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논란, 누구 말이 맞나

허진무 기자 2021. 1. 1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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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019년 5월 서울중앙지법에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법무부가 ‘별장 성폭력 의혹’을 받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긴급 출국금지하는 과정에 위법이 있었다는 논란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출국이 금지될 당시 김 전 차관은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조차 되지 않은 상태였다. 법무부는 긴급한 필요성이 있어 불가피하게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향신문은 15일 김 전 차관 긴급 출국금지를 둘러싼 법적 쟁점들을 여러 법조계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정리했다.

①법무부의 김 전 차관 출입국기록 조회는 불법일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6일 기자회견을 열어 “법무부가 일선 공무원을 동원해 100회 이상 불법으로 김 전 차관의 출국 정보를 뒤졌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법무부는 “지난해 3월 김 전 차관의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 조사에 불출석한 것을 계기로 언론에서 출국 여부와 관련한 우려 섞인 기사가 연일 보도됐다”며 “출국금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출입국 여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출입국기록 조회나 출국금지 조치에는 판사의 영장이 필요하지 않다. 법무부는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지난해 2월에도 질병관리본부의 요청에 따라 신천지 신도 24만4743명의 출입국기록을 제공했다.

법무부가 내놓은 법적 근거는 출입국관리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이다. 출입국관리법 제4조 제2항은 ‘법무부 장관은 범죄 수사를 위해 출국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대해 1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해 출국을 금지할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은 ‘공공기관이 소관 업무의 수행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개인정보를 수집해 수집 목적의 범위에서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여러 전문가들은 “법무부가 100회 이상 출입국기록을 확인한 것은 업무상 목적에 필요한 정도를 과도하게 넘어선 권리 침해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②출국금지 요청서에 가짜 사건번호를 적으면 불법일까

김 전 차관은 2019년 3월23일 오전 0시20분 태국 방콕행 비행기를 타고 출국하려 했지만 법무부 출입국본부가 긴급 출국금지 조치로 막았다. 당시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파견됐던 서울동부지검 이모 검사는 대검찰청(대검)에 출국금지 요청을 해달라고 했지만 대검이 혐의를 입증할 새로운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 검사는 2013년 김 전 차관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사건번호(중앙지검 2013년 형제 65889호)를 적어 출국금지를 신청했고, 사후에 허위 내사번호(서울동부지검 2019년 내사 1호)를 적어 승인요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출국금지 다음날 서울동부지검 고위 관계자에게 “검사장이 내사번호를 추인한 것으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허위 사건번호를 적어 긴급 출국금지한 행위에 형법상 허위공문서작성·행사죄가 적용된다고 봤다. 이 검사에게 ‘윗선’이 이같은 행위를 지시했다면 그 상급자에게는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적용될 수 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검사가 가짜 서류를 작성해서 출국금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법리적으로는 허위공문서작성·행사죄를 적용할 수 있다”며 “가짜 사건번호는 명백한 불법이고 불법이 관행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정유미 인천지검 부천지청 인권감독관은 지난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문서를 조작해서 출국금지를 해놓고 관행 운운하며 물타기 하고 있다”며 “내가 몸담은 20년간 검찰에는 그런 관행 같은 건 있지도 않고, 그런 짓을 했다가 적발되면 검사 생명 끝장난다”고 적었다.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③진상조사단 검사의 출국금지 요청은 불법일까

법무부는 지난 12일 “긴급 출국금지와 사후 승인을 요청한 검사는 ‘서울동부지검 검사직무대리’ 발령을 받은 ‘수사기관’에 해당하므로 내사·내사번호 부여·출금 신청 권한이 있다. 당시 중대한 혐의를 받던 전직 고위공무원의 심야 국외 도피를 목전에 둔 급박하고도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가 내놓은 법적 근거인 출입국관리법 제4조의6은 ‘수사기관은 범죄 피의자로서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긴급한 필요가 있는 때에는 출국금지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긴급 출국금지 절차를 자세히 규정한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에서는 요청 주체를 ‘수사기관의 장’으로 명시한다. 시행령 제5조의2는 ‘긴급 출국금지를 요청하려는 수사기관의 장은 요청 사유와 출국금지 예정기간 등을 적은 요청서에 법무부령으로 정하는 서류를 첨부해 출입국관리공무원에게 보내야 한다’고 규정한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장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검사 개인에게 내사번호를 부여하고 출국금지를 신청할 권한이 있다는 법무부 입장은 거짓말”이라며 “내사번호는 상급자의 결재 뒤 해당 검찰청의 사무국 사건계에서 부여하고 출국금지 신청은 검사장의 명의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④출국금지가 불법이면 상고심에 영향 있을까

건설업자에게 뇌물을 받고,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은 김 전 차관은 지난해 10월 2심에서 뇌물수수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6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김 전 차관은 구속 상태로 상고심 재판 중이다. 김 전 차관 출국금지가 허위공문서로 이뤄진 위법한 절차였다면 상고심에도 영향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법조계에서는 출국금지 절차의 위법이 인정되더라도 김 전 차관 상고심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김 전 차관은 2019년 3월22일 출국금지됐고, 특별수사단은 3월29일 출범했다. 수사단은 4월4일 김 전 차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김 전 차관은 5월9일과 12일 두 차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5월17일 구속됐고 6월4일 기소됐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출국금지로부터 48일이 지나 첫 조사를 받았으므로 인과관계가 약하며,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뒤 수집된 증거와는 더욱 인과관계가 약하다고 봤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출국금지로 인해 증거를 얻었다면 법정에서 증거능력이 배제되겠지만, 법원의 영장으로 얻은 증거나 오랜 시일이 지난 뒤 다른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는 출국금지와의 인과관계가 희석된다”며 “대법원이 판단할 일이라 조심스럽지만 출국금지의 위법이 상고심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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