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맛 혹평에도 한해 수십억개 팔린 음료는?

서정원 입력 2021. 1. 15. 17:06 수정 2021. 1. 2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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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 캔씩 팔리는 에너지 드링크 '레드불'은 하마터면 세상에 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시장조사 당시 혹평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보통 시음회를 열면 "제 입에는 안 맞네요" "아이들 음료 같아요"와 같은 식으로 완곡하게 비난받기 마련인데 이 음료는 "누가 돈 줄 테니 먹으라고 해도 못 먹을 쓰레기 같은 맛이네요"라는 평이 그나마 점잖은 축에 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통상적으로라면 경영진은 제품 출시를 포기하는 게 맞는다. 비용과 편익을 정확하게 비교해 언제나 편익이 큰 쪽을 택하는 게 경제학 교과서가 알려주는 소비자 모형인데, 레드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편익이 0에 가깝다고 말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진은 굴하지 않고 시장 출시를 밀어붙였다. 그들의 믿는 구석은 심리학 기법인 '플라세보 효과'(가짜 약 효과)였다. 플라세보 효과는 의사가 환자에게 가짜 약을 투여하면서 진짜 약이라고 말했을 때 일부 환자가 호전된 상황에서 유래한 것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믿음 덕분에 실제로도 그 효능이 발생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레드불은 '맛있고 큰 병에 담긴, 가성비가 뛰어난 음료'로 인식되길 거부했다. 대신 맛없고 담겨 있는 캔도 조그맣지만 가격은 비싼 '프리미엄 에너지 드링크'로 포지셔닝했다. 음료의 역겨운 맛과 작은 용량은 사람들에게 '진짜 강력한 효과'를 담고 있다는 암시를 줬고 마침내 큰 성공을 거뒀다.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과 미국 미시간대 연구진은 이 음료로 실험까지 했다. 동일한 칵테일에 각각 '보드카' '과일주스' '레드불'이라는 라벨을 붙여 사람들에게 마시게 했는데, 레드불을 마신 그룹이 남들보다 더 많이 취하고 더 대담한 행동을 감행한 것으로 보고됐다.

로리 서덜랜드의 저작 '잘 팔리는 마법은 어떻게 일어날까?'는 이 같은 일화를 소개하며 소비자들의 의사 결정이 언제나 '합리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논리·이성·합리보다 무의식과 심리학적 요인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레드불 사례처럼 간단한 발상의 전환으로 소비자들의 실제 구매를 이끌어내는 황금 같은 아이디어를 '연금술(Alchemy)'이라고 부른다. 글로벌 광고대행사 오길비앤매더에서 삼성, 피자헛, 넷플릭스, 이케아 등 유수 기업의 브랜드 광고를 이끌며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저자가 현장에서 마주친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연금술'을 풀어놓는다.

그중 하나는 교묘한 장치를 통해 사람들 지각에 혼란을 주는 것이다. 항공사 보잉의 여객기 '보잉 787 드림라이너'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비교해보면 보잉 787 드림라이너 내부는 보잉 777보다 41㎝ 좁지만 외려 이 기종은 널찍하고 쾌적한 실내로 승객들에게 호평받았다. 비결은 다른 기종보다 넓은 출입구였다. 승객과 처음 대면할 때 좋은 인상을 선사해 그 뒤의 경험까지 긍정적인 것으로 만든 것이다. 여기에 조명과 기압·습도를 적절히 조정해 승객들의 피로를 완화한 것도 거들었다.

언어 또한 사람들 인식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다. 때로는 다르게 부르는 것만으로도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2006년 캘리포니아에 있는 하비머드 칼리지 총장인 마리아 클로는 컴퓨터 과학 전공자들 중 여성 비율이 10%밖에 안 돼 골머리를 앓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고안해낸 방법은 강의명을 바꾸는 것이었다. '프로그래밍 입문'으로 불렸던 수업은 '파이썬을 이용한 과학과 공학 문제의 창의적 해결'로 바뀌었다. 또 수강생들을 코딩 경험에 따라 두 그룹으로 나눴는데, 통념과 달리 코딩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학생들을 '블랙 그룹'으로 부르고 전혀 없는 학생들을 '골드 그룹'으로 불러 초보자들의 자존감을 높였다. 이 같은 조치들은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4년 만에 컴퓨터 과학 전공자 중 여학생 비율이 10%에서 40%로 4배 늘었다.

소비자들이 편함보다 '불편함'을 추구하는 역설도 주목할 만하다. 1950년대 식품회사 제너럴밀스는 모든 재료가 건조 상태로 들어 있어 소비자는 물을 붓고 섞어서 오븐에 넣기만 하면 되는 '베티 크로커' 시리즈를 출시했다. 하지만 잘 팔리지 않아 심리학자들에게 분석을 의뢰하니, 만들기가 너무 쉬워 소비자에게 스스로가 속임수를 쓰는 것 같은 죄책감을 들게 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제너럴밀스는 "약간의 노력을 더 하게 만들라"는 심리학자들 조언을 받아들여 주부들이 계란을 추가해 조리하도록 재출시했고, 이후 베티 크로커 판매량은 급증했다. 소비자들이 제품이나 서비스에 다소 기여하게 만들어 그들이 느끼는 만족감을 높이는 셈인데, 이 같은 현상은 조립식 가구 판매 회사 이름을 딴 '이케아 효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잘 팔리는 마법은 어떻게 일어날까 / 로리 서덜랜드 지음 / 이지연 옮김 / 김영사 펴냄 / 1만8800원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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