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코로나19 시대? 지금은 SF를 읽을 시간!

미래팀 입력 2021. 1. 16. 12:15 수정 2021. 2. 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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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D포럼(SDF)은 SBS가 사회 공헌을 목적으로 만든 지식 나눔 플랫폼입니다. 우리 사회가 깊이 있게 봐야 할 화두를 앞서 제시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혜안을 찾습니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이 2년째를 맞으면서 우리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어떻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찾는 노력들이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는 해법을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에서 찾아보려는 움직임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알라딘의 분석에 따르면 2011년 상반기 대비 2020년 상반기의 과학소설 시장이 5.5% 성장했고, 지난 10월말 발표된 교보문고 조사 결과에서도 전년 대비 한국 소설의 판매가 30.1% 늘어 역대 최다를 기록했는데, 그 가운데 특히 과학소설의 판매가 약 5.5배 신장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주 SDF다이어리에서는 현실과 가상의 혼합 공간인 '메타버스(Metaverse)'를 활용해 이전과는 다르게 소통해보려는 시도들을 몇 가지 소개해드렸는데요. 최근 IT 업계와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분야의 사람들 사이에서 부쩍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 세계와 초월의 합성어인 '메타버스'라는 개념도, 사실은 1992년 미국 작가 닐 스티븐슨이 쓴 SF(과학소설, Science Fiction) <스노 크래시>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가 새삼 관심을 가져야 SF 콘텐츠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난 30년간 SF 분야의 기획과 번역, 칼럼니스트 등의 활동을 해온 한국 SF협회 초대 회장인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를 지난 11일 만났습니다.


"최근 5년 사이에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SF 전문가를 찾는 것을 보면서 SF라고 하는 것이 점점 현대 사회문화에서 비중이 커지고 있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그건 아무래도 SF에서 전망한 미래 사회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해 많은 분들이 좀 더 알고 싶어하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현실에 반영하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이유 때문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정부 기관이라든지, 정부출연연구소, 각급 학교 등에서 제가 SF를 강의하기도 했고요. 심지어는 군이라든가 이런 다양한 곳에서 미래 전망, 짧게는 2030에서 멀리가면 2050 정도까지, 그러한 스케일의 근미래 전망에 대해 SF에서는 어떻게 그동안 묘사해왔는지 의견을 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SF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SF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사이언스픽션이니까 '과학소설'이라고 번역이 될 텐데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어가 넘어오는 과정에서 공상과학소설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사실 공상이라는 말의 뉘앙스가 좀 허황된, 뜬구름 잡는, 현실에서 벗어난 뭐 이런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어서 그동안 우리나라 출판이라든가 문화계 전반적으로 SF라는 장르에 대한 인식이 좀 더디게 갈 수 밖에 없었던 하나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과학기술이 우리 인간 사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 20세기 들어서, 20세기 전반기까지는 어떤 과학기술 만능주의 같은 게 대세였죠.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장밋빛 유토피아를 안겨다 줄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1945년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과학기술에 대해서 의심과 불안도 함께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SF 장르는 과학기술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그전부터 가져왔던 장르라고 볼 수 있어요. 과학기술 분야에서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애써 들춰내기 싫어하는 어떤 어두운 부분들을 스토리텔링의 형태로 보여준 거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주는 낙관적인 미래 전망은 정치가나 기업가들이 늘 하고 있는 얘기죠. 그렇지만 SF 작가들은 그 과학기술이 우리 인간과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영향도 미치게 될지 이야기 형태로 보여주다 보니 그러한 과정에서 인사이트를 주는 것이죠."


Q. 코로나19 사태 이후 새로 부각되는 SF 콘텐츠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코로나19 때문에 이 시대를 거쳐가는 세대들은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들이 남지 않겠는가. 특히 이 시기 성장기에 민감한 정신적 형성기를 지나는 어린이 세대들은 평생 물리적 거리두기와 어떤 위생 관념이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비대면 방식의 사회적 소통 활동 비중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선 물리적 거리두기가 아주 극단화된 미래사회를 묘사한 작품 중에 아이작 아시모프의 <네이키드 썬>이라는 콘텐츠가 있습니다. 국내에는 <벌거벗은 태양>이라고 소개됐죠. 그 작품 속에서는 그냥 다들 혼자 삽니다. 이웃하고 거리가 1km 이상이고. 그러니까 대면이라는 것은 평생 생각조차 하지 않고, 대면 자체를 굉장히 꺼려하는 걸 넘어서서 공포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사는 미래의 우주 식민지가 배경인데요. 이 소설에서는 혼자 사는 데 필요한 모든 도움을 제공하는 인간형 휴머노이드 로봇이 한 사람당 거의 50대 정도씩 붙어 있어서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게 서포트를 해준다는 설정인데, 물리적 거리두기가 극단화된 사회를 전망한 작품으로는 일단 그 작품이 떠오르고요.

그 다음에 ICT 기술 그 중에서도 요즘 많이 얘기하고 있는 게 AI잖아요. 가장 최근에도 지금 '이루다' 라는 국내 업체가 만든 20세 여성 캐릭터가 이런저런 문제가 많다고 얘기가 되고 있던데, AI가 우리 현실에서 정말 어떻게 들어올 것이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수용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테드 창이라는 작가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라는 소설이 있어요. 논문 같은 제목이긴 하지만 주인공이 원래 동물 조련사거든요. 그런데 새로운 일을 제안받은 게 몸체를 지닌 AI를 맡아서 몇 년 동안 사회화 과정을 멘토링 해주는 일을 의뢰받는 거죠. 그 작품이 AI가 우리 사회에 어떻게 수용될지에 대한 상당히 현실적인 가이드가 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아요.

ICT 분야 이상으로 기술적으로는 이미 다 와 있는데 단지 사회적으로 수용할 준비가 아직 안 돼 있어서 널리 지금 퍼져 있지 않을 뿐인 또 다른 분야는 생물공학, 유전공학 분야인데요. 유전공학이라는 측면에서는 벌써 나온지 오래된 영화지만 <가타카>(앤드류 니콜 감독)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유전자 맞춤 아기가 일상화 되었을 때, 우리 삶의 모습이 어떨지를 굉장히 잘 묘사하고 있죠. 제가 최근에 한 가지 보고 살짝 놀란 게 뭐였냐면 <가타카>는 1997년 나온 영화인데 그 영화에 보면 미혼 남녀가 데이트를 하고 나서 몰래 상대방의 모근이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하나씩 챙긴 다음에 헤어지고 나서는 유전자 궁합을 봐주는 데로 달려가 가지고 우리 둘이 만약에 2세를 낳을 경우에 어떤 유전자를 갖고 태어날 건지 의뢰를 해서 그 자리에서 분석 결과를 듣고 그러거든요. 근데 SKT에서 얼마 전에 타액을 가지고 유전자를 분석해 건강관리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유튜브 광고를 제가 봤어요. 단막 영화처럼 광고를 만들었는데 가타카에서 얘기했던 것이 슬슬 하나씩 또 현실이 되어갈 수도 있겠구나 새삼 느꼈습니다."

Q.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인간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살아왔구나, 앞으로는 인간을 넘어서는 다른 생물들까지도 같이 살아가는 걸 생각해야 하는 시대구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됐는데요. SF 콘텐츠 가운데 이렇게 인간사만 다루지 않고 좀 더 넓게 다룬 다른 것들도 있나요?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또 SF에서는 전통적으로 해왔던 얘기인데요.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환경, 친환경, 생태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익숙한 말로는 '에코토피아' 이런 표현을 많이 쓰잖아요. 사실은 <에코토피아>라는 말이 70년대에 나온 SF소설 제목이예요.'어니스트 칼렌바크'라고 하는 사람이 쓴 건데요. 70년대 초반에 캘리포니아 일부가 에코토피아라는 이름으로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해요. 그래서 그 에코토피아가 어떤 나라인지를 주인공 기자가 방문을 해서 그 사회 모습을 탐방하고 그 내용을 쓰는 형식으로 쓰여진 소설인데요. 지금 우리가 많이 쓰고 있는 공유경제 모델이 이미 그 사회에서는 다 기본적으로 세팅이 되고 있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영위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노동만 하면 그 나머지 시간들은 그냥 각자가 자기의 어떤 자아실현을 위한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이 되는 사회로 묘사가 되고 있고요.

대부분의 SF소설들이 극단의 부정적인 상황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디스토피아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요. 드물지만 유토피아의 미래 사회를 전망한 작품들도 좀 있기는 있는데 그게 말씀드렸던 에코토피아가 그렇고 그보다 앞서 행동주의 심리학의 대가인 버러너 프레더릭 스키너가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라는 책의 제목을 오마주해서 <월든투>라는 소설을 썼는데, 에코토피아랑 비슷하게 공유경제가 기본적으로 설정돼 있고, 최소한의 노동을 한 뒤 자유시간은 각자가 자아실현이나 자신만의 행복 추구에 시간을 온전히 투자하는 게 가능한 그런 사회를 다루고 있어요."


Q. 대부분 해외 작품들을 언급해주셨는데요, 국내 작품 중에서 혹시 최근에 눈에 띄는 것도 있을까요?

"최근 2~3년 사이에 국내 SF 작가들의 작품이 출판시장에서도 굉장히 비중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특히 예전에는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던 이슈들 가운데 최근에 와서 표면화가 된 것들을 소재로 한 것이 많은데, 예를 들어서 페미니즘이라든가 성소수자를 포함한 여러 사회 약자들, 마이너리티들에 대한 부분들을 SF적으로 해석하거나 SF적으로 수용한 작품들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쪽 분야 독자층도 두터운 편이고요. 20, 30, 40대 여성분들이 제가 알기로는 제일 큰 독자층이거든요.

김보영 작가님의 작품들이 영미권에서 영어로 번역이 돼서 올봄에 출간이 될 예정인데, '저 이승의 선지자'를 번역하던 분이 김보영 작가한테 "캐릭터의 성별이 뭐냐?" 물었을 때 김보영 작가가 처음부터 정해놓고 쓰지 않았다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영어에서는 항상 He아니면 She가 돼야 되니까 번역자가 당혹스러움을 느꼈나 봐요. 이런 식으로 고착화되고 정형화되어 있는 어떤 성 역할이라고 하는 것도 SF에서는 좀 자유로워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SDF 2019년의 대표 연사였던 '벌새'의 김보라 영화 감독이 차기작으로 김초엽 작가의 SF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지난해 10월 기준 17만 부 판매)에 포함된 '스펙트럼'이라는 작품을 선택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졌는데요. 미국의 언론인 출신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이미 50년전 '미래쇼크'(1970년작) 저서에서 SF는 문학이 아닌 미래사회학으로 다뤄져야 하며 학교에서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과학에 대한 상상력 때문이 아니라 SF소설은 인간의 사고를 확장해 미래에 맞닥뜨릴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윤리적 문제를 앞서 생각해보고 고민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는데요.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도 21세기에는 과학적 상상력을 넘어 윤리적 상상력, 혹은 가치 전복적 상상력까지 더해진 SF 작품들이 우리가 객관적으로 현재를 성찰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통찰을 얻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지금처럼 힘든 시기, 어떻게 다르게 살아가야 할지, 관심 가는 SF 작품으로 그 고민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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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보도본부 미래팀의 취재파일은 <SBS D포럼>이라는 SBS의 대표 사회 공헌 지식 나눔 플랫폼을 중심으로, SBS 보도본부 미래팀원들이 연중 작성합니다.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화두를 앞서 들여다보고, 의미 있는 새로운 관점이나 시도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전하는 뉴스레터 <SDF다이어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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