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화된 명상 수련.. '나'를 깨달았다는 환상만 주면 끝?

곽아람 기자 2021. 1. 16.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에 집중' 스트레스 해소법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인 지지로 40억달러 산업으로 큰 '마음챙김'
마음챙김의 배신

마음챙김의 배신

로널드 퍼서 지음|서민아 옮김|필로소픽|320쪽|1만7500원

“판단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존 카밧진 매사추세츠 의과대학 명예교수가 불교 명상법에서 착안해 만든 ‘마음챙김(mindfulness)’의 강령이다. 스트레스 해소 및 고통 완화를 위한 힐링 프로그램이다. MIT에서 분자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명상가 카밧진은 1979년 매사추세츠 의과대학 지하 강의실에서 ‘스트레스 완화와 이완 프로그램’ 강좌를 열며 ‘마음챙김’의 시동을 걸었다.

틱 낫한 같은 유명 승려와 카밧진의 친분, 오프라 윈프리나 유발 하라리 같은 유명 인사들의 열광적 지지, 여러 신경과학자들의 승인에 힘입어 다보스포럼 프로그램 중 하나로 자리 잡는 등 서구 사회에 깊숙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구글·페이스북 등 기업들의 생산성 향상 도구로 활용되면서 40억달러 가치 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에서도 한창 유행 중이다.

한국 태고종에서 계를 받기도 한 불교 신자이자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경영학 교수인 저자는 마음챙김을 ‘자본주의적 영성의 최신판’이라 비판한다. ‘맥마인드풀니스(McMindfulness)’라는 원제에 주장이 함축돼 있다. 불교 포교사(布敎師)이자 심리치료사 마일즈 닐이 만든 용어로 ‘패스트푸드처럼 당장은 배를 불리지만 오래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 되지 않는 영적 수행’이라는 의미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는 ‘마음챙김’ 명상법은 맥도날드 같은 프랜차이즈 산업으로 진화했다. 저자는 불교의 윤리적 덕목을 배제한 ‘마음챙김’이 과연 건강한가 묻는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저자는 “현대의 마음챙김 유행은 사업적으로 봤을 때 맥도날드와 같은 길을 걷는다”고 말한다. 맥도날드가 ‘표준화’를 기틀로 삼아 전 세계를 장악했듯 마음챙김의 글로벌한 유행엔 표준화된 8주짜리 교육과정인 대표상품 ‘MBSR(마음챙김에 기반한 스트레스 완화)’이 큰 기여를 했다. 두바이와 서울의 빅맥 맛이 똑같은 것처럼 MBSR의 체계와 교육과정도 전 세계 어디에서나 거의 차이가 없다. 그 결과 마음챙김은 기업뿐 아니라 학교, 군대, 정치로도 스며들고 있다. 영국의 ‘학교 마음챙김 프로젝트’는 5년 동안 100만명의 어린이에게 ‘1:1 집중 마음챙김’을 제공할 4500명의 교사를 훈련시켰다. 미 육군은 마음챙김 기반의 주의력 훈련 8시간을 도입하기도 했다. 팀 라이언 미국 하원의원은 ‘마음챙김 국가’라는 책을 쓸 정도로 열렬한 마음챙김 옹호자다.

무엇이 문제인가? 저자는 ‘마음챙김’이 상업화되면서 “자비와 해탈 같은 불교의 도덕적 가르침은 배제하고 자기계발의 옷을 입은 자기 훈련의 도구만 남았다”고 지적한다. 기업 마음챙김 프로그램의 하루 컨설팅 비용은 1만2000달러(약 1319만원). 저자는 부유층을 겨냥한 이 ‘고급 상품’이 “기업 경영진과 사회 1% 지배층이 주 80시간 근무 후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수단일 뿐 두통에 아스피린을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기능을 한다”고 꼬집는다. ‘판단하지 않는 알아차림’을 강조하는 것이 개인의 도덕지능을 아주 쉽게 무력화할 수 있다고도 우려한다. “불교에서 버리고자 하는 탐욕·분노·망상을 경영상의 결정과 기업 정책이 어떤 식으로 제도화하는지 검토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상업화된 영성(靈性)’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논리적으로 풀어나간 책. 저자는 ‘불교 없는 명상’이라 홍보해 비불교도들의 환심을 샀지만 불교와 권위의 전통이 필요할 때는 틱 낫한 등과의 인연을 언급하며 불교를 액세서리처럼 떼었다, 붙였다 하는 이중적 태도도 지적한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은 결국 ‘내 마음의 문제’”라는 마음챙김의 메시지는 고난으로 얼룩진 삶을 버텨내는 데 분명 위로가 된다. 그러나 책은 ‘마음챙김’의 유행이 ‘나’에게만 매몰돼 고통의 근본적 원인인 사회 구조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풍조를 정착시킬까 우려한다. ‘나’에서 벗어나 ‘우리’로 나아가며 공동체의 유대를 생각하는 ‘사회적 마음챙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곽아람 기자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