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고통스러울 때, 도스토옙스키를 바라보라!

CBS노컷뉴스 곽인숙 기자 입력 2021. 1. 16. 07: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간]러시아 문학기행2, 도스토옙스키 죽음의 집에서 살아나다
이정식 전 CBS 사장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어떻게 살아 나왔나"
스타라야루사의 도스토옙스키 동상 앞에서 저자 이정식 전 CBS사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결미디어 제공
"수용소에서 도스토옙스키는 벽돌 나르는 일을 했다.…처음에는 벽돌을 25kg밖에 지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48kg까지 운반할 수 있었다. 당시 도스토옙스키는 4kg 가량 되는 족쇄를 차고 있었으므로 족쇄의 무게를 더하면 50kg이 넘는 엄청난 무게의 짐을 감당할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 출옥 이후를 생각하며 체력을 키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 도스토옙스키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만약에 도스토옙스키에게 사형장에서의 충격적인 사건이 없이 처음부터 시베리아 행이 정해졌더라면 그도 수용소에서 시들어버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사형장에서 새로 받은 생명을 선물이요 은총이라고 생각하고 어둡고 비참한 수용소에서도 삶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건강한 육체의 소유자가 되어 출소할 수 있었다."
_제12부 시베리아 죽음의 집 39쪽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1821~1881)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이 있을까?
사형수에서 극적으로 감형됐지만 4년의 시베리아 유형과 사병으로서의 4년 군복무를 거쳐 형이 남긴 거액의 빚을 갚느라 평생을 시달려야 했던 그는 경제적 궁핍함과 병마 속에서도 '죄와 벌',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등 주옥같은 명작을 세상에 내놨다.

도스토옙스키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러시아 문학기행2, 도스토옙스키, 죽음의 집에서 살아나다'(한결미디어)가 출간됐다. 지난해 7월 나온 '러시아 문학기행1, 도스토옙스키 두 번 죽다'의 후속작이다.

이 책에는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근간이 된 그의 시베리아 수용소 생활의 수기인 '죽음의 집의 기록'과 최후의 작품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주요 테마에 대한 분석이 실려있다. 그리고 속기사였던 두번째 부인 안나의 내조와 활약, 도스토옙스키 최후의 모습, 그의 사후에 일어난 동료의 배신 등도 담겨 있다.
시베리아 수용소의 옥사. (김세광 그림) 한결미디어 제공

"돈은 주조(鑄造)된 자유였으며, 그래서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돈은 열배나 더 귀중한 것이었다. 만일 돈이 주머니 속에서 짤랑짤랑 소리를 내기만 해도, 비록 그것을 쓸 수는 없지만, 벌써 반 이상이나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_제12부 시베리아 죽음의 집 27쪽

저자인 이정식 전 CBS 사장은 도스토옙스키가 "죄수들은 경련을 일으키고 이성이 흐려질 만큼 돈을 갈망하고 있다"고 했다며, 돈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받는 위로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라고 전했다. 유형 생활 중 그 같은 관찰의 결과가 '돈은 주조된 자유'라는 명구(名句)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유는 욕구의 증대와 충족이 아니다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매일매일 자유와 해방을 갈망하던 도스토옙스키는 신체적 자유를 갈망하던 유형수(流刑囚) 시절이 지나간 후 정신적인 자유를 말하게 된다.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그는 조시마 장로의 설교를 통해 자유에 대해 말한다.

"자유를 욕구의 증대와 신속한 충족으로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본성을 왜곡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많은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욕망과 관습과 비합리적인 망상을 탄생시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육욕과 자만, 서로에 대한 질투만을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 호의호식, 나들이, 사륜마차, 관직, 노예나 다름없는 하인들을 소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심지어 생명, 명예 그리고 인간에조차 희생시키고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에는 자살하기도 합니다."
_제13부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마을에서 81~82쪽

"사실 안타깝게도 수도원에도 건달, 호색꾼, 난봉꾼, 무례한 방랑자들이 많습니다. 교육받은 세인들은 우리들(수도사들)을 향해 <당신들은 게으름뱅이들이며 사회에 전혀 쓸모없는 인간들이고, 남의 노동력으로 살아가는 파렴치한 거지들이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수도원에는 겸손하고 유순하며 고독을 갈망하면서 정적 속에서 기도에 정열을 불사르는 수도사들도 많습니다."
_제13부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마을에서 83쪽

정치부 기자 출신인 저자는 "수도원에 있다는 '건달, 호색한, 난봉꾼, 무례한 방랑자들' 대목을 보다가 문득 우리나라 국회가 떠올랐다"며 "수도원을 국회로 바꿔도 말이 되겠다"고 쓴 소리를 하기도 했다.

도스토옙스키가 형 미하일과 함께 발행했던 ‘시대’ 잡지(좌)와 ‘죽음의 집의 기록’ (가운데). 한결미디어 제공

천국은 너의 안에 있느니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천국과 지옥은 모두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고 말한다. 비록 자신은 지독하게 힘든 고난의 일생을 살았지만 그는 서로 사랑하고 감싸주며 아름답게 사는 세상이 천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옥이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이며, 만족할 줄 모르는 자만"이라고 했다. '지옥은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자만과 교만에 빠져있는 상태가 바로 지옥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도스토옙스키 운구 행렬(판화). 한결미디어 제공

"기억해줘, 아냐(안나의 애칭). 내가 당신을 언제나 뜨겁게 사랑했다는 걸. 그리고 꿈에서라도 당신을 배반한 일이 없다는 걸 말이오."
_제15부 도스토옙스키의 최후, 159쪽

도스토옙스키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강하고 지혜로운 아내 안나와의 이별 장면이다. 아이들과의 마지막 대화도 눈물겹다. 그는 사망하기 몇 시간 전 딸 류보피와 아들 페쨔를 불러 누가복음 15장 11~24절에 나오는 '탕자의 귀향'을 읽게 한 뒤 이렇게 말한다.

"주님에 대한 끝없는 믿음을 간직하고, 그분의 용서를 단념하지 마라, 나는 너희들을 정말로 사랑한다. 하지만 내 사랑은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인간들을 향한 주님의 무한한 사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살다가 혹은 죄를 짓는다고 해도 주님에 대한 희망을 결코 버려서는 안 된다, 너희들은 그분의 자녀들이다."
_제15부 도스토옙스키의 최후, 162쪽

도스토옙스키의 삶의 궤적을 찾아 수년에 걸쳐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 있는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7곳을 방문한 저자의 여행 뒷 얘기가 담겨진 '작가노트'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면 컬러로 편집된 이 책은 저자가 여행하며 직접 찍은 사진 수십 장도 책의 완성도를 더해 준다.

도스토옙스키의 서재. 한결미디어 제공

부록으로는 톨스토이, 체호프. 푸시킨, 파스테르나크 등 문호들의 작품 집필 현장을 찾아보는 내용의 '러시아 문학기행 Q&A'를 실었다. 러시아 문학기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다.

한-소 수교 전인 1989년 6월 당시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와 모스크바를 첫 방문했던 이야기, 이듬해 청와대 출입기자로 노태우 대통령의 역사적인 첫 방문 당시의 생생한 취재 현장을 담은 이야기도 눈에 띈다.

이정식 전 사장은 "아무리 어려움에 처한 사람도 도스토옙스키보다 힘든 상황 속에 빠지기는 쉽지 않다"며 "그가 극복한 인생을 들여다 보면 희망을 볼 수 있다. 그의 인생을 통해 교훈을 얻어, 그의 말대로 은총이자 선물인 삶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소 수교 전인 1989년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바 강변에서 당시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오른쪽)와 저자 이정식 전 CBS사장. 한결미디어 제공

'러시아 문학기행3'은 '톨스토이와 카프카스'를 주제로 한 기행으로 이어진다.

저자인 이정식 전 사장은 서울대학교 사범대(지구과학과)를 졸업했고 CBS, KBS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CBS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 CBS 사장과 CBS노컷뉴스 회장을 역임하고 뉴스1 사장 및 부회장, 서울문화사 부회장을 지냈다.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안중근 의사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서울대 언론인 대상(2009)을 수상했다.

소문난 음악 애호가로 이정식 애창가곡 1, 2, 3, 4집 등의 음반을 내기도 했다. 저서로는 '기사로 안 쓴 대통령 이야기', '워싱턴 리포트', '권력과 여인', '이정식 가곡 에세이 사랑의 시, 이별의 노래', '시베리아 문학기행' 등이 있다.

러시아 문학기행2, 도스토옙스키 죽음의 집에서 살아나다 책표지. 한결미디어 제공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BS노컷뉴스 곽인숙 기자] cinspain@cbs.co.kr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