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 목까지 차올랐다..증권사 신용대출 잇따라 중단

삼성·대신證 신용융자 중단
이주열 한은총재, 과열 경고
"충격 오면 감당 어려운 손실"

◆ 금융시장 긴급점검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5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한국은행]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빚투(빚내서 투자)' 과열에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신용거래융자(신용대출) 중단에 나섰다.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투자 열풍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에도 폭발적으로 이어지며 이들의 대출 가능 한도를 초과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개인투자자의 '빚투' 열풍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공개 경고장을 날렸다.

15일 대신증권은 오는 18일부터 신용대출을 중단한다고 투자자들에게 공지했다. 증권사는 자기자본 대비 100% 규모 이내에서 신용대출이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의 신용대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자체 대출 한도가 소진됐기 때문이다. 삼성증권 역시 같은 이유로 13일부터 신용대출을 중단했다.

이를 방증하듯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3일까지 국내 증권사 신용대출은 1조7586억원 증가했다. 증권사 신용대출이 일평균 1000억원 이상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증권사 신용대출 전체 잔액은 지난 7일 사상 처음 20조원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같은 '빚투' 증가는 점차 속도가 붙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2019년 말 신용대출 잔액은 9조2000억원으로 2016년 대비 30%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불과 1년이 지난 지난해 말 신용대출 잔액은 19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0조원 늘어나며 두 배 넘게 불어났다. 개인투자자가 지난해 코스피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통틀어 사들인 주식 규모는 총 63조8000억원이다. 이 중 6분의 1 가까이가 신용대출을 통해 쌓아올린 '탑'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주열 총재는 이 같은 빚투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이 총재는 이날 금통위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과도한 레버리지(빚)에 기반한 투자 확대가 우려스럽다"며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가격 조정이 있을 경우 투자자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의 손실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환 기자 / 문지웅 기자]

이주열 "경기개선 확신 못하는데…주가 상승 너무 빨라"

가계 은행대출만 1000조 육박
일자리·소비 최악 수준인데
과도한 가계부채도 '빨간불'
백신공급차질 등 돌발충격 땐
금융기관 부실·기업파산 우려

30대 직장인 이 모씨는 최근 정기적금을 깨고 1000만원을 주식 계좌에 넣었다. 이씨는 "연초 삼성전자에 투자해 80% 이상 수익을 냈다"며 "투자에 자신감이 붙었는데 밑천이 모자라 신용융자를 받아서 투자금을 늘렸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 모씨는 코로나19로 타격을 입고 대출로 연명했지만 더 이상 자금을 구할 수 없어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박씨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는 은행에서 1년간 매출액, 재정 상태, 상환 능력을 보고 대출을 해줬는데 지난해부터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면서 "사실상 소상공인대출은 끊겼다고 보면 된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증시 등 자산시장이 급등해 '빚투(빚내서 투자)' 현상이 강해지면서 지난해 가계대출이 100조원 넘게 늘어났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어 대출로 연명하는 기업 등이 늘면서 기업대출 역시 107조원 이상 불어났다.

전문가들은 경제 주체가 모두 빚더미에 오른 상황에서 코로나19 백신 공급 차질 등 돌발 충격이 발생하면 한국 경제가 모래성처럼 부서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15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가계 부실 위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거시경제에도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총재는 "주가 상승 속도가 과거보다 대단히 빨라서 '빚투'로 투자할 경우 가격 조정에 따라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총재는 이어 "투자자가 예상한 만큼 경기가 개선될지 등도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 가계빚 1940조원 시대

지금은 우리 경제가 수출 등으로 잘 버티고 있지만 '가계대출 급증→돌발 경제 충격→가계 파산→금융기관 부실→기업 자금줄 단절'이란 파국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 한은에 따르면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988조8000억원으로 1년 새 100조5000억원 급증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가계대출 잔액은 이르면 이달 중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관측된다. 비은행 대출까지 합하면 대출은 이미 1682조원까지 올라갔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1.1%로 전년 동기 대비 7.4%포인트 불어났다. 사상 처음으로 가계부채(1940조원)가 나라 경제 규모(1918조원)보다 커진 것이다. 코로나19 타격에 대출로 연명하는 곳이 많아지면서 기업대출도 빠르게 늘었다. 은행의 원화대출 잔액(976조4000억원)은 1년 새 107조4000억원 증가했다. 2009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큰 연간 증가 폭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이달 중 은행 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돌파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며 "미국이 2023년까지 기준금리 인상은 없다고 했지만 경기 회복에 따라 이 시점이 당겨지면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계 부채 중심에 생산가능인구 주축인 20·30대가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30대 이하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LTI)은 최근 1년 새 200.3%에서 221.1%로 치솟아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가파르게 늘었다. 이인호 한국경제학회 회장은 "자산시장이 버블 징조를 보이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시중 유동성을 다시 흡수하는 게 중요한데, 금리 인상 등에 따른 시장 저항이 커 정책 이행이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 신용손실 위험 67조원 리스크

우리나라 성장률이 신용위험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하지 않다. 올해 한은이 예측한 성장 전망은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성장률에서 최대 1.6%포인트(2.2~3.8%)나 차이가 발생할 정도로 변동성이 심하다. 내수도 불안하다. 15일 기획재정부의 '1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카드 국내 승인액은 전년 동기 대비 3.3% 감소해 지난해 4월 이후 8개월 만에 감소세를 기록했다. 고용지표는 재앙 수준이다. 지난해 12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62만8000명 감소해 11월(-27만3000명) 대비 감소 폭이 크게 확대됐고, 2020년 연간 실업률은 4%로 뛰었다.

한은은 늘어난 빚이 자산시장으로 흘러간 가운데 갑자기 버블이 꺼지는 강한 충격이 발생하면 가계와 기업이 66조8000억원에 달하는 경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은 "주택 가격이 급락하거나 고용이 악화되는 지역에서 영업하는 금융기관의 대출 부실과 자금 회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신용위험 우려가 큰 상태이지만 실물경기 회복이 지연되는 만큼 기준금리 인상을 고려하기에는 이르다"고 강조했다.

결국 경제 회복 근간은 기업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 총재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업 활동을 촉진해 경쟁력을 높이고 수익성을 제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환 기자 / 전경운 기자 / 송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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