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못보는 남자..책 읽어주는 여자
목소리·감촉으로 느끼는 진실한 사랑
새로운 낭독자로 온 하얀 머리칼의 여자 '마리'는 달랐다. 덤벼드는 루벤을 가뿐하게 제압하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책을 읽어준다. 그간 자신을 꽁꽁 감춰두며 살았던 루벤은 마리의 단호한 행동과 기품 있는 목소리에 감화돼 점차 마음을 연다. 루벤은 보지 못하는 마리의 실제 모습과 루벤이 상상하는 마리의 아름다운 모습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예상치 못한 난관은 마리에게도 깊은 상처가 있었다는 것. 마리는 어릴 때 학대를 받아 얼굴과 온몸에 흉터가 가득하고 터치를 극도로 싫어한다. 시각을 쓰지 못해 손끝으로 만지며 세상을 감각하는 루벤을 마리는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마리의 마음을 여는 건 루벤의 진심. 그는 마리를 위해 싫어하던 목욕도 하고, 마리를 따라 책의 냄새도 맡아 본다. 마리의 흉터에 대해서는 '얼음꽃'이라 불러준다. 자신의 감정이 두려워 도망도 쳐봤지만 계속된 구애에 마침내 마리도 마음을 움직인다. 하얗게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루벤과 사랑을 맹세한다.
어렵게 이뤄진 사랑이건만 시련은 어김없이 찾아 온다. 의학의 발달로 루벤이 수술로 시력을 회복하면서다. 상상과는 다른 자신을 보고 루벤이 실망할 것을 두려워한 마리는 그의 곁을 떠난다. 루벤이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며 영화 장면은 보다 다채로워진다. 그간 흰색과 검은색 등 무채색이 가득했던 저택도 계절이 흐르며 신록으로 물들고, 또 낙엽도 맞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루벤의 마음속은 어두워진다. 세상이 캄캄하던 때 자신의 마음을 비췄던 마리의 빈자리를 아무도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부러 눈을 다시 가리고 생활하면서 마리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그는 결국 마리를 찾아 나선다. 비록 마리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냄새, 그녀의 감촉으로 다양하게 마리를 그려 왔던 루벤의 감각이 이때 빛난다. 관객도 루벤을 통해 세상을 지각한다. 부족한 시각을 보완하는 청각·촉각 등의 표현이 탁월하다. 루벤과 마리가 커튼을 사이에 두고 교감하는 모습은 사락사락 맞닿는 커튼 소리로 그려낸다. 장면마다 꾸며주는 성악·현악 반주도 꼭 맞는다.
네덜란드 여성 감독 타마르 반 덴 도프가 연출했다. 루벤은 벨기에 배우 요런 셀데슬라흐츠, 마리는 네덜란드 배우 할리나 레인이 연기한다. 15세 관람가.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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