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문제 보도 포항MBC, 지역 언론 존재 이유 증명하다

박병완 포항MBC 사장 입력 2021. 1. 1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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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미디어오늘 박병완 포항MBC 사장]

포스코의 산업재해,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다룬 포항 MBC 특집 다큐 <그 쇳물 쓰지 마라>가 12월10일 초방 방영 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기세를 몰아 12월22일 오후 5시15분에는 전국적으로 방송이 되기도 했다. 이후 각종 소셜 미디어와 블로그, 유튜브 등을 통해 해당 다큐는 일파만파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애초에 제작진들은 기획 단계에서 이와 같은 반응은 예상도 할 수 없었다. 지역에 있는 국내 굴지의 공기업을 고발하는 문제는 지역사회와 방송사에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을 무시하는 일이므로 시작부터 쉬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프로그램은 대표적인 공해유발 업체인 포스코의 사례를 통해 제철소 노동자들의 심각한 직업병 실태와 인근 주민의 환경 질환 실태, 나아가 부당한 현실에 침묵하는 권력기관들의 카르텔을 고발하고자 기획되었다. 프로그램에 사용된 '그 쇳물 쓰지 마라'는 가수 하림이 제철소 용광로에 빠져 숨진 20대 청년을 위해 만든 추모곡의 제목이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1위 국가다. 대부분의 미디어에서는 직업병보다 더 극적인 사고사를 많이 다루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직업병으로 숨지거나 병을 얻는 확률이 훨씬 높다. 이런 문제를 고발하기 위해 프로그램에서는 포스코에서 3-40년간 근무하다 최근 퇴직한 노동자 4명의 폐암, 백혈병, 루게릭병 등에 걸린 배경과 투병 과정, 당사자의 증언과 유족들의 문제를 담담하게 반영했다. 이들이 롤숍, 코크스, 스테일레스 등 이름조차 생경한 제철소 공정에서 일했고, 그 공정에서 나온 유해물질에 대한 전문가 인터뷰와 미국 EPA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 발표, 국제 연구논문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하여 해당 공정에서 배출되는 유해물질과 피해자들의 질환과의 연관성을 밝혀내는데 집중했다. 이와 관련하여 국회와 시민단체 등이 추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최근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되었고, 직업병에 대한 내용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산업재해에 대한 적절한 국가적 안정망의 확보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두 번째로 문제가 된 것은 포스코 인근 주민들의 환경성 질환이었다. 포스코 노동자들에게 직업병을 일으킨 유해물질은 공장 밖으로 배출돼 인근 주민들에게도 환경성 질환을 초래하고 있었는데, 포스코에서 500미터 떨어진 작은 동네가 쇳가루에 뒤덮이고, 암 환자만 35명 발생했다는 생생한 주민들의 증언들이 쏟아졌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역학조사 결과, 포스코를 비롯한 포항 산단 주민들이 심각한 환경성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추적했다. 그럼에도 포스코는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다. 전문가들 조차도 포스코의 압도적 영향력 때문에 포스코에서 어떤 유해물질을 얼마나 배출하는지 모른다는 입장이다.

세 번째는 위와 같은 직업병이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있는 문제를 다뤘다. 1990년 불거진 포스코 직업병 은폐 의혹 사건과 관련해, 제작진은 “포스코가 사건을 축소은폐하라고 지시했다” 는 당사자의 증언을 확보하고, 직업병 피해자들이 산재 신청 과정 등에서 회사로부터 받은 압력 등의 증언들을 담았다. 이 과정에서 포스코와 지자체, 지방의회와 언론이 유기적으로 연루된 정황이 드러났다. 취재 과정에서 촬영된 포스코의 매연 배출 영상을 보고도 감독기관인 경상북도는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다”고 답했고, 심지어 전현직 경북도 의원 등 상당수 지방 의원들이 포스코 공급사의 임원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한동대 언론학부 용역 의뢰 결과, 지역 언론사들이 쓰는 포스코 기사는 98%가 홍보성이고 산재 및 환경문제를 다룬 비판 기사는 2-4%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 지난해 12월10일 방송된 포항 MBC 특집 다큐 '그 쇳물 쓰지 마라' 갈무리

그러나 방송 다음 날인 11일, 한국노총 소속의 포스코 노조가 '앞으로 포스코는 포항에 대한 투자와 사회공헌활동 일체를 원천 차단하겠다. 식사를 포함, 포스코 직원들의 소비 일체를 중단하고, 심지어 직원과 자녀의 주소지를 다른 도시로 옮겨 포항을 50만 이하의 중소도시로 만들겠다'는 입장문을 공개했다. 지역사회는 발칵 뒤집혔고, 지역 시민단체와 정치권은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조직된 노동조합이 이런 입장문을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지역사회 전체를 상대로 한 협박성 선언이라며 한목소리로 강하게 비판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포스코 사측은 프로그램을 제작한 우리 사 장성훈 기자를 명예훼손과 인격권 침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포스코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5천만원이라는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를 한 것이다(13일 미디어오늘 기사 참고). 앞서 장성훈 기자는 노동자와 주민 건강에 대한 문제로 사안의 중대성이 높아 포스코에 설명할 기회를 여러 차례, 다양한 경로로 제시했다. 그러나 포스코 측은 인터뷰를 거절하고 구체적인 근거없이 형식적인 답변을 하는데 그쳤으며, 보도 전후에 해당 내용에 대한 반박이나 언론중재 등의 공식적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기자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불사하는 행위를 한 것이다.

이와 같은 포스코 노사의 행위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이며, 언론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이자 탄압이다. 우리 포항 MBC는 전사적으로 이에 대응하기로 했으며, 포항 지역 노동시민사회 단체 15곳이 구성한 포항시민단체연대회와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등도 연대하여 강력 대응 입장을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포스코 노조의 협박성 입장문 발표로 이미 한국기자협회와 한국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등 언론 현업 단체들이 포스크와 노조를 비판하는 성명을 낸 바 있다.

지역의 거대 기업과 정치권력, 토호 세력들을 감시감독할 언론이 없다면, 또 지역 언론이 그들에게 굴복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포항 MBC뿐만 아니라 지역 MBC 구성원은 이명박 박근혜 시절 적폐를 청산하고 지난 3년간 공영방송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이와 같은 소명의식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오늘의 이 사태는 비록 경영 상황이 어렵고, 취재 제작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권력과 자본에 굴하지 않고 지역민을 대변하는, 내일에 부끄럽지 않은 공영 언론사로서의 자랑스러운 사건으로 지역민과 구성원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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