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시비 남긴 경남교육청 '21일의 비상식'

이상욱 영남본부 기자 2021. 1. 1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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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교육감 "19일 예정된 면접시험 잠정 연기"
채용 객관성 논란에도 방과 후 자원봉사자 교육공무직 전환 강행..리더십에 상처

(시사저널=이상욱 영남본부 기자)

박종훈 경남교육감이 14일 방과 후 자원봉사자 교육공무직 전환 계획을 잠정 연기하면서 그의 리더십도 큰 상처를 받게 됐다. 박 교육감은 시험 등 공정한 검증 절차없는 자원봉사자의 정규직 전환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에도 계획을 강행했다. 채용의 공정성과 객관성 문제가 불거져 경남교총·경남교육청 공무원노동조합 등 반발이 이어졌지만, 계획을 밀어붙였다. 

사실상 박 교육감을 겨냥한 경남도의회 교육위원회 지적, 시민단체의 공무직 전환 '특혜' 주장, 교원단체 등 반발이라는 파도가 휩쓸고 간 뒤에야 박 교육감은 '면접 잠정 연기' 카드로 수습에 나섰다. 교육 관계자와 소통하지 않은 불통(不通)의 결과는 박 교육감의 리더십 손상이었다. 

1월 14일 경남교육청 프레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박종훈 경남교육감. ©경남교육청

박 교육감은 14일 경남교육청 프레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공무직 전환) 결정의 공정성과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며 "이 시점에서 더욱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19일로 예정된 '방과후학교 전담인력'의 면접시험을 잠정 연기한다"고 밝혔다. 부정적 여론이 거세지자 한발 물러난 셈이다. 

이어 "면접시험을 연기하는 동안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교육부, 교직단체, 관련 노동조합 등을 포함해 교육공동체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제기된 우려를 불식시키고, 애초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안을 찾도록 하겠다"고 했다. 의견수렴 과정에서 공채나 전환 계획 전면 폐지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발언이다.

하지만 박 교육감은 지난 5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학교 업무 적정화를 위해 인력 배치가 필요하다는 학교 현장 의견을 반영했다"며 "도내 모든 초등학교부터 방과후학교, 교무행정 전담인력('방과후학교 실무사')을 배치하겠다"고 했었다. 당시 계획 판단에 대한 오류는 인정하지 않았다. 

면접 잠정연기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이번 사태의 출발점과 주요 과정에는 항상 박 교육감의 오판이 있었다. 적어도 몇 차례 '교육공무직 전환'을 재고해 볼 시점이 있었지만,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우선 교육청이 공개채용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특정인에게 국한된 무기계약직 전환 계획은 취업준비생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내모는 것이라는 비판을 박 교육감은 수용하지 않았다. 박 교육감은 지난 4일 열린 '월요회의'에서 "공개채용으로 충원하지 않고 방과 후 자원봉사자를 전환하는 것은 비정규직 양산을 최소화하고, 만약에 신규로 공무직으로 채용했을 때보다 예산이 훨씬 적게 드는 점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결정한 정책 방향"이라고 했다.

그러나 300명 넘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취업준비생부터 '공정'과 '정의'의 문제를 제기했다. 한 교육공무직 취업준비생은 지난달 28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공개 채용이라는 제도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편법적인 행정행위를 통해 채용을 추진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항변했다. 그럼에도 박 교육감은 지난 5일 "학교와 교육청이 새로운 계급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학교에서 비정규직은 없어져야 한다"며 교육공무직 전환을 강행했다. 

교육 관계자와 취업준비생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박 교육감은 "무시험 전형이 아니고, 면접과 역량에 대한 평가를 거쳐서 역량이 되지 않는 분들은 탈락되는 나름의 내부적인 전형 절차 과정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사태를 방관해왔다. 특히 경남교육청은 "교육공동체에게 우리의 정책이 옳았다는 것을 설명해야 된다"고 지시했다. 방과 후 자원봉사자의 정규직 전환 요구에 반응했던 박 교육감은 교육 관계자나 취업준비생의 절규에 대해선 외면했다. 

그러나 박 교육감의 오판도 거센 민심 앞에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13일 경남도의회 교육위원회는 채용 공정성에 대해 사회적 요구가 큰 만큼 국민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절차 진행을 요구했다. 박 교육감은 계획 발표 21일 만에 한발 물러났다. 

한편 경남교육청은 지난달 24일 초·중·고교 전체에 "방과후학교 자원봉사자를 주 40시간 무기계약직 교육공무직으로 처우를 개선해 방과 후 학교를 활성화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방과 후 학교 코디'로 불리는 자원봉사자들은 방과 후 학교 관련 서류 작성, 학생 출결 점검 등 방과 후 담당 교사 업무를 도와주는 일종의 보조원이다. 

2009년 교육부가 한시적 사업으로 도입했고, 이후 학부모를 자원봉사자로 위촉하거나 단기 근로자를 따로 채용하는 등 다양하게 운영됐다. 경남교육청은 그동안 '방과 후 코디'를 주 15시간 미만 업무를 하는 자원봉사자로 위촉하고, 교통비·식비로 하루 3만 원을 지급해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한 이들은 지난해 초부터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근로자로 일하니,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경남교육청이 면접 등을 거쳐 자원봉사자 348명을 오는 3월 1일부터 주 40시간 일하는 교육공무직으로 전환해주기로 결정하면서 '제2의 인국공(인천국제공항의 무원칙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사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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