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특집] EPL 역사상 최다 득점자는 누구? TOP 10~6

이솔 2021. 1. 1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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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창설된 EPL, 최다 득점자는? 루니? 드록바?
손흥민은 리그 통산 몇 골?

[윈터뉴스 이솔 기자] 아시아선수 최초 EPL 득점왕에 도전하고 있는 선수, 바로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현재 프리미어리그 12골로 득점 순위 2위에 올라있으며, 14일을 기준으로 득점왕인 모하메드 살라와 단 1골차이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득점 페이스에도 불구하고, 손흥민은 아직 역대 득점 순위 50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 EPL 현역 중 역대 득점 기록 1위에 근접한 선수는 맨시티의 세르히오 아게로, 손흥민의 동료 해리 케인 등이 있다. 그러면, 도대체 EPL 역사상 최고 득점자는 누구일까?

사진=마이클 오웬 공식 트위터

10위 - '뉴캐슬? 리버풀? 맨유?' 마이클 오언

마이클 오언을 상징하는 팀은 어디일까? EPL을 즐긴 시대에 따라 이 대답은 달라질 수 있다. 직접 보지는 못했겠지만 대부분 유스시절을 포함한 황금기를 보낸 리버풀을 꼽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마이클 오언은 1991년부터 2004년까지 리버풀의 유스와 성인 팀에서 전천후 활약을 하던 공격수이다. '원더 보이'가 그의 별명으로, 어린 시절부터 리버풀의 공격수로 두각을 나타내 결국 2004년 '갈락티코' 레알 마드리드로 영입된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와 그의 스타일은 맞지 않았고, 결국 뉴캐슬로 이적한다. 뉴캐슬에서도 부상으로 인해 그렇게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던 오언은 결국 방출되고, 맨유로 적을 옮겨 EPL 트로피를 얻는 등 행복한 선수로서의 황혼기를 보낸다.

오언은 04-05시즌을 제외하고 1996년부터 2013년까지 약 17년간 훌륭한 활약을 펼쳤으며, 현재 150골로 당당히 득점순위 10위에 랭크되어 있다. 뉴캐슬과 맨유에서 사실상 큰 활약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리버풀에서 얼마나 많은 골을 넣었는지 알 수 있다. 리버풀 소속으로 216경기에 나서 118골을 기록해 경기당 0.5골 이상이라는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사진=해리 케인 트위터

9위 - '토트넘의 성골' 해리 케인

현역 선수로서 2번째로 높은 위치에 있는 해리 케인이다. 사실상 토트넘의 전부로써 '토트넘에서 케인 위의 주급은 없다'라는 규칙을 만들어낸 선수이다.

케인은 이곳저곳 임대도 다녔던 선수이다. 제라드의 '위 고 노리치' 연설에서의 그 팀, 노리치 시티에도 임대로 다녀왔으며 현재 리그 최상위권 경쟁중인 레스터 시티에도 임대로 다녀온 적 있다.

득점 시비에 대해 "내 딸을 걸겠다"는 말을 해 논란을 빚었던 케인은 현재 EPL 통산 154골을 기록하고 있으며 아직 27세(현지 나이)로 창창한 앞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통산 득점 순위는 최소 5위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리버풀FC 공식 홈페이지

8위 - '파울 안 하는 파울러' 로비 파울러 

EPL의 리버풀은 흔히 암흑기가 길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공격수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리버풀에서 배출된 또 다른 걸출한 공격수 중 한명인 로비 파울러는 1993년 리버풀에서 데뷔한 전설적인 선수이다.

파울러는 리버풀에서 유소년을 거쳐 이른 데뷔전을 치른다. 92-93시즌에는 별다른 기록이 없었지만 93-94시즌부터 리그경기에도 출전해 28경기 12골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긴 그는 곧 주전으로 도약한다. 94-95시즌 42경기 25골, 다음 시즌 38경기 28골이라는 괴물같은 기록을 남긴 그는 일약 스타로 도약한다.

이후 부상과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의 등장으로 입지를 잃고 점차 하락세를 겪었다. 결국 그는 리버풀을 떠나 리즈-맨시티에서 활약하지만, 05-06시즌에는 다시 리버풀의 부름을 받고 리버풀의 조커로서 활약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그의 또 다른 장점은 페어 플레이 정신이 투철한 선수라는 선수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공격수인 만큼 거친 플레이를 하기도 하지만, 그가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한 19시즌동안 리그에서는 다이렉트 레드카드를 받은 적이 없다.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하는 경우도 단 두 차례에 그칠 정도로 신사적인 플레이를 펼친 그는 언론과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리버풀에서만 리그 128골을 기록한 그는 맨시티에서 20골, 리즈에서 14골을 추가로 득점해 총 162골을 기록했다.

사진=저메인 데포 트위터

7위 - '토트넘의 살림꾼' 저메인 데포

한국 축구의 전설적인 수비수 이영표가 토트넘에서 활약하던 시절, 로비 킨과 함께 토트넘의 돌풍을 일으켰던 선수였다. 당시 토트넘은 그럭저럭 생존경쟁에 성공한 중위권 팀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EPL 출범 후 아스날보다 높은 등수를 기록한 적이 없을 정도로 아스날의 4-16에 이어 하나의 과학현상으로 받아들일 정도였다.

이러한 과학현상을 깰 뻔했던 시기가 바로 토트넘이 데포-킨 투톱 공격수 체제를 완성한 시기로 토트넘이 5위에도 올라가는 등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쳤다.데포는 웨스트햄, 포츠머스, 선덜랜드 등에서 활약하며 1부리그에서 총 163골을 기록했으며, 그 중에서도 토트넘에서 273경기에 출전해 91골을 기록했다.

사진=티에리 앙리 공식 트위터, 손흥민(좌측)과 티에리 앙리(우측)

6위 - '형이 여기서 왜?' 티에리 앙리

전설 속에서만 전해오던 그 팀, 무패우승의 아스날에서 핵심으로 활약하던 티에리 앙리이다. 앙리는 전형적인 월드컵 스타였다. '아스날'이 그를 상징하는 클럽이지만 그는 사실 아스날 이전에 'AS 모나코'를 거쳐 '유벤투스'라는 빅클럽을 경험했었다.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 후에도 주목받지 못한 '지루'와 같은 사례도 있지만, 그는 AS모나코에서 1200만유로라는 당시 천문학적인 액수의 이적료로 유벤투스로 이적한다. 하지만 그는 유벤투스에서 옷에 맞지 않는 윙어로써 출전해야 했으며 이윽고 감독은 그를 아스날로 팔아버린다.

'킹'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가 이 별명을 얻게 된 계기가 바로 아스날, 그리고 '벵거'와의 재회이다. 이미 AS모나코의 감독과 선수로써 한번 만난 적 있는 이 두 사람은 아스날에서 재회한다.

아스날에서의 활약은 4차례 득점왕, 3년 연속 득점왕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루이 판 니스텔로이가 맨유 소속으로 1차례 득점왕을 차지한 시즌 외에는 5년간 4회 득점왕을 차지했다. 당시 아스널은 2회의 우승을 기록하기도 하는 등, 명실상부한 우승권 팀으로 도약했다. 1부리그 무패 우승을 차지한 시기도 바로 이 시기이다(03-04 시즌). 이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에서 단 1차례밖에 없었던 기록이다.

아스날에서만 175골을 기록한 그는 역대 득점순위 6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손흥민은 65골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현재 골 수와 같은 등수인 65등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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