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적 인간'들의 서점

윤성근 2021. 1. 1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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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나는 곧 출간될 책 〈서점의 말들〉 원고 마지막 부분을 다듬느라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책은 서점에 관한 내용이면서 한편으론 그 서점을 찾아가는 사람들, 그러니까 손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서점에 가면 얼마 전부터 계속해서 '산책'과 관련된 다른 책들을 자주 살펴보곤 한다.

나는 혼자 작은 서점에서 일하며 끄적끄적 책을 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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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나는 곧 출간될 책 〈서점의 말들〉 원고 마지막 부분을 다듬느라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책은 서점에 관한 내용이면서 한편으론 그 서점을 찾아가는 사람들, 그러니까 손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점이라고 하면 인터넷서점도 있지만 진짜 서점은 ‘머리나 심장이 아닌 온몸으로 밀고 나가’ 만나야 하는 곳이다. 이런 생각에 닿았을 때 내 관심은 실제로 몸을 움직여 방문하는 서점과 그곳까지 가는 과정에 기울었다. 중요한 것은 마우스를 클릭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신체를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말하자면 ‘책방 산책’이라고 할까?

그런 이유로 서점에 가면 얼마 전부터 계속해서 ‘산책’과 관련된 다른 책들을 자주 살펴보곤 한다. 산책을 주제로 쓴 책은 적지 않다. 고전이 된 루소의 책부터 디킨스의 유유자적 걷기 여행, 산책을 좋아했다는 일본 작가 나가이 가후의 책도 있다. 그런가 하면 유럽엔 보들레르라는 ‘시인 산책자’가 유명하다. 파리 시내를 걸었던 보들레르의 산책을 떠올린다면 뒤이어서 발터 벤야민이 따라 나온다. 때마침 벤야민 연구자인 윤미애 교수가 쓴 책 〈발터 벤야민과 도시산책자의 사유〉를 만났다. 벤야민의 산책에 대해서는 파편적으로 이런저런 책들에 많이 들어가 있지만, 본격적으로 그런 내용을 다룬 책은 없다.

벤야민이 도시 산책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그의 선배 ‘프란츠 헤셀’의 영향이 크다. 헤셀은 베를린 시내를 산책할 때 벤야민을 데려갔고, 이것은 훗날 벤야민이 보들레르의 산책을 이해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나아가 이 집념 어린 학자는 도시의 모든 사소한 곳까지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시도, 즉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도전하게 된다.

윤미애 교수는 먼저 벤야민의 〈일방통행로〉 속에 숨겨진 산책로를 탐구한다. 뒤이어 이 산책은 벤야민이 어린 시절 보고 느꼈던 베를린의 거리 이야기와 도시 고고학까지 뻗어 나간다. 산책 도중 문득 들어간 어떤 장소에 대한 사유도 이 책에서 빠질 수 없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서점도 당연히 그중 하나일 것이다. 벤야민이 말한 다양한 ‘사적 인간’들이 손님으로 들어가서 책을 고르던 도시 광장 한 귀퉁이 서점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혼자 작은 서점에서 일하며 끄적끄적 책을 쓰는 사람이다. 이 또한 현대 ‘사적 인간’의 한 모습이리라. 어느 날 나는 벤야민과 닮은 누군가가 우리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상상을 한다. 그는 산책자이면서 손님이다. 나는 손님에게 인사하고 그는 이곳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사유할 것이다. 서점이란 바로 그런 장소다. 책이라는 물건을 사고파는 가게인 동시에 사람을 사유하게 만드는 곳. 나는 이 멋진 곳에서 오늘도 이름 모를 산책자들을 기다린다.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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