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지역에 남은 영역 동물 고양이

송지혜 기자 입력 2021. 1. 16. 14:58 수정 2021. 3. 2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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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자기 영역에 살면서 서로 다투거나 도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고양이가 살던 곳을 인간이 밀어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최소한 죽지는 않게 해줘야 할 것 아닌가."
ⓒ시사IN 조남진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재개발 지역에 위치한 구조 고양이 쉼터 ‘이문냥이 프로젝트’ 임시보호소에서 문성실씨(왼쪽)와 권보라씨가 태평이(왼쪽)와 코딱지를 안고 있다.

4개월령 고양이 ‘코딱지’가 작은 공 하나를 이리저리 굴리며 정신없이 뛴다. 그보다 덩치가 약간 큰 9개월령 ‘미미’가 공을 빼앗다가 코딱지를 깨물고 혼자 발라당 넘어지며 한 바퀴 굴렀다. 봉사자들이 꺄르르 웃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위치한 ‘이문냥이 프로젝트’ 임시보호소에는 2020년 12월29일 현재 고양이 48마리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저마다 몸을 숨길 수 있는 안전한 집이 있고, 매일 배불리 밥을 먹으며 깨끗한 물을 마시고, 청결한 화장실을 쓴다. 임시보호소 고양이들은 ‘이문 3구역’ 재개발 지역에서 왔다. 920여 가구가 살던 이 동네는 2020년 12월 현재 모조리 철거되어 빈터만 남았다. 아파트를 짓기 위한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다.

2020년 2월, 서울 동대문구 곳곳에는 재개발·재건축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부착되었다. 드러내고 활동하기 조심스러워하던 ‘캣맘(고양이 cat과 엄마 mom의 합성어)’들이 그때 처음 얼굴을 마주했다. 이문 3구역 외곽에 사는 10년 차 캣맘 문성실씨는 ‘어떻게든 고양이를 구하자’ ‘일단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3년 전 경기 남양주로 이사해 더 이상 이문동 주민이 아닌 6년 차 캣맘 권보라씨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렇게 고양이를 구조하고 새로운 가정에 입양 보내는 ‘이문냥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폐허에 남겨진 고양이의 건강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이주가 아닌 캣맘 한 가구의 이사라면 다른 캣맘에게 고양이 ‘밥자리’를 물려주면 된다. 하지만 모든 주민이 떠난 동네에는 고양이에게 밥을 나누는 손길이 없다. 더욱이 사람들은 떠나기 전, 낡은 가구나 가전뿐만 아니라 냉장고 안에 오래 묵혀두었던 음식도 길거리에 내다 버렸다. 오물이 썩으면서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었다. 고양이들은 그곳을 지나다니다 때로 허기를 채웠다. 전염병이 돌기 쉬운 환경이었다. 문씨는 악취가 풍기는 더러운 골목에서 죽은 새끼 고양이를 몇 번씩 목격했다. 철거공사가 시작되고서는 돌과 잔해에 고양이들이 깔려 죽고 있었다.

그런데도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여전히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부서진 건물 잔해와 유리 조각을 밟고 자기의 밥자리를 찾아갔다. 문씨는 “고양이가 자기 영역에 살면서 고양이끼리 다투거나 도태되어 죽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고양이가 살던 곳을 인간이 밀어버리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최소한 잘 살던 고양이가 죽지는 않게 해줘야 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길고양이의 수명은 평균 3년으로 알려져 있다. 집고양이가 15년가량 사는 데 비해 턱없이 짧은 생이다. 길고양이가 살던 곳에서 재개발·재건축이 진행되면 그나마의 삶도 영위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문씨와 권씨는 이문 3구역 조합장을 찾아가 철거 현장 출입 허락을 구했다. 현실적으로 ‘고양이 구조’에 반색하는 조합장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고양이를 구조하는 시간을 고려하다 보면 공사가 늦어진다는 부정적인 답을 들을 확률이 높다. 또 철거 현장에서 고양이 구조자의 안전을 담보하기가 어려워 조합에서는 꺼릴 수밖에 없다. 천운이 따랐는지, 3구역 조합장은 동물권에 우호적이었다. 작은 컨테이너를 제공해 구조한 고양이를 잠시 둘 수 있도록 배려했다. 3구역 감리자는 구조자의 안전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시사IN 자료재개발 지역에 남겨진 고양이. 길고양이의 수명은 평균 3년으로, 15년인 집고양이보다 턱없이 짧다.

고양이 구조 넘어 생명 공존을 위한 일

2020년 3월, 공사가 끝나는 해 질 녘부터 구조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학생 봉사자들이 결합해 하루 대여섯 명이 나섰다. 가로등 없는 어둠 속에서 유리 잔해와 부서진 돌을 밟으며 온기 없는 동네를 걸었다. 기존 밥자리마다 간식이 든 포획틀을 두고 고양이가 스스로 걸어 들어가도록 유도했다. 10여 개 포획틀을 곳곳에 놓아두면 맨 처음에 놔둔 포획틀로 돌아가서 고양이가 잡혔는지 확인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매일 2만 보를 걸었다. 어떤 날은 9마리가 구조되었고 또 다른 날은 단 한 마리도 구조하지 못했다. 당장 부서질 것 같은 집 앞에서 고양이가 보란 듯 도망가버릴 때마다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여러 차례였다. 매일 밤을 새워가며 3개월 동안 길고양이 123마리를 구조했다.

밤새 구조된 고양이는 이튿날 아침 동물병원으로 이동했다. 전염성 질환이 있는지, 중성화수술을 했는지 검사받았다. 진료비만 수백만 원에 달했다. 갹출하며 버티던 두 사람 곁에 후원금이 모였다. 소식을 SNS에 올리면서부터다. 권씨는 “‘이문냥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공공의 힘을 느꼈다. 대학생 봉사자가 포획을 함께 해준 것처럼 동물병원에서도 살뜰히 진료해주었다. 여기저기서 기꺼이 베풀어주는 마음에 큰 의지가 되었다. 혼자서, 또 둘이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2020년 4월1일 ‘이문냥이 프로젝트’ 임시보호소를 꾸렸다. 고양이들이 구조된 후 입양되기 전까지 지내는 거점이다. 아무도 없이 홀로 지내야 했던 고양이는 사람과 다른 고양이에 대한 사회성이 모두 떨어져 있었다. 정서적으로도 취약해져 구조된 고양이끼리 공격할 우려가 있었다. 문씨와 권씨는 외부 자극을 줄이고 몸을 숨길 수 있도록 고양이가 한 마리씩 들어가 쉴 수 있는 집을 직접 만들었다. 고양이들은 시간이 지나 서서히 얼굴을 내밀어 보이고 조금씩 밖으로 나왔다. 배불리 먹고 편안히 쉬며 안정감을 느낀 다음의 일이었다.

생업을 미루어가며 문씨와 권씨는 여전히 매일 아침 8시에 고양이를 돌보러 ‘출근’한다.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조금씩 눈인사를 하고 목소리를 들려주고 어르고 달래가며 문을 열어 사료를 주고 약을 먹이며 화장실을 치운다. 그간 급작스럽게 고양이의 출산을 목격하거나 고양이들을 ‘무지개별’로 보내기도 했다. 현재 48마리가 새로운 가족을 찾고 있다. 문씨는 “3개월짜리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던 게 지금까지 왔다. 모든 고양이가 좋은 가족을 만나 ‘이문냥이 프로젝트’에 남은 고양이가 ‘제로’가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의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 추진 구역은 627곳에 달한다. 다른 지역의 캣맘들도 집이 헐리고 부서지는 현장 앞에서 고양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발을 동동 구른다. 문씨와 권씨는 서울 휘경동에서, 서대문에서, 그 밖의 수십 곳에서 고양이를 구조해달라는 연락을 받아왔다. 하지만 재개발·재건축 지역의 모든 고양이 구조를 개인 역량에 기댈 수는 없다.

2020년 1월 개정된 서울시 조례에는 ‘도시정비구역 내 동물 구조와 보호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되었다. 하지만 지자체가 직접 재개발조합을 강제하지는 않는다. 결국 어떤 조합장을 만나느냐에 따라 고양이의 생사가 달라진다. 서울시는 동물보호단체 ‘카라’와 함께 2020년 7월부터 봉천·청담·홍은·방배·중화·휘경동 6곳에서 ‘서울시 도시정비구역 동물보호사업’을 시작했다. 서울시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단순히 고양이 구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일”이다. 서울시가 1억2000만원을 지원한다. 약 200마리가 중성화수술을 받을 수 있다. 중성화수술로 개체수 증가를 막고, 안전한 곳으로 이주시키는 것이 목표다. 조금씩 고양이의 밥자리를 이동하면서 이주를 유도하지만, 재개발·재건축 지역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필요한 건 재개발·재건축 지역에 서식하는 길고양이의 생존 대책이다. ‘이문냥이 프로젝트’ 문성실씨는 “지금까지 도시정비구역 내 길고양이 구조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개인의 자발성에만 맡겨두었다. 운이 좋은 고양이만 살아남았다. 고양이 보호 및 이주 문제 해결을 위해 시행착오를 겪은 이들의 목소리를 모아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송지혜 기자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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