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송봉하 님, 어디 계세요. 소주 한잔하고 싶습니다"

중기협력팀 배병욱 기자 2021. 1. 1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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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화 제엠제코 대표의 '그 사람'

살다 보면 잊을 수 없는 '그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최윤화 제엠제코 대표는 "그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며 '그 사람'을 회상했다.

◇ 첫 만남

신입사원 교육장. 56명의 신출내기가 줄지어 앉아 있다. 1993년 첫 직장으로 들어간 반도체 회사.

"최윤화 씨?"
"아, 네..."

삼십 대 후반, 민머리에 날카로운 눈. 섬뜩했다. 불현듯 나타난 그는 이름만 확인하고 사라졌다. '설마 저 사람과 함께 일하는 건 아니겠지.' 같이 얘기하고 싶지 않을 만큼 차가움이 뼈 속까지 스민 사람이었다.

◇ 독종

공정기술팀으로 배치받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동공 지진. 규모로 따지자면 히로시마 원자폭탄과 맞먹는다는 '6.0'쯤 되리라. 그 민머리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였다. 송봉하 과장으로, 공정기술팀장(부서장)이었다. '헉, 사수라니...'

그의 교육 방식은 짜장 기가 찼다. 몇 가지만 알려 준 뒤 무조건 하란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말이다. 일단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회사 내를 헤갈했지만 아름아름하기만 했다. 되든 안 되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무조건 실험을 해 보는 거였다.

나름의 결과를 도출하고 기술보고서도 올렸다. 마음에 들 리 있었을까. 짤없었다. 보고서는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다시 해 와."

이런 일은 수없이 반복됐다. 자존심 상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정말 못된 사람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필요 없는 실험을 너무 많이 시켰다. 반도체 패키징 분야에는 20가지 이상의 공정이 있다. 크게 나누면 8가지다. 반도체 칩을 자르는 '소잉'과 칩을 붙이는 '다이어태치'를 비롯해 '트리폼', '도금' 등을 거쳐 마지막 단계인 '신뢰성 공정'까지다.

입사 시 주어진 업무는 분명 '본딩 공정'이었다. '내 것'만 하면 되는데, 다른 공정의 실험까지 다 시켰다. '나와 관계없는 일을 왜 자꾸 시킬까. 내가 싫은 걸까.' 불만이었다. 업계에선 자기 공정만 알고, 그것만 하는 게 일반적이다. 만약 다른 곳에서 이랬다간 대번에 나올 말이 번하다. "네 일은 어쩌고 남의 공정에 신경 쓰냐."

그런데 그는 어떠한가.

"최윤화 씨! 칩 자르는 '첫 공정'부터 마지막 단계 '신뢰성 공정'까지 모두 실험·진행한 뒤 결과 가져 와."

말도 안 된다. 이걸 하려면 각 공정 담당을 찾아가 부탁해도 될까 말까다. 물론 그럴 수도 없다. 다들 자기 일만 하기도 바쁘다. 별수 없었다. 또 모든 공정을 직접 일일이 실험하는 수밖에. 공정마다 쓰이는 장비 또한 제각각인데 그들의 사용법도 모두 배웠다.

'실험' '실험' '실험'의 연속이었다. 밤 10시 이전 집에 간 적 없다. 토요일·일요일, 그런 것도 없었다. 3년을 그렇게 일했다. 1996년 사직서를 냈다. 그리곤 국내 한 반도체 대기업으로 향했다.

이직 후 처음 몇 년 동안은 그를 찾아갔다. 갈 때면 늘 모꼬지가 급조됐고 그를 위시한 옛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2000년쯤이다. 알음알음했지만 연이 닿지 않았다.

◇ 잊을 수 없는...

20년 지났다. 그가 그립다.

대학 졸업 후 반도체의 '반'자도 모른 채 입사했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사회 초년생 시절 3년 동안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 '독종' 그 때문이었다.

돌이켜본다. '현재의 나'는 그에게서 비롯됐다. 그 덕분에, 동종 업계 어딜 가도 찾기 힘든, 전 공정을 아우르는, 그런 사람이 됐다.

1996년 그를 떠나 반도체 대기업으로 이직했고, 다시 외국계 반도체 기업으로 자릴 옮기면서 해외 주재원을 거쳤으며, 2007년 제엠제코를 설립했다. 그에게 배웠던 그대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회사 또한 현재까지 잘 성장해 왔다.

이 모든 커리어는, 첫 사수로 '그'를 만난 덕분이다. 다른 이가 아닌 딱 '그 사람'. 그와 보낸 그 악착같은 세월이 없었다면, 그가 아닌 다른 사수를 만났다면, 지금쯤 뭘 하고 살고 있을까.

"송봉하 과장님, 일흔쯤 되셨겠네요. 미래를 예단할 순 없지만 현재까지는 성공한 인생 같습니다. 제 인생 첫 사수인 과장님께서 20여년 전 제 삶을 바꿔 놓은 겁니다. 과장님, 어디 계십니까. 소주 한잔하고 싶습니다."

#에피소드
한번은 그가 팀원들을 집들이에 초청했다. 집을 샀다는 것이다. 그를 앞세우고 꽁무니를 쫓아 현관에 들어섰다. 눈을 의심했다. 아내 앞에서 납작 엎드리는 게 아닌가. 엄하디엄한,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모든 부서장 가운데 '짱'으로 통한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곳엔 한 마리의 순한 양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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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협력팀 배병욱 기자 acebbu@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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