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페미니스트를 위한 '용기있는 고백' [책과 삶]

배문규 기자 2021. 1. 1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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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
필리스 체슬러 지음·박경선 옮김
바다출판사 | 460쪽 | 1만8500원

“우리가 여성의 역사에 대해 무엇이라도 알았더라면, 페미니스트 선배들에 대해 무엇이라도 알았더라면, 정치인이나 이론가처럼 그들도 치열하고 또 비열하게 싸웠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여성의 어두운 심리를 이해했더라면, 그다지 성스럽지 못한 이 내전에 좀 더 대비했을지도 모른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A Politically Incorrect Feminist)>는 2세대 페미니즘의 중심에 있던 필리스 체슬러(80)가 자신이 살아낸 페미니즘의 역사를 회고록 형식으로 쓴 책이다. 1960년대 서구 여성해방 운동에서 시작된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을 2세대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며 ‘여성 억압’의 근본적 해체를 모색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1세대 페미니스트가 여성참정권 쟁취에 사활을 걸었다면, 2세대 페미니스트들은 폭넓은 여성 문제에 참여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차별받는 여성을 위해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성폭력과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피신처를 만들었으며, 낙태권과 평등권 쟁취를 위한 투쟁에 나섰고, 남자들만의 영역에 진출해 오늘날 변화의 첫발을 뗐다.

현재 뉴욕시립대 스테튼아일랜드 칼리지 명예교수인 체슬러는 대학에 최초로 여성학 강좌를 개설하고 여성심리학회를 만드는 등 1970년대 페미니즘을 개척한 인물이다. 하지만 책에서 그는 자신들이 빛났던 순간들과 함께 어둡고 미숙했던 과거를 그대로 드러낸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거나 질투의 대상이 되는 여자를 헐뜯거나 따돌렸다.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들 대부분은 지독하고 노골적인 싸움에 심리적으로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다. 여자들은 모든 갈등을 정치적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겪어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때로 사람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기도 했다. 이제야 우리는 모든 여성, 즉 백인 여성이든 다른 인종의 여성이든, 인종차별을 내면화해 왔음을 이해한다. 또한 여성 역시 성차별주의자들이며 호모포비아라는 사실도.” 50년 전을 회고하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이라고 한 이유다. 하지만 과거를 통해 지금 세대는 더 앞으로 나아가라는 용기 있는 회고다.

필리스 체슬러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에서 치열하게 연대한 동료들의 역사를 기록한다.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이 더 현명하게 싸우기를 바라며 2세대 페미니즘의 빛났던 순간과 어두운 치부를 함께 전한다. 사진은 1988년 여성 재생산권 수호 운동 현장에서 체슬러의 모습(왼쪽에서 네번째). 바다출판사 제공
1970년대 페미니즘 개척한 체슬러
아프간 남성과의 끔찍한 결혼생활
흑인 유엔 간부에게 강간당하고도
동료에게 연대 거부당한 충격 회고
“싸움은 여성 바깥에만 있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꼭 붙들었다”

책은 서로 연대하다가도 반목했던 운동처럼 ‘자매애는 강하다’, 그리고 ‘여자의 적은 여자다’ 사이를 오간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는 여성혐오자들이 ‘여자들은 서로 협력할 줄 모르고 서로를 미워하기만 한다’고 쓰는 말이다.

체슬러의 다른 작품 <Woman’s Inhumanity to Woman>이 국내에서 <여자의 적은 여자다>로 번역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여자들은 때때로 왜 서로에게 잔인하게 구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체슬러는 이 말에 진저리를 친다며 “늘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때로 우리는 서로를 구원한다. 대다수의 여자들은 서로의 친밀한 관계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낼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미국 페미니즘의 역사지만 한국의 현실 역시 떠올리게 한다. 1940년 미국 브루클린의 정통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난 체슬러는 아들 선호가 강했던 당시 시대상을 적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라면서 추행과 차별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다 대학 시절 만난 아프가니스탄 출신 남성과 결혼해 카불에서 다섯 달 동안 끔찍한 결혼생활을 경험한다. 이때 겪은 ‘젠더 부정의(gender injustice)’는 체슬러가 페미니스트로 각성한 계기가 됐다. 이후 동료들과 자매애를 쌓으면서 연대를 이어간다. 1966년 베티 프리단이 창립한 전미여성기구(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NOW)에 참여했고, 1969년에는 여성심리학회를 공동 창립했다. 1971년 강간에 관한 최초의 급진 페미니스트 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했으며, 여러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여성인권을 논했다. 1972년 펴낸 <여성과 광기>는 지금까지 350만부나 팔린 여성학의 고전이 됐다.

체슬러는 그 시절 페미니스트들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바라보고 다시 쓰는 역사다. 당대의 유명인들, 수전 손태그를 ‘문학계의 어둠의 군주’라고 부르며 만남을 회상하는 장면이나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자 주디 시카고를 앉혀두고 딴 일을 하다 ‘혼나는’ 이야기에선 슬몃슬몃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인물들에 대한 가차 없는 평가와 자신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인상적이다. 자신이 “남자 중독에 가까운 상태”였다고, “페미니즘과 해방 투쟁, 책 쓰는 데 헌신해야 했으므로 남자 고르기로 시간 낭비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구하기 쉬운 남자들을 찾았을 뿐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하지만 남성이 독차지했던 일자리를 얻은 여성으로서 끊임없이 도전을 받았고, 매일같이 성차별을 겪었으며, 성과에 대한 모욕과 멸시 혹은 무관심을 견뎌야 했다. 마녀사냥과 성희롱 역시 일상적이었으며, 임신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위험한 여자’에 대한 남성중심사회의 공격이었다.

싸움은 바깥에만 있지 않았다. 한번은 페미니즘 모임에 7분 지각했다가 엄청난 비난과 눈총을 받게 된다. 무엇이 이들을 예민하게 만들었을까. 성스럽지 못했던 내전의 기폭제는 ‘정신질환’이었다. 체슬러는 당시 페미니스트들 몇몇은 조현병이나 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았고, 그것이 운동을 방해했다고 고백한다. 여성들은 서로에게 관대하다가도 질투했고, 연대하면서도 경쟁하기를 반복했다고 말한다.

체슬러는 앤디 워홀을 죽이려 했던 여자로 유명한 밸러리 솔라나스를 회상한다. 어릴 적부터 학대와 친족 성폭력을 당한 솔라나스는 자신이 쓴 극본을 워홀이 영화화해줄 것으로 믿었다가 끝내 만들지 않자 워홀이 자신의 경력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솔라나스가 피해망상으로 워홀을 쏘자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그를 페미니즘 전투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편을 들었다. 그의 행위가 페미니즘적 의미로 해석될 여지도 있었지만, 그냥 정신병이었다. 갈등 끝에 페미니스트들은 떠나갔다.

1972년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대화를 나누는 필리스 체슬러(오른쪽). 바다출판사 제공

더욱 충격적인 고백은 체슬러 본인의 경험이다. 그는 1980년 열릴 국제 페미니즘 콘퍼런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엔 사무차장이던 데이비드슨 니콜이라는 흑인 남성에게 강간당한다. 자신의 피해를 로빈 모건,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동료들에게 알리고 연대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한다. 백인 페미니스트가 흑인 남성에게 성폭력 책임을 묻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응은 흐지부지됐다. 체슬러는 모건과 스타이넘이 자신들의 국제 페미니즘 브랜드를 지키려 했다고 비난한다.

왜 그들은 미치거나 싸웠을까.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자꾸 지는 쪽에 서고, 매일같이 생명력이 깎이는 성차별을 겪고, 그토록 얻는 것 하나 없이 그토록 맹렬히 싸워야만 하는 현실로 인해 그들은 우울했던 것일까?” 하지만 체슬러가 페미니스트 개개인은 물론이고 여성운동까지 멈춰 세웠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그런 한계나 실수가 자신들을 규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게 되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여자들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잔인함과 질투심을 가졌음과 동시에 관대함과 연민을 지녔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쟁할 수도, 협력할 수도 있는 인간이었다.”

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옮긴이는 50년 전 이야기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서 당혹감을 느끼는 한편 지금의 페미니스트들 역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듯해 오싹함을 느꼈다고 한다. SNS상에서 드러난 갈등과 공격들이다. 체슬러는 여러 사안에 대해 의견이 다를 때에도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분열이 주변을 휩쓸고 갔을 때도 우리는 서로를 꼭 붙들었다”고 했다. 서로의 다름을 견디며 함께하는 ‘교전 수칙’일 것 같다.

체슬러는 마지막 ‘감사의 말’에서 함께했던 페미니스트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 같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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