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365일 '집합금지' 요가원 분투기

김원진 기자 2021. 1. 1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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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기도 군포시 산본 중심가에 있는 요가원 커튼이 내려져 있다. / 우철훈 기자

경기도 군포시 산본의 A요가원은 매일 차를 우렸다. 촛불로 유리 주전자를 달궈 차를 냈다. 차는 그날그날 바뀌었다. 국산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 태국, 네덜란드에서 온 티백도 준비돼 있다. 회원들이 여행이나 출장 다녀오며 선물한 차다. 박정서씨(42)는 “수업 끝나고 마시는 차 한잔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는데…”라고 했다. 박씨는 5년째 A요가원에 다니는 회원이다.

요즘엔 차 선물이 뚝 끊겼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해외에 다녀온 회원이 없었다. 차가 줄어들지도 않았다. 1년 전에 개봉한 감국화차는 3분의 2가량 남았다. 마스크를 벗고 마셔야 하는 차로 긴장을 달래는 회원이 없어서다.

지하철역 안내판은 A요가원 바로 앞 출구를 ‘중심상가’로 소개한다. A요가원은 중심상권의 빌딩 3층에 입주했다. 2015년 10월 문을 열었다. 대형 아파트 단지와 시청, 경찰서, 대학병원이 걸어서 5~10분 거리에 있다. 병원 직원과 공무원들도 A요가원의 오랜 회원이다.

크기는 약 99㎡(30평). 관리비, 월세를 포함해 고정지출만 250만~320만원이 나간다. 강사는 5명, 시간당 3만원이 넘는 강사료를 지급한다. 수강생은 2020년 1월 200명 수준이었다. 2021년 1월 13일 수강생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 주당 수업시수도 2019년 35회에서 2020년 25회로 감소했다. “2020년 한 해 환불 요청이 한달에 3~4건꼴이었는데, 다 합쳐보니 직전 5년간 이뤄진 환불보다 많았어요.” 최현준 원장(44·가명)이 말했다. 2020년 11월 매출은 250만원을 살짝 넘었다.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분의 1 수준이다. 매출은 450만원이었는데 환불이 200만원 발생했다.

요가원이 2020년 12월 8일부터 영업을 멈췄다.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른 조치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2주→1주→2주→3주→1주→2주 운영을 멈췄다. 총 11주다. 문 앞에 붙은 수업시간표도 ‘2020년 12월’에서 멈췄다.



문 닫지 않는다는 ‘신호’
요가원 간판에 불이 들어왔다. 실내에는 향냄새가 났다. 난방도 돌아갔다. 지난 1월 10일 오전 11시, A요가원은 문을 열었다. “상가가 죽은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불을 켜놔요.” 최 원장이 흰 천으로 찻잔을 닦으며 말했다. “수업을 재개했을 때 오래된 빈집처럼 한기가 느껴지면 안 되니까 난방도 매일 틀고요.”

생존을 위한 노력은 유튜브에도 담겼다. 최 원장은 3년 전부터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다. 회원들과 요가원 일상을 공유하려 만든 채널이다. 2019년에는 송년회 영상, 야외 요가 영상 등이 올라왔다. 2020년에는 ‘2.5단계 하향까지 쉬어감’ ‘코로나19로 지친 모든 이들을 응원합니다’처럼 코로나19를 다룬 영상이 올라왔다. 최 원장은 “유튜브 링크를 종종 회원들에게 보내거든요. 요가원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고, 다시 문을 열 거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정부 방역에도 늘 협조했다. 2020년 2월과 8월에는 자체 휴강도 한 번씩 했다. 합쳐서 보름이었다. 최 원장은 방역지침이 변경 때마다 회원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적극’이라는 단어가 언제나 담겼다. ‘정부와 지자체의 권고에 적극 협력하며 9월 6일까지 거리 두기 강화에 동참해 개강 연기와 휴강 연장됨을 (중략)’ 느낌표도 빠지지 않았다. ‘3월 23일~4월 6일까지 휴강 안내 말씀드립니다! 정부의 실내 체육시설 이용 금지 권고를 본 센터는 최대한 최우선 적극 수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실내 방역에도 철저했다. 요가 매트 20여개는 매달 바꿨다. 개당 1만원짜리다. 수업이 끝나면 환기를 했고, 요가 매트를 일일이 소독했다. 입구에서 손소독과 열체크는 기본이었고, 강사들은 모두 보건용 마스크(KF-94)만 썼다. 여름에는 수업 시 창문을 열고 에어컨 사용을 최대한 자제했다. 가끔 최 원장이 안내데스크와 강의장 사이 문을 열어 바깥에서 튼 에어컨 찬공기를 안으로 넣어줬다. 수강이나 신규 등록 모두 예약으로만 받았다. 수강생은 10명 미만으로 맞췄다. 샤워실 이용은 코로나19 확산 직후부터 중단했다. 2020년 7월 새로 구비한 1ℓ들이 샴푸가 그대로 남았다.

“원장님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것 같아요.” 강사 신지혜씨(25)가 말했다. 신씨도 방역수칙을 늘 지킨다. 여름에는 땀으로 마스크가 젖어 수업시수만큼 마스크를 챙겨 다녔다. 외식은 아예 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연인과 기념일에 스테이크를 테이크 아웃해 차에서 먹었다. 식당은 빈 테이블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스테이크가 다 식어서 퍽퍽했어요. 조심해야 수업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 더 민감해지죠.”

분투하는 요가원을 응원하는 주변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지난달에는 서울 중랑구에 사는 옛 회원이 찾아와 조개찜을 ‘특’으로 샀다. “더 오래오래 다니겠다”며 66만원 선결제 한 회원도 2명 있었다. 2020년 11월 최 원장 생일에 회원 50여명이 커피, 빵 기프티콘을 보내왔다.



“무보수로 정부 방역에 동참”
최 원장은 1월 11일 버팀목 자금을 신청했다. 코로나19로 집합금지·영업제한이 되거나 매출이 감소한 소상공인 276만명이 신청 대상이었다. 이중 실내체육시설 사업자는 4만5000명이었다. 정부는 ‘오전에 신청하면 오후에 받는다’고 안내했다. 최 원장은 이날 오전 11시쯤 라면을 끓이다 접속했다. 오픈 1시간 만에 8만2000명이 몰렸다. 신청이 원활하지 않았다. 낮 12시 50분쯤 신청이 가능했다. 버팀목 자금 300만원은 다음날 새벽 4시에 들어왔다.

들어온 버팀목 자금으로 강사들 월급을 줬다. 밀린 관리비도 냈다. 이것저것 다 제하고 나니 8만9900원이 남았다. 현재 금융권 대출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도 300만원이라도 정부에서 지원해주니 감사한 마음이죠.” 최 원장이 말했다. 1차(150만원) 소상공인 지원금 지급 때는 받지 않았다. 더 어려운 업체가 있다고 생각했다.

임대료가 3개월 넘게 밀렸다. 최 원장은 “건물주가 다행히 퇴거 조치는 하지 않고 있어요. 보증금에서 월세가 일단 빠지고 있겠죠”라고 했다. 정수기, 공기청정기 렌털 비용이나 유지관리비도 연체됐다. 공기청정기 렌털비만 28만7000원 밀렸다. “임대사업자도 대부분 대출받아서 하는 것인데, 그들에게 ‘착한 임대인’을 강요하는 건 맞지 않죠.” 최 원장이 말했다. “자영업자들은 무보수로 정부 방역에 동참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럼 지원금이 아니라 손실 보전금, 아니면 피해 보상액으로 접근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독일은 2020년 3월, 5명 이하 직원을 고용한 사업주에게 3개월 동안 최대 9000유로(약 1200만원)를 지급했다. 현재는 임대료·인건비의 최대 90%를 정부가 보상해준다. 5명의 직원을 고용한 최씨에게 같은 조건이 적용됐다면 어땠을까. “수익을 다 보장해달라는 게 아니라 고정비용에 대한 최소한의 보전이라도 해줬으면 해요.” 최 원장이 말했다. “공무원들에게 방역에 동참하라고 하면서 3개월간 무보수로 일하라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버팀목 없는 자영업의 붕괴는 연쇄적이다. 요가원과 같은 층에는 약 99㎡(30평) 규모 카페가 있다. 지난달 매출이 2019년 12월과 비교해 10분의 1로 줄었다. 지난 1월 10일 오전 9시부터 6시간 동안 매출은 2만5000원이었다. 카페 맞은편 뷰티숍도 일요일에는 문을 닫았다. 100% 예약제로 운영하는 곳이다. 영화를 보러 왔다가, 피부관리를 받으러 왔다가 커피 한잔하고 가는 손님이 사라졌다. “위층에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첫 영화가 요즘 정오에 시작해요. 사람들이 영화도 잘 안 보면서 유동인구가 확 줄었죠.” 사장 B씨가 말했다.

요가원에 고용된 강사들의 상황도 한계에 다다랐다. A요가원 강사 5명 중 2명은 전직을 고민한다. 최모 강사(25)는 적금 통장 2개를 깼다. 월세까지 내야 하는 강모 강사(28)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다. A요가원과 다른 요가원을 오가며 하루에 3~4개씩 소화했던 수업이 6주째 모두 사라졌다. 일부 헬스장은 GX(그룹 운동)에서 요가 수업을 없앴고, 요가원도 하나둘 문을 닫아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다.

회원들의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다. 회원들의 경제 사정이 나빠질수록 A요가원 재등록도 어려워진다. 치과에서 일하던 회원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치과가 문을 닫아 보험설계사로 직업을 바꿨다. A요가원 인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회원은 임대료·인건비 부담에 집을 팔았다.

필라테스 피트니스 사업자 연맹 관계자들이 1월 5일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정부에 실효성과 형평성 있는 정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고통의 근거가 1년간 쌓였다
최 원장은 지난해 체중이 10㎏가량 불었다. 배도 나왔다. 가끔 자전거를 타고 산본 인근 안양·평촌지역 상권을 돌아다니는데도 그렇다. “인스턴트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최 원장이 말했다. 1월 11·12일, 1월 14일 점심 모두 라면에 공깃밥이었다. 텅 빈 요가원에 앉아 있을 때면 공허함을 참기 어려웠다.

회원 박정서씨는 “원장님 오지랖은 모두 알아줘요”라고 했다. 모두 힘들어도 힘내자는 말을 먼저 하는 쪽에 가까웠다. 최 원장은 2020년 가을까지만 해도 안부 문자메시지나 전화를 돌렸다. “요새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원장들 연락이 오면 가끔 안 받게 돼요.” 최 원장이 말했다. “서로 어려운 처지 하소연하는 것도, 먼저 힘내라고 웃으면서 말하는 것도 이제 좀 버겁더라고요.”

강사들은 마음의 상처가 덧났다. 요가 강사가 받은 프리랜서 지원금을 두고 “쉬면서 돈 받으니까 부럽다”고 한 지인이 있었다. 정부는 한 번에 50만원씩 세 차례 신청을 받았다. 강사 5명 중 1명은 이마저도 이유를 듣지 못한 채 지급 거절당했다. “프리랜서는 원래 불안정한데, 요즘은 더 불안정해요. 설 연휴쯤에는 또 한 번 확산될까봐 불안한 마음도 커요.” 김우신 강사(29)가 말했다.

지난 1년, 데이터는 쌓였다. 자영업자와 자영업자가 고용한 이들이 지쳐가는 사이 ‘고통의 근거’는 숫자로 쌓였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이 의원이 입수한 문화·체육·관광 분야 코로나19 피해 현황을 보면, 요가업이 속한 스포츠산업(서비스업) 2020년 매출액(2726억원)은 전년(6479억원) 대비 57.9% 감소했다. 2020년 12월 기준으로 2020년 1월과 비교했을 때, 스포츠산업(서비스업) 업체당 평균 종사자 수는 15.4% 줄었다. 3000개 업체를 표본으로 뽑아 조사한 결과다. 최 원장은 “누가 얼마나 피해를 봤는지 이제 통계가 있으니까, 정부도 무엇이든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했다.

A요가원과 같은 빌딩에 있는 자영업자들은 서로 안부를 묻는다. 종종 건물에서 만나 상황을 공유했다. 정부 방역수칙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라는 인식이 퍼졌다.

“일방적으로 희생을 감수하라고 하는 것은 이제 한계예요.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누가 정부 지침을 따르려고 하겠어요”(쇼핑몰 사장 C씨), “국무총리가 자영업자를 언급하면서 울었는데, 지금은 본인이 울 때가 아니라 눈물을 닦아줄 때죠”(실내체육시설 사장 D씨), “희생해가며 방역의 최전선 일부를 지키고 있는데, 정부가 뭐라도 보급을 해줬으면 해요.”(카페 사장 E씨)

지난 1월 14일 오전 11시, 최 원장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앞으로 수업이 다시 열려도 못 다니게 되었어요. 환불이 될지 여쭤보려 합니다.” A요가원 회원권은 온라인에서 ‘양도’ 거래를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 회원의 요구대로 환불이 이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 원장이 답장을 보냈다. “원래는 바로 다음달에 정산해드리는 게 원칙인데, 현재 두달 가까이 영업을 못 하고 있습니다. 오픈 재개되면 한달 안에 최대한 환불해드리겠습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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