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 이란 자금, 전화위복이 될 수 있나?

정의길 2021. 1. 1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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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억류 선박과 선원들의 석방을 교섭하기 위해 이란을 방문했던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1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인천공항/연합뉴스

“그들(한국인)은 뺨을 한대 맞아야 했다… 그래서 우리가 의약품과 백신 구매에 절박할 때 그들이 이란 돈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파이낸셜 타임스>에 인용된 이란 정부 관계자)

이란이 억류 중인 한국 유조선 선원들의 석방 교섭을 위해 이란을 방문했던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14일 눈에 띄는 성과 없이 귀국했다. 외교력 부재라고 비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한국과 이란 사이의 양자 문제가 아닌, 미국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018년 5월 이란핵협정(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이란에 제재를 다시 가하면서, 한국에 묶이게 된 70억달러(약 7조6000억원)의 이란 자금이 이 사건의 핵심이다. 한국도 이 자금을 이란에 돌려주고 싶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서슬에 어쩌지 못해왔다. 하지만 이란으로서는 지금 한국이 많이 서운하다. 한국이 미국의 눈치를 너무 본다는 것이다.

미국의 제재로 세계 각국에 묶여 있는 이란의 자금은 1000억~1200억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한국에 묶여 있는 70억달러는 가장 많은 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때 한국은 중국·인도 등과 함께 제재 유예를 받으면서 이란의 석유와 가스를 많이 수입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과 이란의 교역량이 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격적으로 제재를 재부과하면서 한국에 이란의 많은 돈이 묶이게 됐다.

그 이후 한국이 이란에 상대적으로 성의를 표시하지 않았다고 이란 쪽은 서운해한다. 그 시점이 트럼프가 전격 수락한 북-미 정상회담 프로세스와 겹친 사정이 크다. 한국은 북-미 관계 정상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 외교의 모든 것을 걸다시피 했다. 북한과는 대화하지만, 이란은 목을 조이겠다는 트럼프의 눈치를 한국은 너무 봤다.

사실 이란은 각국에 묶인 자신들의 돈을 가지고 해당 국가와 시비를 붙지 않았다. 유독 한국에만 초기부터 불평과 호소를 해왔고, 이는 한국 언론에도 보도됐다. 중국과 인도는 초기부터 이런저런 방식으로 이란을 달래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쪽의 한 관계자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중국도 이란의 생존을 위해 현금을 주어왔는데, 한국은 상관없다는 듯이 행동했고, 이는 이란을 격노케 했다”고 전했다.

압돌나세르 헤마티 이란 중앙은행 총재도 <알자지라>에 “우리는 다른 나라들에도 자금이 있는데,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그 자금에 접근해 사용했다”며 한국의 무성의를 성토했다. 이라크에도 이란의 자금 50억달러가 잠겨 있는데, 이라크는 이란이 코로나19 백신을 구매하는 데 이 자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일부를 돌려주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역시 국제백신조달기구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이란이 백신을 확보하는 데 이 자금을 활용하도록 미국으로부터 제재 유예 조처를 받아놓았다고 밝히고 있다. 또, 그 자금의 극히 일부를 활용해 이미 약품과 의료장비가 이란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이란은 한국이 백신 구매에 필요한 자금을 제이피모건을 통해 송금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가로챌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이 직접 나서서 백신 등 약품을 구매해 자신들에게 전달해달라는 바터무역 방식을 제안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이용할 수 있는 액수가 10억달러는 돼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으로도 전해졌다.

이번 최종건 차관의 이란 방문 때 구급차 제공 문제가 거론됐다. 이란은 한국이 제안했는데 자신들이 거절했다고 밝히고, 한국은 이란의 요청이었다며 맞서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란의 요구 수준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견이 생기는 것이다. 이는 이란이 이 문제를 가지고 미국을 떠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조여서 미국을 건드리려는 성동격서 전술이다. 미국의 허락과 양해 없이는 한국이 해결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으로 보인다.

한국으로서는 억울하나,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한국이나 이란이나 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트럼프 행정부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는 불가능했으나, 이제 곧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에서 1순위는 이란핵협정 복귀다. 기본적으로 미국이 움직이지 않고는 풀릴 수 없는 한국 내 이란 자금 문제에 미국이 성의를 보이느냐가 이란핵협정 복원의 시금석이 된다.

바이든 차기 대통령은 자신이 취임하자마자 복원하려는 이란핵협정이 북핵 협상의 청사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으로서는 이란 자금 문제 해결을 가지고 곧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를 견인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도 이 문제가 이란핵협정 복원에 첫걸음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한국이나 이란이나 이 문제를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맞춰 쓰도록 예열해야 하고,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 차관은 귀국하면서 “선박과 선원에 대한 이란 정부의 조치가 신속히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한국과 이란 양국은 커다란 걸음을 함께 내디뎠다”고 말했다. 우려되는 것은 기존 외교 당국 내의 타성이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는 무시하는 한국 외교관들의 비루한 자세다.

한국이 더 적극적이고, 희생하는 자세로 이 문제에 임해야 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로서는 바이든 행정부 시대에 북핵 문제를 푸는 첫 단추이기도 하다.

정의길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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