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찍은 한국영화, 판타지·허전함 달래는 장면 많아
오사카 등서 5개 작품 릴레이 상영
'대관람차' 공동연출 백재호·이희섭
"한·일 비슷한데 묘하게 다른 구석
여행지 같은 느낌이라 꿈처럼 느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1월 9, 10일에는 5개 작품의 감독, 프로듀서, 배우가 참가하는 온라인 교류회도 열렸는데 내가 진행을 맡았다. 교류회는 유튜브로 실시간 중계했고 시청자들은 채팅창에 질문이나 소감을 올렸다. 나는 그 내용을 참가자들에게 전달하면서 진행했다. 이틀 동안 2시간씩 진행했는데 내가 준비한 질문을 하기 전에 시청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데 시간이 금방 가 버렸다. 그만큼 질문이 많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한국과 일본의 영화인이나 관객이 직접 만날 기회가 없어진 상황에서 더더욱 소중한 시간으로 느껴졌다.
영화 보고 ‘코끼리 없는 동물원’ 들러
주인공 우주(강두)가 음악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계기를 만든 하루나(호리 하루나)의 근무지로 덴노지동물원도 나왔다. 덴노지동물원은 집에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데 생각해보니까 어렸을 때 간 이후 30년이상 가 본 적이 없다. ‘대관람차’에 자극을 받아 오랜만에 가봤다.
‘대관람차’에서는 우주가 덴노지동물원에 있는 코끼리상을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남자애가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동물원 코끼리는 죽을 때 되면 어디로 가요?” 당황한 우주는 “와카라나이(잘 몰라)”라고 일본어로 답하는데 이 장면은 우주의 상상인지 뭔지 애매한 판타지적인 장면이었다. 그 장면이 뭐였나 생각하면서 덴노지동물원을 돌아다니는데 ‘동물원에는 코끼리가 없습니다’라는 표시를 발견했다. 2018년에 ‘라니히로코(ラニー博子)’가 죽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찍은 시기를 생각하면 라니히로코가 죽은 건 촬영 후일 텐데 영화와 현실이 교차한 꿈 속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라니히로코가 덴노지동물원으로 온 건 1970년. 그해 개최된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기념해서 인도 정부가 보낸 것이다. 일본에서는 동물원 동물 뉴스가 자주 TV나 신문에 보도된다. 라니하나코가 죽었을 때 나는 한국에 있어서 몰랐지만 이번에 찾아보니까 많은 매체가 보도했고 헌화대에 꽃을 바치는 시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 새해가 시작하면 설레는 기분이 들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우울한 분위기다. 전쟁 중도 아닌데 코끼리가 없는 동물원을 걸어 다니면서 코로나와의 전쟁은 언제 끝나나 멍하게 생각했다.
한국 감독이 일본에서 찍은 영화의 또 하나의 특징은 주인공이 실연을 당하거나 뭔가 허전한 마음을 일본에서 달래는 것이다. ‘대관람차’에서는 주인공 우주가 한국에서 오사카로 출장 왔다가 귀국하는 비행기를 놓친 김에 그대로 회사를 그만두고 오사카에서 지내기로 한다. 그 이유는 실종한 회사 선배를 찾기 위해서였고, 오사카에 있는 사이에 옛날에 포기했던 음악을 다시 시작한다. 잃어버린 소중한 사람과 포기한 꿈. 마음의 구멍을 채워주는 건 한국이라는 일상을 떠나서 일본이라는 비일상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만은 아닌 듯하다.
‘대관람차’라는 타이틀, 영화 속에 나오는 오사카 덴포잔 대관람차를 보면서 천천히 도는 관람차 또한 위로의 상징이 아닐까 싶었다. 백재호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러 답사하러 오사카에 왔을 때 관람차가 눈에 굉장히 많이 들어왔다. 오사카에서 서너 개 봤는데 ‘이 나라엔 왜 이렇게 관람차가 많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양국 교류 살아나는 새해 되길 소망
나는 지금까지 일본에 관람차가 많다거나 특히 오사카에 많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러고 보니까 오사카의 중심 우메다(梅田)에 관람차가 있는 걸 외국사람이 보면 신기할 수도 있겠다. 일부러 놀이공원까지 가서 관람차를 타는 건 뭔가 아깝지만 도시의 또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는 관람차는 나도 좋아한다.
생각해 보니까 한국에서 관람차를 본 기억이 없다. 있긴 있겠지만 일본에 비하면 확실히 적은 것 같다. 일본사람보다 평균적으로 성격이 급한 편인 한국사람한테는 천천히 도는 관람차는 답답한 것일까? 주변에 물어보니까 “안보상의 문제 때문이 아닐까”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적어도 감독이 일본에서 위로받은 경험이 있어서 영화에 그런 요소가 들어가는 것 아닐까 싶다. 나 또한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는 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장소는 일본이다. 모국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여유로운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이 나한테는 오래 있으면 미지근하게 느껴지고 또 열정적인 한국에 가고 싶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식적인 온라인 교류회가 끝나고 관계자만 대화하는 시간에 서로 “한국에 가고 싶다” “일본에 가고 싶다”고 하며 위로했다. 호리 하루나 배우가 “온라인으로 만날 수 있는 건 편리하고 좋지만, 또 이렇게 보니까 직접 보고 싶어지네요”라고 한 말에 공감했다. 올해는 부디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해가 되기를. 신년의 소원은 아주 심플해졌다.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한국영화에 빠졌다.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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