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전쟁의 공포'가 평화 만들었다

강구열 입력 2021. 1.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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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평화 갈망 하면서도 유지 못해"
세계사 굵직굵직한 사건 정리하며 결론
무한한 권력욕·끝없는 국가경쟁이 원인
1차 세계대전 등 비극적 사건 주목해야
강대국들 조화로운 질서 기치로 내세워
역사 교훈 되새겨 '인류 염원' 지켜가야
권력쟁탈 3000년-전쟁과 평화의 세계사/조너선 홀스래그/오윤성/북트리거/3만7000원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평화를 향한 열망, 무력의 한계를 잘 아는 훌륭한 왕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에 나서라 충동하는 이 심장의 격노를 잠재우소서. 아니면, 신이시여, …싸움과 미움과 악마 같은 죽음을 멀리할 수 있도록 내게 담대함을 주소서.”

중국 주나라의 청동기에 새겨진 글은 “천상에서 빛나고 결백하신 상제와 수호자들은 천자에게 막중한 명령과 충만한 축복과 풍요로운 수확을 내리신다”며 ‘천명(天命)’을 제시했다. 이런 명제를 선전한 주나라가 지향한 궁극적인 상태는 거대한 평화, 즉 ‘태평(太平)’이었다.

인류 역사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문학과 국가의 정치적 수사에는 평화를 향한 강렬한 열망이 표현되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평화는 인류의 공통된 염원이다.

그러나 평화를 향한 갈망은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는 현실과 항상 긴장관계에 놓여 있었다. 전쟁이 한 사회를 송두리째 파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음을 보여주는 선사시대의 집단무덤은 전쟁의 역사가 인류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음을 증언한다.
조너선 홀스래그/오윤성/북트리거/3만7000원
브뤼셀자유대학의 국제정치학 교수인 조너선 홀스래그는 ‘권력쟁탈 3000년’에서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늘 평화를 갈망하면서도 평화를 유지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이는 서기전 1000년 즈음부터 20세기까지 세계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정리하며 내놓은 결론이다. 그래서 그는 미국 정치인 헨리 키신저의 말을 빌려 “국제정치의 핵심은 평화와 전쟁”이라고 못박았다.

책은 역사가 진행되며 드러났던 권력의 분포, 정치체제, 정치체 간의 접촉과 교류, 자연의 가치와 환경 변화의 중대성, 국제정치의 사상적 변천을 탐색한다. 특히 국제사회가 국가 혹은 정치체 간의 경쟁과 갈등 자체를 줄이거나, 경쟁의 파괴력을 낮추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음에도 “역사상 모든 사회가 인간의 무한한 권력욕, 국가와 국가의 끝없은 경쟁이라는 동일한 힘에 의해” 작동되었기 때문에 국제정치가 결국은 혼돈의 장일 수밖에 없음을 냉정하게 분석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1차 세계대전은 영국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가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전쟁의 참혹함을 이해한 때가 달리 없을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비극적인 일대 사건이었다. 1914년 6월 세르비아의 한 민족주의자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암살하며 촉발된 긴장은 5주도 지나지 않아 유럽의 강대국 전부가 전쟁에 뛰어드는 무서운 결과를 낳았다. 각국의 산업 역량과 기술력이 총동원되어 전례 없는 규모와 강도의 전투가 이어졌고 전쟁 기간 동안 15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1914∼1918년의 대전쟁은 100년간의 강대국 권력정치가 도달한 비극적인 절정이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그 100년이 정치적 낙관주의시대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1차 대전이 발생하기 100년 전인 1814∼1815년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평화회담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됐다. 9개월이 걸친 회의에 1만6000여명의 사절과 통신원, 로비스트들이 참석했다.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영국, 에스파냐 등 주요 국가들은 세 가지 중심 목표를 설정했다. 한 강대국이 지배할 수 없는 다극적 질서의 회복, 정기 외교 회의를 통한 갈등의 평화로운 해결, 유럽 전체의 구질서를 흔들었던 혁명이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운영위원회도 꾸렸다. 이 시대에는 여성인권, 인도법, 노예제 폐지, 해전규제, 자유무역 등을 논의하는 국제회의들도 열렸다.
브뤼셀자유대학 조너선 홀스래그 교수의 책 ‘권력쟁탈 3000년’은 인류 모두가 평화를 갈망함에도 현실에서는 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이유를 분석한다. 사진은 중동에서 벌어진 전투의 한 장면. 세계일보 자료사진
특히 상업을 통해 “문명을 고취하고, 국민의 시기와 편견을 완화하고, 전면적인 평화가 유지되도록 장려하려” 했다. 1900년까지 200여개의 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또 국제전기통신연합, 상표권 및 특허에 대한 국제사무국, 만국우편연합, 상설국제평화국,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가 설치됐다. 1851년 런던의 ‘세계 산업 생산품 대전시회’를 필두로 한 만국박람회는 세계주의와 인류의 진보를 칭송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했고 런던의 수정궁, 파리의 에펠탑 같은 역사적인 건축물도 지어졌다. 이 시기는 ‘벨 에포크’, 즉 ‘좋은 시대’였다.

조화로운 세계질서를 통한 평화에 대한 기대는 늘 있었다. 서기전 5세기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델로스동맹에 들어온다면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겠다고 다른 그리스 도시들에게 약속했다. 2500년 후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자유세계를 보호하겠다고 선언했고, 중국 주석 시진핑은 전과는 다른 세계질서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전쟁을 벌이는 대신 평화로운 수단으로 경쟁하리라”는 믿음은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나라가 번영할수록 침략자에겐 탐나는 먹잇감되고, 한순간이라도 힘이 약해지면 잠복 중이던 여러 세력 중 하나가 침략을 개시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인다.

저자가 3000년 세계사를 조망하며 냉철하게 분석하는 것은 “진보의 가능성과 퇴보의 위험 모두를 드러내는”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새기기 위한 것이다.

“돌아보건대 세계는 분명 상승하는 곡선을 그려 왔지만, 그 과정에는 급격한 퇴보도 있었다. 미래에 기다리는 새로운 위기를 완화하고 예방하려면 우리는 역사의 양면을 이해해야 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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