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식량위기, 눈 뜨고 당할 수는 없죠 [책과 삶]

이혜인 기자 입력 2021. 1. 15. 12:11 수정 2021. 1. 15. 21:4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인류를 식량 위기에서 구할 음식의 모험가들
아마다 리틀 지음·고호관 옮김
세종서적 | 436쪽 | 2만원

이제 달고 아삭한 사과를 먹으려면 북쪽으로 가야 한다. 기후변화로 연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한국 사과의 주산지는 경북에서 강원까지 이동했다. 통계청의 ‘기후변화에 따른 주요 농작물 주산지 이동 현황’(2018)을 보면 1970년 사과의 주산지는 대구를 중심으로 한 경북 경산·영천·영주였으나, 2015년에는 강원 정선·영월·양구다. 통계청은 21세기 후반쯤엔 사과·복숭아·포도와 같은 한국 대표 과일이 감귤·단감 등 아열대 기후에 적합한 과일로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과뿐만이 아니다. 체리, 아보카도, 옥수수, 커피….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온갖 농작물은 기후변화로 인한 포화를 맞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의 온난화 추세라면 10년마다 전 세계 농산물 수확량이 2~6%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IPCC는 이대로면 2050년에는 식량 가격이 거의 두 배가 될 수 있다고 예측한다.

20세기 후반 시작된 지금의 농업 방식은 식량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여러 식물이 섞여 자라는 자연과 달리 광활한 땅에 단일 품종만을 심어 기르는 ‘단작’은 온난화로 인한 기온 변화와 병충해에 취약하다.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사용하면 생산량을 늘릴 수 있으나 오염된 토지도 늘어난다. <인류를 식량위기에서 구할 음식의 모험가들>(이하 <모험가들>)에는 식량위기의 예고편과도 같은 현장들이 담겨 있다. 2016년 기록적 한파로 과수원 세 곳에서 작물의 4분의 3을 잃은 미국 위스콘신주의 퍼거슨 가족, 급속한 산업발전으로 20% 정도의 토지가 화학물질과 중금속으로 오염된 중국 사례, 극심한 가뭄으로 구름씨를 일상적으로 뿌리는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의 조종사 등이다.

<인류를 식량 위기에서 구할 음식의 모험가들>에서는 기후위기가 만들어낸 식량위기에 대응하는 시도들을 소개한다. 사진은 영국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서 5000인분의 재활용 음식으로 만들어낸 연회의 모습. 세종 제공
제초로봇으로 잡초에만 농약 살포
땅이 아닌 공중에서 채소 재배하기
온실가스 없는 실험실서 오리 배양
지구 지키기 위해 패러다임 바꾸는
연구자·기업가에게서 들춰본 희망

닥쳐올 식량위기를 눈 뜨고 맞이할 수밖에 없을까. 빌 게이츠는 2014년 마이크로소프트 주주 모임에서 “식품을 재발명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모험가들>에서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기술을 이용해 농작물 생산의 패러다임 변화를 꾀하는 시도들을 소개한다. 미국 밴더빌트대 탐사 저널리즘 및 과학 글쓰기 교수이자 환경전문가인 저자는 식물유전학, 수중재배,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기업가들을 직접 만났다.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의 야후 본사 옆에는 벤처기업 블루리버 테크놀로지가 있다. 이곳에서는 색다른 ‘농기구’를 개발하고 있다. 바로 ‘제초로봇’이다. 제초로봇 시앤스프레이는 식물을 스캔한 뒤 30밀리초(millisecond·1000분의 1초) 안에 목화와 잡초를 분간하고 농약을 어디에 얼마나 뿌려야 할지 결정한다. 기존에는 목화밭 4000㎡에 95ℓ의 제초제가 사용됐으나, 시앤스프레이는 7.5ℓ만 사용하고도 잡초를 관리한다.

세계 최대 연어 양식기업인 노르웨이의 마린 하베스트(현재는 ‘모위’)는 바다에 로봇을 풀었다. 물고기 양식의 골칫거리인 ‘바다 이’를 잡기 위해서다. ‘스팅레이’라는 이 로봇은 바다 이와 연어 비늘의 반점을 구분한다. 바다 이를 감지하면 밀리초 안에 수술용 레이저를 쏴 제거한다.

농장의 개념을 바꾸는 이들도 있다. 미국 스타트업 ‘에어로팜스’는 수경재배에서 한층 더 나아간 공중재배 기술을 이용해 녹색채소를 재배한다. 장소는 도심에서 가까운 빌딩들이다. 30㎝ 깊이 받침대 속 특수 제작된 천 위에 루콜라, 케일등의 새싹채소들이 놓여 있다. 영양분이 섞인 물이 뿌리에 분무기로 뿌려진다. 공중재배는 일반 농사의 5% 수준으로 물을 사용한다. 생산된 채소는 인근 80㎞ 안에 있는 마트, 식당, 카페에 공급된다.

실리콘밸리의 한 실험실에서는 고기가 ‘자라난다’. 스타트업 멤피스미트에서는 살아 있는 동물에서 채취한 소량의 근육, 지방, 연결 조직을 이용해 실험실에서 배양육을 기른다. 배양육은 육류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4분의 3 이상 줄일 수 있다. 저자는 멤피스미트 연구실을 방문해 배양육 오리고기 가슴살을 맛보고 “좀 질기고, 심줄이 너무 많고, 희미하게 금속 맛의 여운이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실히 익숙한 맛이라 먹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고 평한다.

어떤 이들은 달라진 기후환경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작물들을 찾아다닌다.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 진화생물학 교수 마크 올슨은 슈퍼푸드로 각광받는 모링가(인도·아프리카 등에서 자생하는 콩과 식물) 연구를 하고 있다. 모링가는 아열대 기후에서도 잘 자란다. 연구자들은 퀴노아, 모링가 등 다양한 기후환경에서도 잘 자라면서 단백질이 풍부한 작물들을 대량 재배할 수 있는 육종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사례들이 지금의 식량위기를 타개할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기존 농법을 대체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고, 보완해야 할 지점도 무수히 많다. 공중재배의 경우 산지부터 가정까지의 배송거리가 짧아 운송 과정에서 탄소발자국은 줄어들지만, 태양광 대신 LED 조명을 돌리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배양육은 ㎏당 생산비가 1만달러 선으로, 기존 고기를 대체하기에는 너무 비싸다.

하지만 저자는 인류가 식량위기의 징후들을 포착하고 대처를 시작했다는 것에 낙관적인 시선을 보낸다.

저자는 “인간이 전통적인 농업과 급진적인 신기술을 융합해 환경을 건강하게 복원하면서도 음식의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길을 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지금의 시도들은 미래 먹거리의 모습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