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파정石坡亭-공기부터 다른 별유천지

2021. 1. 1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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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3대 정원으로 담양 소쇄원, 보길도 부용정 그리고 성북동 성락원을 꼽았다. 그야말로 별유천지(속계를 떠난 특별한 경지) 같은 이 정원들의 풍광도 대단하지만 서울에는 이에 못지않은 정원이 있다. 바로 인왕산 자락에 있는 석파정이다.

19세기, 조선 말기의 권력은 왕이 아닌 안동 김씨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려 60여 년간 권력 카르텔을 형성하고 조선의 힘과 부를 독점했다. 심지어 왕까지 자신들의 뜻대로 내세웠다. 철종을 강화도에서 데려와 왕으로 내세우고 안동 김씨 세력을 더욱 강화했다. 하지만 철종이 후계 없이 승하하자 세상은 변했다. 당시 왕실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 조 씨는 흥선군의 계획대로 흥선군의 아들을 왕으로 결정했다. 그가 바로 고종이다. 어린 고종을 대신해 대왕대비가 수렴청정해야 하지만 그 권한은 왕의 살아 있는 생부 흥선군에게 넘어갔다. 그가 바로 흥선 대원군이다. ‘대원군大院君’은 본래 왕이 직계 후계 없이 세상을 뜨면 종친 중에서 보위를 잇게 했고 그 왕의 생부를 대원군이라 했다. 조선에는 4명의 대원군이 존재했다. 선조 아버지 덕흥 대원군, 인조 아버지 정원 대원군, 철종 아버지 전계 대원군 그리고 흥선 대원군이다. 흥선을 제외한 세 대원군은 모두 사후에 추존되었다. 흥선 대원군이 등장하자 조정과 왕실은 처음 경험하는 왕의 생부에 대한 예우와 권한을 새롭게 정했다. ‘국태공國太公’으로 불린 흥선 대원군은 세도 정치를 무너뜨리고 조선의 1인자로 등장했다. 조선 땅에서 흥선 대원군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흥선 대원군이 못 가진 것이 있었다. 바로 부암동 계곡에 있는 안동 김 문 좌장 김흥근의 별장 ‘삼계동정사’다. 흥선 대원군은 점잖게 이 별장을 팔라 했지만 김흥근은 거절했다. 그러자 흥선 대원군은 꾀를 냈다. 고종을 초대해 이 별장에서 하룻밤을 머문 것. 조선의 예법에서는 임금이 기거한 곳은 신하가 소유할 수 없었다. 삼계동정사는 흥선 대원군의 것이 되었다. 흥선 대원군은 이곳을 자신의 호를 따 ‘석파정石坡亭’이라 이름 짓고 풍류를 즐겼다. 그만큼 이곳의 풍광은 서울 땅에서 으뜸이다.

석파정에는 안태각, 낙안당, 망원정, 유수성중관풍루 등 모두 8채의 전각이 있다. 각 전각에서는 북악산과 부암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옆에는 계곡이 흐른다. 본래 3개의 내가 하나로 합쳐진다 해 ‘삼계동三溪洞’이라 했다. 또한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누각’이나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단풍을 구경하는 누대’란 뜻의 편액이 걸린 아름다운 전각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별서는 안채, 사랑채 그리고 살림채가 있다. 사랑채를 지나면 담으로 둘러싸인 안채에 다다른다. 집 안에는 노송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특히 사랑채에 있는 수령 650년 된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이 노송은 이름이 ‘천세송千歲松’이다. 마치 부축 받듯이 옆으로 길게 뻗은 가지마다 받침대가 놓여 있다. 이름 그대로 ‘천년을 살으리라’는 기대와 정성이 가득하다. 사랑채와 안채의 담 사이로 누대로 올라가는 홍예문이 있고 누대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면 그야말로 질이 다른 ‘살아 있는 자연의 공기’가 콧속으로 스며든다. 눈과 가슴이 탁 트이는 곳이다.

별서와 조금 떨어진 곳에 석파정이 있다. 조선의 전통 정자는 바닥이 나무이며 난간이 높지 않다. 하지만 이 정자는 돌로 된 평판석 다리를 건너면 바닥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난간 역시 화려한 문양으로 옆면을 가득 채운다. 한눈에도 중국풍이다. 석파정의 건축 연대는 불명확하다. 흥선 대원군이 지었다는 설도 있고, 김흥근이 세도 시절에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하나의 볼거리는 별채 뒤에 있는 비범하게 생긴 바위다. 너럭바위 혹은 코끼리 모양이라 해 ‘코끼리바위’로 불리는 커다란 암석에는 영험한 기운이 있다 해 찾는 이들이 소원을 빌기도 했다.

[글 장진혁(프리랜서) 사진 위키피디아, 코리아넷]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63호 (21.01.1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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