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예전만 못하다고요?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2021. 1. 16.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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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방송 제작진이 제일 두려워하는 말은 무엇일까? “재미없다” “감(感) 떨어졌다” 같은 품평이 대부분이겠지만 그중 제일 뜨끔한 말은 “예전만 못하다”는 비판이 아닐까 싶다. 변화무쌍한 시청자의 취향을 맞추려면 프로그램도 무한 변신을 해야 하는데, 이를 흔히 ‘개편’이라고 한다. 그런데 애써 개편하고도 “옛날이 낫다”는 혹평에 시달릴 때 제작진은 곤혹스러운 것이다.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이 구설에 올랐다. 원래는 거리에서 조우한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구성이었는데, 코로나 여파로 출연자를 미리 섭외하는 실내물로 선회한 모양이다. 이 출연자 중에 이력이 의심스럽거나, 입시 논란이 있는 의대생이 섞여 있었다고 한다. 소박한 웃음을 추구하던 프로그램에 ‘성공한 인물’이란 개편이 가미되며 “초심을 잃었다”는 아쉬운 평가를 받게 됐다. 코로나로 개편이 불가피했던 제작진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잡음이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출연자에 대한 불만이라면 그나마 수습이 좀 쉽다. 신중하게 새 인물을 섭외해 다시 반응을 살피면 그만이다. 하지만 구성에서 세트까지, 말 그대로 이름만 남기고 다 바꾸는 ‘전면 개편’은 이야기가 다르다. 시청자가 보기엔 하루아침에 ‘짠~!’ 하고 새집에서 방송하는 것 같겠지만, 그 과정은 상당히 어렵다.

세트를 바꾸려면 진행 방식을 미리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런저런 콘셉트에 맞게 디자인해 달라’고 의뢰할 수 있다. 또 평범해 보이는 책상이며 의자까지 방송용은 모두 주문·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도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세트 바꾸고, 카메라 리허설까지 하려면 한두 달이 휭 지나가 버린다. 그 고생을 하고도 “도대체 왜 돈 쓰고 고친 거야?” 하는, 속칭 ‘뼈 때리는 말’을 들을 때면 눈물이 찔끔 나도록 속이 쓰리다.

변화는 늘 괴롭고 모험이 따른다. 프로그램 개편 역시 숙명적으로 시청자의 낯가림과 직면하게 된다. 이 데면데면한 시간을 얼마나 짧게 끝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개편의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제작진부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바뀌니 더 좋네”라는 호평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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