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수표 같은 세금..세무사 98% "잦은 세법개정으로 일 못하겠다"

김정환 2021. 1. 15. 17: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무사 205명에게 물어보니
개정세법 올해 42군데 적용
부동산 정책따라 누더기 수정
84% "양도세 개정 가장 문제"
소송 우려로 세무상담도 꺼려
답변한 세무사 10명중 9명은
"공평과세 아닌 사실상 증세"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세법이 바뀝니다. 국세공무원들마저 제대로 답을 못해 줄 정도예요." "제가 명색이 세무대리인인데, 세법을 이해할 수 없어요. 세무사 자격증을 반납할 생각입니다."(A세무사)

"조세정책 시야가 너무 좁습니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정부가 세법을 바꾼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요. 꼭 면허 없는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 같아요."(B세무사)

현 정부 '누더기 세법'에 세무 전문가들마저 법 규정을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호소하고 나섰다.

15일 매일경제가 한국세무사회에 등록된 세무사 205명을 대상으로 작년 12월 24일부터 올해 1월 11일까지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98.5%는 "수시로 바뀌는 정부 세법 때문에 세무 업무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세무사들은 세법과 국민 사이에 있는 일선 전문가 집단이다. 이들마저 세법 바뀌는 속도를 못 따라가겠다고 호소하는 것은 세제와 관련한 국민 혼란이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국회와 정부가 뜯어고쳐 올해 이후 적용될 주요 세법 변경만 부동산·금융·국민생활 부문에 걸쳐 42군데에 달한다.

정부 세제 운영과 관련해 세무사들은 "전문가가 없다"고 일갈하며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정부 세제에 대한 평점에 F학점을 준 세무사가 44.3%로 가장 많았다. C학점(17.2%), D학점(16.1%), E학점(14.6%) 등 낮은 학점이 뒤를 이었다. 세무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는 △법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빨라 현장에서 혼선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 △정치적 목적으로 세금을 이용하며 법적 안정성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 정책 풍향에 따라 바뀌는 법

세무사 84%는 대표적 문제 세목으로 양도소득세를 꼽았다. 종합부동산세(9.8%), 상속·증여세(1%), 종합소득세(1%)에 비해 문제가 있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현 정부 들어 부동산 정책이 25번 바뀐 가운데 양도세 관련 세법은 다섯 차례 개정됐다. 올해 적용 세법 가운데서는 1가구 1주택 비과세 보유기간, 2년 미만 보유자 세율 인상 등 6군데가 달라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포세(양도세 상담을 포기한 세무사)'라는 신조어마저 등장했다. C세무사는 "정부가 세법을 누더기로 만들었다"며 "수십만 원 벌자고 잘못 상담했다가 수천만 원 소송에 휘말릴 수 있어 아예 양도세 관련 상담은 받지 않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역풍을 맞는 건 결국 국민이다. 난수표 세법에 전문가인 세무사를 찾아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세법은 물론 대출, 청약 등 부동산 관련 규정이 수시로 바뀌며 국민은 1주택자도 9억원 이상 되는 집을 매매하려면 깨알 같은 규정을 모두 꿰고 있어야 한다.


◆ 90% "국민 세 부담 늘어"

현 정부가 강조하는 '공평과세'의 속내는 증세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가 공시가,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등은 공평과세라고 주장하는데 따른 평가를 묻자 세무사 85%는 '사실상 증세'라고 응답했다.

세무사 90.2%는 현 정부 들어 국민이 체감하는 세 부담이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D세무사는 "현 정권이 국민 다수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정치적 목적으로 일관성 없게 과세한다"고 토로했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원칙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반응이 대다수(91.2%)다. 코로나19 등으로 정부 지출이 늘고 있는 가운데 세무사 절반 이상(58.5%)은 향후 세입은 세금 사각지대를 메우려는 세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세무사는 "정부가 부동산 등 대처가 어려운 세원을 놓고 일률적으로 높은 증세를 단행하며 중산층 고통이 심해지고 있다"며 "세금 중과에만 나서지 말고 시장 흐름에 맞는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