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 선수의 성장

허진석 2021. 1. 1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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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려면 인내심이 필요함을 안다. 가르치는 자에게 인내심은 대학뿐 아니라 유치원을 비롯한 각급 학교에서 모두 필요한 덕목이다. 사람은 몸도 마음도 천천히 성장한다. 불과 몇 주 사이에 키가 훌쩍 자라거나 체중이 불지 않는다. (그런 현상은 사료를 먹여 키우는 가축에게서나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가축을 대개 다 자라기 전에 잡아서 음식의 재료로 삼는다.) 정신도 정서도 지식도 하루아침에 성숙하지 않는다. 셋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육체 또한 같은 영역에 속한다. 교육의 목표를 지육, 덕육, 체육의 함양에 둔다 할 때 지-덕-체는 등위나 우선순위를 뜻하지 않는다. 이 셋은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같이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연관되고 통합된다. 체육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인간의 학문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한국체육대학교다. 우리나라에 하나 뿐인 국립체육대학교이다. 많은 사람들이 체육대학교를 선수촌이나 트레이닝 센터와 비슷하리라고 상상한다. 남학생과 여학생을 가릴 것 없이 건장한 체격에 운동복을 걸친 채 4년을 보내다 나가는 곳이라고. 물론 이곳에는 국제규격의 경기장과 훈련시설이 있고,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갖춘 국가대표 선수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체대 재학생 또는 졸업생이 올림픽에 참가해 거둔 메달만 113개이다. 하지만 우리대학은 젊은이의 정기가 땀 냄새를 더욱 향기롭게 만드는 공간이다. 또한 전문체육(흔히 ‘엘리트 체육’이라고 한다)을 전공하는 학생보다 일반학과 재학생이 몇 배 더 많다. 한국체대는 체육 중심의 연구와 실험이 거듭되는 굴지의 학술공간이기도 하다. 실험기구 중에는 우리나라에 한두 개뿐이라는 첨단의 제품이 적지 않다. 그러니까 전문체육은 우리대학의 정체성 가운데 일부분일 따름이다.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재능을 가지고,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이미 그 재능을 증명한 학생들조차도 비온 뒤 죽순처럼 불쑥 솟아오르지 않는다. 뛰어난 학생도, 조금 부족한 학생도 아주 천천히 성장한다. 그래서 그들의 성장을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중앙일보의 기자로 일하던 2006년부터 대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시간강사, 겸임교수 또는 초빙교수 등의 자격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는 동안 매학기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 일은 학생들의 성장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나의 지식이나 가르치는 능력, 정성을 스스로 의심하는 괴로움이 반복되었다. 가끔은 학생들을 다그치고 몰아붙여서 피차 괴로움을 공유하는 실수도 했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라는 진리를 몰라서가 아니다. 선생의 눈에는 뻔히 보이는 답을 못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을 보고 조바심을 견디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돌이켜보면 스포츠 기자로 일하는 동안에도 같은 실수를 저지른 듯하다. 나는 뛰어난 선수들의 경기력을 존중했다. 그들의 경기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도 감사해야 할 기자만의 특권이었다. 그런데 나의 관심은 스타들에게만 머무르지 않았다. 밥 먹듯 한 경기 30점 이상을 기록하는 골게터는 물론 팀의 중심이다. 하지만 그에게 슛 기회를 만들어준 선수들이 없다면 그토록 많은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을 것이다. ‘슛도사’ 이충희에게는 박수교-이문규-이원우-신선우와 같은 초일류 도우미가 있었다. 연세대학교 농구부는 1994년에 대학팀으로는 처음으로 농구대잔치 챔피언결정전을 제패했다. 당시의 주포는 물론 문경은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상민의 패스와 서장훈-김재훈의 스크린과 우지원의 지원사격이 따라붙었다. 최희암 감독은 문경은의 득점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동료들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했다.

나는 이번 겨울에 농구경기를 자주 보겠다고 결심했지만 경기장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코로나19 때문이지만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결국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경기를 지켜보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우연한 일이지만 여자프로농구를 남자프로농구보다 더 자주 보았다. 그 과정에서 몇몇 선수의 이름을 외게 되었다. 정직하게 말해서 전에는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잊었던 선수들이다. 예를 들면 삼성생명의 윤예빈. 이 선수가 시야에 들어오기 전까지 내가 아는 삼성생명의 가장 젊은 선수는 이주연이었다. 나는 이주연이 가드로서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성장하리라고 기대하였다. 어느 날엔가 (2020년 12월 6일에 열린 삼성생명과 하나원큐의 경기였을 것이다) 일찍 퇴근하여 저녁을 먹으면서 경기를 보다가, 나는 식사를 멈추고 경기에 몰입해서 수저를 내려놓고 말았다. 그날 처음으로 윤예빈을 중심으로 경기를 관전했고, 이름을 외웠다.

12월 6일의 경기 기록을 보니 윤예빈은 9득점을 했다. 배혜윤(24득점)-박하나(15득점)-김한별(11득점)에 이어 네 번째니까 득점을 주도한 선수는 아니다. 어시스트 2개로 배혜윤(6개)-박하나(5개)-이주연(5개)에 이어 김한별과 공동 4위다. 그런데 나는 어떤 이유로 윤예빈의 경기 내용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을까. 가장 긴 시간(39분)을 뛴 이 선수가 기록한 리바운드(12개)와 실책(4개)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보다는 경기 전체를 통해 보여준 윤예빈의 헌신과 집중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윤예빈은 골밑에서 뛰는 선수가 아님에도 센터 배혜윤(11개)이나 포워드 김한별(10개)보다 많은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내가 생각하는 리바운드는 헌신과 몰두의 결과물이다. 리바운드는 팀을 이기게 해주는 에너지원이다. 리바운드를 많이 뺏긴 팀은 보디를 많이 맞은 권투선수처럼 천천히,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허물어진다. 윤예빈의 헌신적인 경기는 삼성생명에 힘을 불어넣고 하나원큐의 힘을 빼놓았다.

그 뒤로 삼성생명의 경기를 볼 때 자연스럽게 윤예빈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다. 윤예빈이 ‘자르고, 걸고, 돌아나갈 줄 아는 선수’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는 15일 현재 19경기에 나가 경기당 34분45초 동안 뛰면서 11.5득점, 5.7리바운드, 2.7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아주 매력적이다. 2점슛 성공률 49.7%니까 외곽선수로서 나쁘다고만 보기 어렵다. 자유투성공률(64.3%)과 3점슛성공률(20.8%)은 아쉽다. 자유투는 ‘거저 먹는다.’는 느낌으로 걸리는 족족 넣어 주어야 한다. 윤예빈이 ‘이거 한 방이면 승부가 갈린다.’싶은 장면에서 던진 3점슛이 림을 외면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점점 더 좋아질 것이다. 노력하는 선수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밀도 높은 경기력을 발휘하는 선수를 그 동안 내가 왜 몰랐는지 의아했다. 그래서 삼성생명의 임근배 감독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서 설명을 들었다. 부상으로 두 시즌을 그냥 보냈고, 그 사이 수술을 두 번이나 했고, 그럼에도 일어섰다는.

남자 선수든 여자 선수든 부상을 이겨내고 뛰어난 경기력을 회복하기는 어렵다. 두 시즌을 허송했다면 가장 큰 폭으로 성장해야 할 시기를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24개월에 걸친 회복의 과정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윤예빈도 수많은 선수들이 그러했듯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겪었을 것이다. 농구역사를 살피면 운명처럼 부상의 갈고리에 걸려들어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재능을 다 꽃피우지 못한 선수가 적지 않다. 나는 유재학이나 신선우가 부상 없이 오래 선수생활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는 이들을 진정한 농구천재들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무릎 부상 때문에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구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새겼다. 유재학은 기아 소속이던 1987년 1월 31일 현대전자와의 경기에서 한 경기 어시스트 20개라는 기적을 썼다. (당시의 규정은 공을 넘겨받은 선수가 공을 튀기거나 걸음을 딛기만 해도 어시스트로 인정하지 않을 만큼 엄격했다. 유재학은 공을 받자마자 슛을 할 수 있게 패스를 했다.) 1986-87시즌 경기당 어시스트가 무려 8.8개다. 그러나 그는 기아에서 세 시즌만 뛰고 은퇴했다. 경기당 어시스트 7.14개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긴 채.

더 열심히 경기를 지켜본다면 윤예빈과 같은 선수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으리라. 무슨 일이든 알고 볼 때와 모르고 볼 때는 차이가 크다. 알고 보는 사람은 더 집중하고, 더 즐거워하게 마련이다. 나는 프로농구의 흥행이 선수들의 지명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팬들이 이름을 기억하는 선수가 많을수록 리그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 뛰어난 선수의 쉼 없는 공급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남자프로농구는 농구대잔치의 성공을 바탕삼아 (특히 연세대, 고려대, 중앙대 선수들의 기여가 컸다) 출범하여 빠르게 정착했다. 그러나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현주엽, 전희철, 김영만, 김주성과 같은 스타들이 차례로 물러나면서 위축되었다. 더 높은 수준으로 도약할 동력을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뒤를 이어 등장하는 선수들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나는 요즘 프로에서 뛰는 선수들의 눈부신 테크닉에 자주 감탄한다.) 프로농구의 고객들이 리그에 새로 공급된 선수들과 친해지고 교감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을 뿐이다.

농담(籠談)이 길어졌다. 다음에 조금 더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사진=삼성생명 여자농구단 제공)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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