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예술가의 영점 조정
[경향신문]
며칠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공성훈의 작가노트를 보았다. “과거에는 미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미술가와 미술대중 사이에 암묵적인 합의가 가능했지만, 오늘날에는 미술의 역할과 정당성에 대해 작가 스스로가 정의를 내리고 그 결단을 바탕으로 작업을 꾸려나가야 하는 실정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참으로 오랫동안 영점 조정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상에서 한 30㎝쯤 떠서 다닌 것 같던 학창 시절을 지나, 어디에 발을 딛고 서야 할지 막막한 현실로 내려서야 했을 때, 그는 눈앞의 뜬구름을 걷어내고 현실을 비추며 파고드는 길을 선택했다. “땅을 디디고 있는 발바닥의 감각이 고개를 들어 멀리 별을 보게 만드는 근거”가 되기를 바란 화가는 그저 아름답고 목가적인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 안에 삶의 단면을 은유적으로 담고 싶었다.
스산한 날씨, 폭설, 세찬 파도가 몰아치는 장면 안으로 들어간 화가가 포착한 자연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 앞에서, 관객은 삶을 좌지우지하지만 어디로부터 오는지도, 왜 오는지도 모를 거대한 힘과, 그 힘을 대면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짐작한다. “불안정한 삶의 한가운데에서 불확실한 운명이 휘두르는 힘을 지켜봐야 하는 무력감, 어디에 저항해야 할지도 모를 만큼 생의 방향을 잃어버린 상실감, 동지가 없고 철저하게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고독감”이 파도를 향해 선 이의 등 뒤에 새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해서 독립적 인간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천칭의 양쪽 접시에 세계와 내 존재를 올려놓으면 균형을 이룰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남겨진 그림은 화가의 당부를 전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d/p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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