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원전에 '정치'를 덧대지 마라

강수돌 고려대 교수·세종환경운동연합 난방특위 위원장 2021. 1. 1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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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9년 5월, 어떤 교수가 말했다.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대기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 최근 탈원전으로 전력 부족분을 메우느라 화력발전 비율이 늘어 고밀도 이물질(이산화탄소)이 발생, 공기가 오염됐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세종환경운동연합 난방특위 위원장

미세먼지의 배경이 ‘탈원전’이라니, 이상했다. 물론 탈원전과 더불어 석탄발전 비중 증가는 맞지만 ‘탈원전’이 미세먼지의 배경이라니, 원전 마피아 논법이었다.

내 답은 이랬다. “미세먼지 걱정은 좋으나, 탈원전이 미세먼지의 원인은 아니다. 석탄발전의 미세먼지·이산화탄소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원전이 답인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붕괴를 보시라. 대안은 탈석탄, 탈원전, 자연에너지다. 물론 에너지 절약은 기본!”

내 반론에 여럿 나섰다. “해외 사례로 반핵을 논하는 건 우습다” “뭐니 뭐니 해도 원자력은 깨끗하고 싸다” “원자력은 생각보다 안전하다”…. 시작은 미세먼지지만 결국 원전을 보는 눈(철학)이 문제!

2020년 11월, 검찰이 ‘원전 수사’에 나섰다. 한국수력원자력과 산업통상자원부를 압수했다. 2018년 6월 ‘월성1호기 폐쇄’ 과정에 경제성 자료가 조작됐고, 관련 문건도 대량 폐기됐다는 것. 원래 월성원전 1호기는 67만㎾급 발전 용량으로 1983년부터 30년 가동됐다. 하나 노후화·고장으로 2013~2015년 6월까지 중단됐다. 수리(7000억원 소요) 후 원안위가 수명을 7년 연장했다. 2017년 2월, 행정법원은 이 연장을 “위법”이라 했다. 반복된 고장과 극도의 사고 위험 탓에 2018~2019년, 조기 폐쇄키로 했다.

현 검찰 수사는 그 자체가 정치경제적이다. 시기도 한참 늦었고, 보수야당(국민의힘)에 가까운 감사원장이 참고로 준 자료가 수사의 출발점! 2020년 10월 감사원 발표는 초점이 원전의 경제성 문제라 했으나, 언론은 이 수사를 ‘추미애·윤석열 갈등’ 프레임으로 봤다.

그사이 새해 7일, 포항MBC는 “경주 월성원전 부지, 방사능에 광범위 오염”이라 보도했다. 지하수 배수로에서 최대 71만㏃(베크렐)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차수막 파손이 7년 방치됐다고 한다. 10일엔 “원전 주요 설비인 사용 후 핵연료 저장수조의 지하수에서 과도한 삼중수소가 검출됐다”고 했다. 삼중수소는 내부피폭으로 암과 유전자 변이를 부른다.

여기서 우리는 원전의 정치경제학을 읽는다. 첫째, 원전 하나 건설에 수조원이 든다. 이 막대한 원자력 비즈니스 주변에 정치, 경제, 관료, 학계, 검찰, 언론 등 이른바 ‘원전 마피아’가 꼬인다. 이는 ‘비용의 사회화, 이윤의 사유화’ 법칙을 따른다. ‘이명박근혜’ 시절, UAE 원전 수출(21조원 규모)이 큰 업적으로 선전됐다. 2017년 현대·대우·GS·한화·SK건설·대림산업 등 건설사의 해외 수주액은 약 30조원으로, 그 절반이 중동이었고 원전 건설과 밀접하다. 문제는 이윤을 위한 비용이 무고한 지역민의 안전과 생명인 점! 이를 담보로 돈 잔치가 벌어진다.

둘째, 안타깝게도 이 거대 돈벌이를 원전 노동자, 또 그 이해대변자 노조가 공유한다. 그 임금은 상대적으로 높다. 치명적 질병, 사고, 목숨에 대한 보상이다. 이들은 안전 걱정을 하면서도 일자리에 목맨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원전 마피아와 동반자가 된다. “설마 무슨 일 날까?”하는, ‘설마’ 심리가 공범자를 만든다.

셋째, 원전 가동과 폐쇄 결정은 내밀한 정치경제 셈법에 따른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가 중요하다. 촛불혁명 결과 (탈원전과 신고리 5·6호기 중단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 이후 ‘원자력 공론화위원회’가 석 달 가동됐다. 시민위원 471명이 숙고 끝에, 일단 시작된 건 하되 향후 신규는 중단, 노후 원전은 폐쇄로 결론 냈다. 경제성과 안전성을 고려했단다. 그런데 경제성과 안전성이 양분될까? 사람이 병들거나 죽으면 그게 반(反)경제인데? 모든 경제성의 출발은 안전성이고, 안전사고는 경제성을 무(無)로 만든다. (후쿠시마는 물론 미국 스리마일섬, 소련 체르노빌 원전 붕괴를 보라.) 월성 1호기 폐쇄 전 10년간 잦은 사고로 8000억~9000억원이 적자였다. 하나 이 고장은 비용보다 생명 문제다. 그런 원전의 (재)가동 허가가 수사 대상!

이제는 물어야 한다. 지금 가동 중인 원전, 그리고 지금까지 쌓여있는 2만여개의 핵 연료봉(고준위 방사능폐기물, 반감기까지 10만년 이상 지하 500m 깊이 묻어야 함), 그보다 훨씬 잦은 중저준위 방사능 누출 등 제반 위험에 무슨 답이 있나? 과연 우리는 살기 위해 사나, 죽기 위해 사나? (현재·미래의) 생명을 담보로 거둔 가치는 진정 가치로운가? 우문에 현답이 절실하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세종환경운동연합 난방특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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