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같은 마음' 벗어야 '누구나' 아이를 지킬 수 있다
아동학대를 주제로 삼은 영화 '미쓰백'. 사실 개봉 당시엔 못 봤다. 너무 잔인할까 봐 무서웠다. 그러나 최근 '양천 양부모 아동학대 사건'이 터지면서 의무감으로라도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에선 피해 아동보다는 성인 가해자에게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취지로 '정인이 사건' 대신 '양천 양부모 아동학대 사건'으로 쓰고자 한다.
주인공 '백상아'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다가 보육원에서 자란다. 성폭행을 당할 위험에 처해 자신을 지키려다가 살인 미수 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서 복역하고 세상으로 나왔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혼자 사는 상아는 우연히 이웃집의 학대 받는 아이 지은을 만난다. 밑바닥 인생을 사는 젊은 여성과 가정이라는 유일한 보금자리에서 목숨을 위협 당하는 여자 아이. 영화는 두 여성의 연대를 그린다.
◇ 학대·폭력 자극적 묘사하는 언론…이러니 '일상의 학대'가 묻힌다
그런데 나는 묘하게도 3년 전에 개봉한 이 영화에서 현재 양천 양부모 아동학대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 모든 폭력은 섣불리 재현해선 안 된다. 특히나 성인에게 저항할 힘이 극히 미약한 아동에 대한 폭력은 재현할 때 더 신중하고 예민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지은의 친부와 그 여자친구가 지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꽤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아이가 멀리 날아갈 정도로 아이의 가슴을 발로 차거나, 머리채를 붙들고 바닥에 질질 끌고 간다. 가장 보기 힘들었던 장면은 친부가 지은의 목을 조르는 장면이었다.
내 말이 속 편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안전한 삶을 살고 있는 성인 관객이 보기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엄연히 존재하는 폭력에 대한 묘사를 하지 말아야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래도 묻고 싶다. 꼭 그렇게 직접적으로 보여줘야 아동학대의 실체와 원인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거냐고. 폭력 묘사의 수위를 낮추면서 아이의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존재하지 않느냐고.
이는 현재 언론 보도에 묻고 싶은 질문이기도 하다. 정인이가 끔찍한 방식으로 학대 당하다 죽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둘러싼 수많은 사실 중에 무엇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는 언론의 손에 달려 있다.
'췌장 절단', '발로 복부 밟아' 등 공분을 자극하는 제목을 단 기사들이 뉴스 순위 상위에 오르는 현상은 그 자체로 섬뜩하다. 또한 극단적인 폭력에만 초점을 맞추면 살인에 이르지 않지만 엄연히 아동학대에 속하는 일상 속 작은 폭력을 간과하기 쉽다.
분노는 순간이고 가해자를 악마화하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다. 물론 이 말은 가해자의 행위를 정당화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아동학대 피해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향후 해결책을 세우고 왜 우리 사회는 이런 악마 같은 인간을 키워냈는지 샅샅이 알아봐야 한다.
그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하고 섬세한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 지난한 시간이 가장 약한 아이들을 지켜내지 못한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 전형적인 '모녀' 관계 벗어나니… '누구나' 아이 지킬 수 있음이 보인다
'미쓰백'에서 특이하면서도 마음을 울렸던 지점은 바로 '미쓰백'이라는 호칭이었다. 학대 받는 아동과 그 아이를 보호하려는 성인 여성의 관계를 그릴 때, 가장 쉬운 구도는 아마 유사 모녀 관계일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 가장 쉬운 길로 가지 않는다. 지은이 상아에게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하냐고 묻자 상아는 대답한다. "미쓰백이라고 불러."
둘의 관계는 정말 '미쓰백과 지은이'라고밖에는 명명할 수 없는 관계다. 백상아는 전형적인 엄마처럼 밥 해 먹이고, 아이를 따뜻하게 챙겨주는 여성상으로 나오지 않는다. 둘 사이는 살갑지 않고, 데면데면하다. 서로 나누는 대사도 많지 않다. 대신 상아는 지은이 위기에 처했을 때 지은에게 숨이 차게 달려간다.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처럼.
놀이공원에서 미키 마우스 머리띠를 하고 뚱하게 앉아 있을 때는 무뚝뚝한 큰언니 같고,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지은에게 옷을 왕창 사 입히고 햄버거를 잔뜩 사줄 때는 인심 넉넉한 이모 같기도 하다.
지은을 때리는 친부에게 악을 쓰면서 달려들 때는 동네 '센 언니' 같다. 어린 시절 학대 당했던 흉터를 지은에게 보여주고, 지은이 상아를 위로해줄 때는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 선 친구처럼 보인다. 언니 같고, 이모 같고, 친구 같은 여성 보호자. 둘 사이의 관계는 모녀 관계의 틀에 갇히지 않고 역동적이다.
이 역동성이 우리에게 우리 모두가 모든 아이들의 보호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흔히들 '엄마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호하자고 하지만, 아동은 꼭 내 딸, 내 아들이어야만 보호할 가치가 생기는 존재가 아니다.
부모 자식 관계라는 틀을 넘어서 우리는 학대 받는 아이들, 더 나아가 모든 아동의 이웃 시민이 돼야 한다. 때로는 언니오빠나 이모삼촌처럼 아이들을 보호하고, 때로는 친구처럼 아이들을 우리 사회의 동등한 시민으로 존중하는 이웃.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육아 퇴근 후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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