을 받았다. 경찰은 “어떤 충격으로 A씨가 사망했는지는 현장 조사와 부검, 차량 분석 등을 거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교통사고 일러스트/조선DB

◇보행자·운전자 부주의 얽힌 참변

경찰 조사 결과 4명의 운전자는 모두 술을 마신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한 A씨가 왜 그 시각 국도 한복판을 걸었는지는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음주 후 술에 취한 상태로 도로로 진입해 무단 보행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이에 대해 경찰은 “A씨의 음주 여부에 대해 조사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강진 국도 참변은 보행자와 운전자의 부주의가 복합적으로 얽혀 발생했다. 보행자는 고속화 도로를 동네 마을길처럼 생각하고 무심코 들어왔고, 가해 차량 운전자들은 어두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전방 주시 태만으로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 구호 조치는 자신의 안전을 먼저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그렇지 못하기도 했다. 강경래 강진서 교통과장은 “운전자 4명의 과속 여부는 블랙박스 분석을 통해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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