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yHome 집콕이 가져온 홈 트렌드
2020년의 우리 집은 하루 중 가장 오랫동안 머무르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이 같은 집의 성향은 2021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H.O.M.E’에서 살아간다.
▶#StayHome은 계속된다
시간은 흐르고 어느덧 또 새해를 맞이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집(Home)에 머무르기를 권장받고 있다. SNS상에서 2020년을 대변하는 상징적 키워드는 ‘집에 머물라(#StayHome)’였지 싶다. 그러니까 여전히 집은 우리에게 그나마 가장 안전한 피난처이며, 방공호인 셈이다. 최근 필자에게 대형 광고 대행사에서 2020년에서 읽어 낸 2021년 트렌드 키워드 하나를 알려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12명에게 답을 구한 이 기획에 다양한 키워드들이 도출되었다. 필자는 여기에 ‘집’이라 답했다. “코로나19가 야기한 혼란스러운 상황은 집을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 중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꼽게 한다. 이제 집은 주거와 휴식을 위한 공간을 벗어나 오피스, 짐, 레스토랑, 클럽, 게임방 등 다채로운 역할을 해낸다”라고. 이에 맞춰 인테리어 제품을 포함한 집에서 사용하고 꾸며야 할 것들의 소비가 더 증가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던가? 이제 집이라는 공간은 그 어떤 장소보다 중요한 곳이 되어 버렸다. 재택근무를 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집은 점차 오피스화되어야 하고, 밖에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많은 행위들을 실내에서 다 소화해 내야만 한다. 여기에 덧붙여 집에서 먹는 횟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평소 저녁식사 정도 가족이 함께하던 나날들이 매끼를 함께 해야 하는 쪽으로 급변한 것이다. 온라인 커머스와 배달 애플리케이션 기업들은 소위 대박이 났다. 주문이 밀리고 밀려 급기야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대형 배달 앱이 먹통이 되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필자의 집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내다 버려도 순식간에 쌓이는 배달용 포장 박스가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여기에 배달 음식 플라스틱 용기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1주일에 한 번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면 박스를 지고 플라스틱을 이고 현관을 나서야 할 판이다. 이렇게 집이라는 공간이 모든 행위의 핵심이 되면서 지난해 그리 떠들었던 ‘환경’에 대한 문제를 잠시 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정 간편식’과 ‘건강’ 카테고리의 급부상
필자가 지속적으로 집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마켓컬리도 ‘H.O.M.E’을 골자로 하는 트렌드를 내놨다. 그중 첫 번째가 ‘가정 간편식(Home Meal Replacement, HMR)’이다. 직접 재료를 사다 요리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그에 투입되는 수고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더욱이 MZ세대에게 전통적 조리는 매일 하기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할애되는 수고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밥 먹는 것 이외에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가정 간편식은 정량의 재료와 어느 정도 조리된 재료가 준비되어 있고, 조리 설명대로 간단하게 익히거나 데우기만 하면 된다. 마켓컬리에 따르면 이 카테고리의 판매량은 전년(2019년) 대비 154%가 증가했다고 한다.
현재 가정 간편식의 영역은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고 많은 관심을 받는 분야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인해 5성급 호텔의 레스토랑, 다이닝조차 큰 매출 하락을 보이는 가운데, 유명 호텔에서 내놓은 ‘유니짜장’도 그런 HMR의 영역 확장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제품이 아닐까 싶다. 필자 역시 이것을 구하려 꽤 노력한 적이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지속적으로 상승할수록 외식에 대한 불안감 역시 고조된다. 나의 경우 평양냉면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역시 냉면은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다. 하지만 식당에 가기란, 특히 아기까지 동반해서 나가기란 꽤 조심스럽다. 그런데 유명 ‘평냉집’에서 내놓은 평양냉면 HMR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소월길에서 시작해 쌀국수와 반미 샌드위치로 이름을 알린 베트남 음식점이 있다. 최근 이들도 쌀국수 HMR을 선보였다. 이렇게 좋아하던 음식을 간단하게, 또 레스토랑 가격에 비해 저렴하게 집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니 HMR 제품들이 불티나듯 잘 팔려 나갈 수밖에.
두 번째 트렌드는 ‘유기농(Organic)’이다. 오래 전부터 재배, 사육 단계에서 약품이 첨가되지 않은 식재료에 대한 관심도는 서서히 증가해 왔다. 팬데믹이 도래하면서 이에 대한 수요는 더 확대되었다. 소비자들은 하나를 먹더라도 조금 더 건강한 식재료를 찾게 되었고, 이에 대한 반증이 무농약, 무색소의 유기농 제품을 고르는 성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켓컬리에 따르면 2020년 국산 과일 판매량은 작년 대비 79% 증가했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유기농 과일은 146%가, 우수 농산물 관리 제도(GAP)에 따른 과일은 89% 늘었다고 발표했다. 채소에서도 무농약, 유기농 채소의 소비 증가율이 도드라졌다. 그런데 말이다. 사실 유기농이라는 이름이 붙은 식재료들은 일반 과일, 채소, 야채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그럼에도 이 제품들의 판매율이 상승했다는 건 MZ세대에 의해 견인되고 있는 소비 트렌드를 다시 한번 강조하는 사례로 읽히기도 한다. MZ세대는 취향에 따른 소비가 굉장히 강하며, 스스로를 아끼는 성향 역시 강렬하다. 하나를 먹더라도 품질 좋은 걸 찾는 성향이 유기농 식재료의 판매 상승률에 미친 영향 역시 크다고 볼 수 있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감기로 인한 기침, 열은 그냥 “나 감기 걸렸어. 그래서 병원 다녀왔어” 정도로 그칠 증상이었다. 하지만 몇 주 전 아기로부터 옮은 감기로 인해 인후통과 미열이 나자 노이로제가 걸릴 만큼 민감해졌다. 공공장소에서 기침이라도 한 번 할라치면 주변 시선을 의식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코로나19 감염은 아니었고 단순 감기로 그쳤지만, 그만큼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시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도 조금은 비싼 영양제를 구입하기도 했고, 또 꾸준히 복용하는 상황이다. 이런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비단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건강 기능 식품의 판매 급증 현상을 일으킨 것임에 틀림없다.
마켓컬리가 발표한 마지막 트렌드는 ‘단독 또는 독점(Exclusive)’ 판매 상품이다. 커머스 기업인 마켓컬리는 이걸 PB제품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그들은 ‘컬리 온리’, ‘컬러스’ 등으로 단독 판매를 명시했고, 소비자들은 그것을 우선적으로 구매하기 위해 열광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 딱지’가 붙은 제품들은 순식간에 매진되는 진풍경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꼭 이 커머스뿐만 아니라도 현대 소비에 있어 ‘독점 판매 방식’은 일종의 한정판 개념으로 이해될 때가 있다. 소비자들은 한정 수량의 독점 판매 상품에 유독 관심을 가진다는 말이다. 마켓컬리에서만 살 수 있는 전국 유명 맛집의 무엇, 로켓 프레쉬에서만 주문할 수 있는 전국 유명 농장의 무엇, 오아시스 마켓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유기농 신선 채소 등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새로운 세대의 소비 성향에 잘 부합되는 마케팅 방식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2021년 트렌드 ‘집’이 완성되었다. 비단 우리 집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집에도 대부분 해당되는 사항이 아닐까 싶다. 멀지 않은 미래, 저녁 식사는 대부분 HMR로 조리한 맛있는 어떤 음식이 될 것이고, 재택 근무 중 휴식 시간에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디저트는 유기농 과일이 될 것이며, 배달 앱을 통해 문 앞에 놓여진 점심 식사 후 건강 기능 식품을 물과 함께 먹을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각종 식재료 커머스에서 판매하는 단독 판매 상품을 획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클릭할 것이다. 배송료를 절약하기 위해 덤으로 HMR이나 유기농 과일 한 꾸러미 추가는 더할 나위 없는 명분으로 작용할 것이고 말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현관 앞에 나가면 저녁에 주문한 제품들이 새벽 배송이라는 놀라운 실력으로 배달되어 놓여져 있을 거다. 그것을 집에 들이고 정리하고 나면 또 재택 근무 시간이 돌아온다. 이렇게 우리 집에서의 ‘집’ 트렌드는 끊임없는 반복을 거듭한다.
과연 언제까지 ‘집콕’이라는 명패를 내걸고 쳇바퀴 같은 삶을 지속해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분명한 점은 많은 이들이 이 같은 라이프 스타일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모바일 장보기를 하는 자신을 행위를 반추해 보라. 그냥 원래 그렇게 생활해 왔던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지 않은가? 다만 바람이 있다면 예상보다는 늦었지만 하루 빨리 과거의 라이프 스타일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집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우리네 집은 가장 트렌디한 공간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63호 (21.01.1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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