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확장] 집단주의 사회 기풍을 디자인하는 북한의 의상미술

최희선 디자인 박사/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2021. 1. 1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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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으로 보는 북한 사회" 제9편-의상미술

[편집자주][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최희선 디자인 박사. (현)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뉴스1

(서울=뉴스1) 최희선 디자인 박사/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 2021년 연초부터 평양을 달군 노동당 제8차 대회가 1월12일 막을 내렸다.

북한의 당 대회와 열병식 등 대규모 정치행사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본인은 디자인을 전공해서 그런지 붉게 물든 무대(배경대) 도안들과 참여자들의 복장 규정(dress code)에 의한 행사 연출 방법들도 눈에 들어온다.

대한민국에서 성장한 이들은 외국인처럼 인민복, 군복을 입은 수많은 군중의 '맞춤' 의상과 무리 사이에 간간이 보이는 여성들의 알록달록한 치마저고리의 의생활 문화가 이질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주요 패션은 산업미술 중 의상미술가들에 의해 창작된다. 물론 피복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 의해 의복이 창작된다는 기사들이 종종 나오기는 하지만, 북측이 자랑하는 대표적 의복들은 의상미술을 전공한 도안가들에 의해 창작된다고 설명할 수 있다.

북한의 의상미술은 대상과 기능에 따라 분야가 좀 더 세분화된다. 평상복, 아동복, 근로자들의 작업복 외에도 군복, 학생복, 체육복 등 유니폼을 통해 '하나'의 동질성을 드러내는 단체복 도안이 북한 사회에서 중요시된다.

또 북한에서 민족의상으로 불리는 '조선옷', 특히 여성의 치마저고리 도안은 전통을 지키는 중요한 의상으로 사회에서 평가받는다. 조선산업미술가동맹이 속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중앙위원회 산하에는 '민족의상민예품제작소'가 있어 북측의 조선옷 연구 개발을 이끌고 있다.

2018년 공화국 창건 70주년 기념 대집단체조와 공연예술 《빛나는 조국》의 선전화 속 의상들(좌), 2017년 국가산업미술전시회에 출품된 의상도안 실현작들(우) <사진 출처 : 북한 홍보매체 우리민족끼리(2018), 서광(2017. 4.)>

산업미술 중 의생활과 관련된 분야는 의상미술(패션디자인)과 방직미술(텍스타일 디자인)이다. 의상미술과 방직미술은 경공업 분야와 밀접하여, 정권수립 초기부터 대학을 통해 전공자들을 배출해왔다.

북측의 일반적인 교육체계가 그러하듯 의상미술도 중앙에서 인재들을 발굴, 교육한다. 피복공업은 국가의 주력사업으로 평양미술대학과 경공업대학에서 의상미술 인재들을 양성하고 있다.

평양미술대학은 1956년 공예도안학과를 개설하였지만 잠시 경공업대학에 도안과를 편입시켰다가, 1963년 4월 경공업대학에서 방직의상미술학과를 도자유리공예학과, 목칠공예학과와 함께 분리하여 평양미술대학에 재편입하기도 하였다.

최근까지 알려진 북한의 의상미술 최고 권위자는 평양미술대학의 교수, 박사인 리유미이다. 그녀는 1962년 전국학생소년미술전람회에서 2등을 차지한 후 전문 고등교육을 받고, 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의상미술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리유미는 조선옷 창작에 매진한 공로로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은 북한 의상미술계의 대표 인물이다. 그녀는 여러 편의 의상 관련 교과서 및 전문서적을 집필하였고, 1995년에는 특별히 평양에서 1백여 점의 조선민족의상 전시회를 개최하여 북한의 전통의상을 홍보하는 데 앞장섰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 의상미술계의 대표 인물인 리유미의 옷 도안들: <조선옷도안>(좌), <녀성들의 외투도안>(중), <여름철 달린옷도안>(우). 위 작품들은 80-90년대 북한의 산업미술전람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다. <사진 출처: 「조선예술」(1990. 12, 1986. 1, 1981. 3)>

수자경제(Digital Economy)를 중시하는 북한 산업정책 덕분에 피복공업의 의상도안에서도 정보화 교육, 기술 발전을 가속화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예로 과거 2012년 10월 평양의 3대혁명전시관에서 진행된 '제23차 전국 프로그람 경연 및 전시회'에서는 1300여 건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출품작 중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이 '5차원 피복설계프로그람'으로 수상을 받기도 하였다.

북한의 의상미술은, 개인주의 ≪류행≫과 외부 문화 침투 방지, ≪현대성 구현≫의 줄타기 흔적을 보이기도 했다.

북한에서 조선옷은 사회주의 도덕과 전통 미풍양식을 드러내는 의복으로 유달리 강조되어왔다. 북한미술에서 핵심적인 문예사상이론서인 김정일의 『미술론』(1992)에서도 개인주의 ≪류행≫과 대중문화 확산의 위험을 경고하며, 전통의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북측은 이륜 추구를 목표로 하는 일명 '자본주의 <류행> 의상 현상' 방지를 위해 의상미술계는 사회주의의 '한가족', '전체', '통일성'의 미감을 중요시하는 특성이 있다. 2012년 이후에도 학생교복, 체육복, 봉사복 등 단체의복 도안들을 새로 창작하는 사례가 증가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의 집권 이후 북한 의상미술의 대표 사례는 '학생 교복'이다. 북한은 2012년 9월 최고인민회의 법령 제정을 통해 2015년부터 '12년 의무교육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며, 여러 산업미술창작사들로부터 교육 과정별 새로운 교복, 학생 가방류, 집기류들을 디자인하게 하였다. 이중 《4계절용 남녀 교복도안》은 2014년 식료일용공업성 산하 '피복연구소'가 다른 기관들과 경쟁해 최종 선정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학생 교복과 같은 단체복 도안은 집단의식 강화와 물질문화에 대한 시대성을 의상에 반영하는 북한 사회의 특징을 담고 있다. 개인 복장의 경우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적합한 것을 디자인하는 것이 의상미술의 주요 역할이다.

최근 북한 여성복의 경우 과거와는 다른 스타일의 바지정장, 짧은 길이의 양장류 수요가 주민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사회에 외부 문화 유입과 개인주의 유행에 대해 반대하는 논평들이 매체에 실리고 있다.

2021년 1월 당 대회가 열린 모란봉구역 4.25문화회관 무대 오른쪽에는 2016년 제7차 대회 때와 같은 '일심단결'의 구호가 붙어있다.

혼연일체(渾然一體)의 주민 단결을 요구하는 북한에서 주민들의 다양한 생활양식을 반영하는 옷들이 계속 만들어질지, 북측의 의상미술 전개에 영향을 미칠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방향을 예의주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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