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자살공화국서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하루 평균 37.8명.. 일본보다 높아
유명인서 주변인까지 예외 없어
코로나 사태로 더 증가할까 우려
얼마 전에 아는 교수의 부음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나이 고작 66세, 작년에 보았을 때 얼굴에 병색이 드리워 있지 않았고 어조에서도 병세를 느낄 수 없었다. 그분이 책을 낸 출판사의 대표에게 전화를 해보았더니 들려주는 말이 더욱 놀라웠다. 정년퇴임 이후 공허감이 밀려와 우울증이 심해졌고, 우울증을 감당하지 못해 투신자살했다고 한다. 우울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주요 원인이었던 것이다.
몇년 전 일이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학생이 있었다. 지각과 결석도 잦았다.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집안환경이 무척 불우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는 연락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학생이 마음의 지도에 그리는 좌표는 우울증의 극한, 자살에 가 닿아 있었다. 살아야 할 이유보다 죽어야 할 이유가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수박 좋아하니? 좋아한다고 했다. 집에 냉장고가 있으면 차게 해서 먹어보라고 했다. 굵게 썰어 붉은 과즙이 뚝뚝 떨어지게 베어 먹어 봐. 저세상에 가면 수박 못 먹어.
등산 좋아하니? 동네 뒷산에 간혹 올라간다고 했다. 좀 높은 산에 올라가 봐. 바람이 불어올 거야. 외투를 벗고 그 바람을 맞아봐. 심호흡을 해봐. 폴 발레리란 시인이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말한 것이 실감날 거야.
여행 좋아하니? 좋아하지만 거의 못 갔다고 했다. 예전에 어느 부자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는데 세상은 넓고 볼 것이 참 많다고 했다. 못 보고 죽으면 억울하지 않을까? 하고는 인도의 타지마할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얘기했다. 선생님은 이 중 하나밖에 못 봐서 다 보고 죽을 거라고 했더니 미소를 지었다.
시집 몇 권을 주고는 돌려보냈다. 등을 돌며 나가는 학생을 다시 불러 이런 말을 덧붙였다. 네가 살아갈 날들에 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는지 글로 써보라고 했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했다. 뒷말은 김종삼 시인의 시구였다.
내 말이 도움이 되었을 턱이 없지만 이 학생은 무사히 졸업했고 취직을 했다. 그때 용기를 불어넣어 준답시고 역경을 이긴 사람들의 거창한 성공담을 하지 않은 것은 백번 잘한 일이었다.
전직 대통령이 자살했다. 서울시장이 자살했다. 누구의 측근이 자살했다고 한다. 연예인들 중에 자살한 이들이 많았다. 요즈음 아이들 중에는 연예인 지망생이 꽤 많다. 노래를 잘 불러 칭찬을 들으면 연예인이 될 꿈을 갖는다. 많은 아이들이 연예인의 삶을 동경한다. 엄청 유명해지고 돈도 잘 버는 것 같다. 그런데 누가 자살한다. 우리 사회가 자살자를 영웅시하면 안 된다. 자살하면 모든 죄가 덮이는 풍조도 좋지 않다.
코로나 사태가 자살을 유발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량 실업, 사회적 고립, 불안감, 경제적 궁핍 등이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지금 정치권은 정쟁을 일삼을 때가 아니다.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우리 사회의 음지를 잘 살펴보고 복지의 햇살을 비춰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 헐뜯는 데 날을 지새운다. 대한민국이 자살공화국이 되면 절대로 안 된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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