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 '코로나 블루' 위험 징후, 심리 방역이 필요하다[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2021. 1. 1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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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코로나 생각하면 슬퍼요. 무서워요. 어디 말할 사람도 없어요. 계속 불안해요”

지적장애인 최석민씨(대구 수성구·가명·31)는 1년째 집에만 머물고 있다. 탈시설 이후 자부심이 컸던 그였지만 코로나19 이후 고립생활이 장기화되면서 우울증이 찾아왔다. 비대면 심리상담은 의사소통이 어려워 포기했다. 병원에 가기도 꺼려졌다. 치료비 부담보다 감염 노출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최씨는 “장애인 확진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안다”며 “입원도 못 하고 활동 지원서비스 없이 혼자 집에서 고립됐다고 한다. 그 사람이 안쓰럽기도 하고 또 내가 그렇게 될까봐 무서워 꼼짝을 못 하겠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정부 매뉴얼



코로나 블루(우울증)는 장애인과 노인 등 취약계층에게 먼저 스며든다. 취약계층은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상대적으로 크다. 여기에 소외로 인한 상실감도 얹어진다. 지난해 8월에서 10월 사이 코로나19로 일상을 잃은 발달장애인 3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민호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 팀장(지체장애·38)은 “우울증이 심해 10번 정도 전화상담을 받았다”며 “하지만 그때뿐이다. 금세 불안해진다. 상담을 받아도 현실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미지컷.



지난해 6월 정부는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마련했다. 여기에는 장애인이 자가격리되면 별도의 격리시설 입소를 원칙으로 하되 각각의 상황에 따라 자택에서 자가격리하고 활동을 지원하거나 방문간호, 응급안전 알림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매뉴얼은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심리방역 부분은 아예 매뉴얼에서 배제됐다. 당시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장애인을 위한 코로나19 안내서>에는 코로나19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스트레칭하거나 가족 친구와 전화·문자 주고받으라는 일반적인 권고만 실렸다. 사고가 터지고 극단적인 소식이 들릴 때마다 중앙에서 대책은 나오는데 현장에 닿지 않는다.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지난 1년간 나온 정부 대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장애인의 몸을 기준으로 설계됐다. 비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은 모래가 구멍에서 빠져나가듯 안전망에 걸리지 않는다”며 “심리방역 지원을 강화한다고 하는데 모두 접근성이 떨어져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국내 유입 초기에 장애인과 노인을 중심으로 번졌던 코로나 우울증은 다른 계층과 연령대로 확산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청년층, 특히 20대 여성들 사이에서 정신건강 위험 징후가 두드러진다.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온 김선영씨(가명·23)는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었다. 장기 휴무와 권고사직이 반복되는 와중에 연인과 이별을 겪었다. 부모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형편이 어렵다며 거부당했다. 가족들은 오히려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했고, 고립된 김씨는 불안 증상에 시달리다 음독을 시도했다. 지금은 정신과 외래진료를 통해 치료를 받고 있다. 이소정씨(가명·25)도 코로나19 이후 실직과 반복되는 취업 실패로 우울증을 겪고 있다. 실업급여 지급이 끝나자 아르바이트를 하며 구직활동을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생활비와 임대료 체납, 정신과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한 이씨는 자해를 거듭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20’ 보고서. 그래픽|이아름 기자



코로나19 이후 고용이 가장 많이 감소한 계층은 여성, 20대 이하, 임시직 노동자다.(통계청, 한국의 사회동향 2020)

박지현씨(가명·30)도 코로나19 우울증에 시달린다. 생활비를 위해 끌어다 쓴 빚이 늘어났고, 월세와 건강보험료 등 각종 공과금이 밀려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개인회생을 신청했지만 변제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박씨는 자살예방센터 상담사에게 가족과 동반자살을 준비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경기도 지역정신건강보건센터 관계자는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도움을 요청하는 20대 여성들이 급격히 늘어났다”며 “실제로 관할지역 내 20대 여성 자살 사망자수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업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기간 동안 전 세대·성별을 통틀어 20대 여성의 자살시도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간 자살을 시도한 20대 여성은 전체 자살시도자의 32.1%에 달한다.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발표한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여성의 우울 위험군 비율은 26.2%로 남성(18.1%)보다 높았다.

📌‘코로나19는 공평하지 않다’ 2020년 상반기 여성 자살 사망자 1924명[플랫]



20·30 여성에 대한 핀셋 대책 효과는



20·30 여성의 자살문제가 대두되자 지난해 11월 30일 정부는 ‘20·30대 위기여성 종합 지원 프로그램’ 등 맞춤형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 여성과 돌봄 부담이 큰 여성을 위한 지원 방안이 대책의 골자다.

20·30 여성에 대한 첫 핀셋 대책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효과를 장담하기는 이르다.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정책 효과가 고르게 퍼질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 센터장은 “중앙에서 세우는 계획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완벽하다. 자살예방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고 거버넌스도 좋아졌다. 하지만 계획을 이행하는 지자체에 거버넌스가 없다. 자살 관련 전담 인력이 없고 실행할 시스템도 구축돼 있지 않다. 중앙정부에서 마련한 대책이 현장에서 의도대로 실행되기 어려운 구조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최근에는 우울과 불안이 분노로 표출되는 ‘코로나 레드’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방역 대책으로 생계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방역 불복을 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백종우 센터장은 “재난 지원금만으로는 전 국민의 13%가 자살을 생각하는 현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며 “정신건강복지센터나 몇몇 심리 지원서비스에 기댈 게 아니라 체계적인 심리방역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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