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중 하나는 문닫는데.. '주문 폭주' 반전 비결

김수진 입력 2021. 1. 1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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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한가운데서 캐나다 동네서점이 번창하는 이유

[김수진 기자]

'번창, 새로운 장, 플롯 트위스트.'

동네서점의 현황을 다룬 캐나다 기사들에 등장한 말들이다. 코로나19가 제대로 기승을 부리는 요즘, 번창이며 새로운 장이라니 이 무슨 어불성설인가 싶다. 게다가 '플롯 트위스트(plot twist)'란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야기의 전개를 갑자기 뒤틀어버리는 것'을 뜻하는 용어다. 그렇다면 흉흉한 코로나19 한가운데서 캐나다 동네서점에 어떤 반전이라도 일어나고 있다는 말인가? 답은 예스!

CBC뉴스는 최근 수차례에 걸쳐 개인이 운영하는 동네서점들의 성공 사례를 소개했다. 오타와에 위치한 '북스 온 비치우드'의 매니저 힐러리 포터는 지난 봄 락다운이 시작되자, 그간 미뤄왔던 선반 설치와 서류작업 등을 실행에 옮길 참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온라인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바람에 다행히(?)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이곳뿐이 아니다.

오타와의 또다른 서점 '싱잉 페블 북스'의 주인 미카 위버는 팬데믹 직전 300개가 넘는 퍼즐을 주문한 터였다. 이후 모든 비필수업종 사업체가 문을 닫게 되자 '저 많은 퍼즐값을 어떻게 지불하지?' 고민하느라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6주만에 383개의 퍼즐이 팔려 오히려 추가주문을 해야 했고, 이제 미카는 쉬는 날 없이 일해야 할 만큼 바빠졌다.

천 건 이상의 주문으로 수천 권의 책을 판매한 '옥토퍼스 북스', 부랴부랴 직원을 더 고용해야 했던 '퍼펙트 북스' 역시 오타와에 자리하고 있다. 그외에도 매출이 50% 가까이 상승한 켈로우나의 '모자이크 북스', 토론토의 '타이프 북스', 브램튼의 '노리지 북스토어', 런던의 '더 북 애딕트'와 '옥스포드 북스토어' 등 동네서점들의 성공사례는 계속 이어진다.

오프라인→온라인... 재빠른 중심축 이동
 
 코로나19 펜대믹 시대를 맞아 온라인 판매로의 빠른 전환을 시도한 캐나다의 동네서점. '동네 가게' 지키기에 나선 소비자들과 만나 어느 때보다 많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 홈페이지 캡처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일곱에 하나꼴로 소규모 업체들이 문을 닫을 위험에 처해 있다는 팬데믹 한가운데서 말이다. 지난해 초, 팬데믹으로 인해 사람들이 이동을 자제하는데다 비필수업종 사업체의 봉쇄령까지 내려지자 당연히 동네서점도 타격을 피할 수 없었다. '북네트 캐나다'에 따르면, 3월에서 5월 사이 캐나다의 책 판매량은 24%가량 하락했다. 하지만 캐나다 전역의 책 판매업자들이 고객과의 새로운 연결고리를 모색하기 시작하면서 책 판매량은 급증했다.

우선 판매의 중심축을 온라인으로 이동시켰다. 대부분의 소규모 서점들이 적은 이윤과 제한된 인력이라는 한계 때문에 온라인 판매에 중점을 두지 못하고 있었지만, 팬데믹 이후 오프라인 판매 수익이 현저히 낮아지거나 아예 문을 닫게 되자 온라인 판매는 더이상 대안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일례로, 서점용 소프트웨어 시스템 '북매니저'의 주문량은 2019년 8월에서 10월 사이 1만7000건에서 2020년 같은 기간 11만6000건으로 치솟았다. 온라인 판매와 함께 배송 및 커브사이드 픽업(Curbside Pick, 온라인으로 주문한 뒤 차에서 내리지 않고 매장 앞에서 물건을 전달받는 방식) 서비스도 시작했다. 런던 '옥스포드 북스토어' 힐러리 토머스는 말한다.

"모두들 문을 닫는 걸 보면서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에 처음엔 너무 무서웠어요. 하지만 온라인 판매, 커브사이드 픽업과 배송을 하게 되면서 정말 바빠졌어요."

온라인 판매로의 재빠른 중심축 전환과 더불어 실내에 갇힌 사람들의 필요 또한 동네서점을 위기에서 건진 일등공신이었다.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사람들은 그 시간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 무언가가 두렵고 불확실한 현실을 피해 빠져들 수 있는 또다른 세상이라면 금상첨화일 터였다. 책은 그런 세상을 열어주는 더없이 좋은 도구였다. 사람들이 독서에 빠지고 있는 이유를 힐러리 포터는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 살고 있는 세상이 걷잡을 수 없이 삐끗댈 때, 손에 종이책을 쥐고서 잠시 다른 세상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위안 때문인 것 같아요."

정반대로, 다른 세계로의 여행이 아닌 현실세계를 직시하려는 갈망이 책을 찾게 만들기도 했다. 사람들은 전세계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코로나19에 대해, 원인과 전망에 대해, 그리고 개인과 사회의 역할에 대해 숙고하고 이해하길 원했다.

주어진 시간을 사회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데 쓰려는 이들도 그에 못지 않게 많았다. 지난해 사회적으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은 단연 미국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었다. 캐나다 곳곳에서도 인종차별 규탄 시위가 일었고, 이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사회문제로 존재하는 '인종차별'에 대해 많은 이들이 다시 한번 숙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기에 지난 한 해 가장 많이 팔린 책들 중 하나가 바로 '흑인 인종차별'에 관한 것이었다.

아프리카인에 중점 둔 책들을 다양하게 판매해온 브램튼의 '노리지 북스토어'에는 지난해 시위가 확산된 이후 수천 건의 주문이 밀려들어왔다. 팬데믹 이전에는 서점을 방문해 직접 책을 구매하는 비율이 90%였으나, 6월과 7월이 되자 98%의 주문이 웹사이트를 통해 이뤄졌고, 그중 많은 이들이 인종차별 관련 도서를 찾았다.

제일 중요한 건 '동네서점' 지키려는 소비자

그런데 독서에 눈길 돌리는 이들이 많아지고 동네서점이 온라인 판매를 한다 해도 그것이 곧 동네서점의 번창으로 이어지란 법은 없다. 아마존(Amazon)과 인디고(Indigo, 캐나다의 가장 큰 대형 서점)처럼 보다 익숙하고 편리한 대형 온라인 쇼핑몰이 이미 위세등등하게 버티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동네 상권을 지지하려는 주민들의 노력 없었다면 동네서점의 번창이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런던 '옥스포드 북스토어'의 토마스를 비롯해, 팬데믹 한가운데서 성공대열에 합류한 동네서점 운영자들은 한결같이 그 점을 언급하고 있다.

"사람들이 가까운 지역의 물건을 사려 노력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 노력이 정말 행동으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팬데믹 초기 고객들에게 파산할 위기임을 알린 뒤 '옥토퍼스 북스'의 온라인 판매 비중은 2%에서 75%로 폭증했다. 동네서점을 지지하려는 사람들이 도시 전역에서 주문을 해왔기 때문이다. '싱잉 페블 북스'의 미카 위버 역시 팬데믹을 지나며 가장 고마운 점이 가까운 지역에서 물건을 사고자 하는 고객들의 새로운 결심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원에서 만났던 이웃이 가게로 걸어들어올 때면 꼭 꿈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우리는 이제 동네 서점 그 이상이 되었어요."

'캐나다 독립서점 협회' 사무총장 더그 미네트의 말처럼, 사람들은 단순히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것과 같은 지역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책을 건네주는 것(가게에서든 배달을 통해서든)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느끼는 듯하다.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물건을 어떻게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으로 공동체의식을 지니길 원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라는 것을요."

책과 와인... 새로운 상품 개발도
 
 캐나다 동네 서점이 운영하는 화상 북클럽 광고. 코로나 펜대믹 시대에 매출을 올리는 비법 중 하나다.
ⓒ 홈페이지 캡처
   
한편, 판매방식의 변화를 꾀함과 동시에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시도하는 서점들도 있다. 온타리오주 구엘프에 위치한 서점 '북셸프'의 경우, 책과 와인을 짝지어 파는 상품을 고안했는데 판매량이 이미 수천 건에 달한다. 고객이 지정한 한 장르의 책 다섯 권을 배송료 포함 25달러에 판매하는 '애틱 북스'의 '북 케어 패키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

토론토의 어린이책 전문서점 '마벨스 페블스'의 경우, 독자의 취향에 맞춰 선정한 책 리스트를 매달 집으로 배달해주는 월간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 아이들이 책읽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여러 개의 화상 북클럽도 운영함으로써 비대면 시대에 고객과의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

판매방식 및 서비스의 변화, 새로운 시대를 맞은 이들의 독서를 향한 갈망, 그리고 동네상권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노력이 팬데믹 가운데서 캐나다 동네서점의 반전을 이끌어내고 있다.

공기 중 떠다니는 책 냄새를 맡고 손으로 질감을 느끼면서 책을 고르는 즐거움은 분명 살면서 잃고 싶지 않은 것들 중 하나다. 공간을 가득 메운 책들 사이에서 내가 원하는 책을 찾다가 의외의 보물같은 책을 발견하는 기쁨은 덤이다. 내 취향을 기억하는 서점 주인에게 인사를 건네고 신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런 동네서점이 오래도록 자리를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대형서점에 밀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폐점하거나 폐점 위기에 놓인 동네서점들 소식이 들려온다. 누군가에겐 동네서점의 폐점이 오래된 친구 하나를 잃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우리나라 동네서점에도 '플롯 트위스트', 대반전이 일어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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