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의 하룻밤』 언택트 시대 한적한 섬 여행-책을 베고 섬에서 잠들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섬 여행의 로망은 잔잔한 바다와 호젓한 분위기의 힐링일 것이나, 기실 섬 여행의 8할은 예상할 수 없는 바다 날씨와 섬 사람 특유의 투박하고도 진한 정이다. ‘캠핑 장인’ ‘섬 여행가’로 10여 년 동안 200여 개가 넘는 섬을 여행했던 김민수 작가 역시 폭풍우를 견디고, 섬사람들과 어울리며 진짜 섬을 만났다. 그는 “섬을 알아갈수록 섬이 다가왔다”고 고백한다.
책은 섬을 걷는 그의 발걸음을 닮았다. 거침 없이 투박하게 걷다가도 섬 사람들의 정을 만나면 어김 없이 멈춰서는 소탈한 걸음. 하루 이상은 섬에서 먹고 자며 넉넉하게 머무르고 섬의 진실을 몸으로 와락 끌어안는 것이 그의 여행법이다. 책에는 제법 알려진 관광지 섬도 등장하지만, 노대도, 말도, 평일도, 여서도처럼 도시 생활자에게 낯선 이름의 섬이 태반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완벽한 프라이빗 비치를 떠올리게 하는 해수욕장이 있는 대야도, 에너지 자립섬으로 자동차와 오토바이 한 대 없는 죽도, 작을 소(小)에 물결 랑(浪) 자를 쓴 ‘소랑도’라는 예쁜 섬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저자는 자전거로 여행하기 좋은 위도나 보길도, 차박하기 좋은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백패킹의 성지인 굴업도나 매물도 등을 돌며 사진 찍기 좋은 뷰 포인트와 낯선 섬을 오가기 위한 교통수단까지 소개한다. 책 한 권만 들고 떠나도 배 편과 숙박, 맛집과 트레킹 코스가 해결된다는 얘기다. 현재 다리로 연결돼 보다 수월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은 섬들까지 소개한 페이지에서는 섬 여행의 높은 진입 장벽을 두려워하는 여행객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그가 귀띔하는 섬 여행법은 “때론 텅 비어 있고, 때론 생업의 활기로 넘쳐나는 섬을 있는 그대로 만나는 것”이다. 한때 수백 명의 학생들이 있었지만 이젠 캠퍼들의 아지트가 된 폐교,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만큼 파시를 이루던 섬의 무인도화, 낯선 여행자에게 불쑥 자기 집에서 밥을 대접하겠다고 나서는 어르신들이 남아 있는 섬. 작가는 유명한 섬은 유명한 대로, 빈집 많은 무인도는 낯선 그대로, 두 발로 걸은 바닷길 이야기를 오롯이 들려준다.
식수와 물자가 부족한 섬에서는 주민들의 도움을 얻어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책 속 그의 말처럼 “폭설에 고립된 새벽, 강풍에 텐트가 휘청이는 저녁 같은 위기의 순간”들이 그때다. 뭍에선 경험할 수 없는 자연을 온몸으로 체험하지만, 때론 불편하고 힘들어지는 섬 여행의 한기를 덥혀주는 것은 바로 그런 순간들이 아닐까. 밥값을 묻는 작가에게 “우리 섬은 마을을 찾아온 손님한테 밥 한 끼 대접 못할 정도로 야박하지 않다”고 답하던 홍도 주민과의 대화에선 멋쩍어진 채로 찬그릇 사이를 바삐 오갔을 그의 두 손이 상상된다. 첫 책 『섬이라니, 좋잖아요』가 섬 여행자들 사이에 인기 해시태그(#)가 된 바 있는 작가는 『시사인』, 『트래비』와 라디오 등 각종 매체에서 섬 여행을 소개하고 있다. 일본 규슈 캠핑장 70여 곳을 취재했으며, 지금도 섬 여행과 캠핑에 대한 강의, 컨설팅 등으로 섬과 여행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다. 책을 덮으니 봄철 꽉 차게 살이 오른 거북손과 맹골도 돌미역으로 끓인 최옥래 할머니의 미역국이, 수심 15m에서 채취한 가을 추자도 홍합 맛이, 또 눈 맞으며 마시는 울릉도 씨껍데기 막걸리와 함께 문어찜과 우럭구이가 있는 연홍도 섬 밥상이 그립다. 지구 전체가 국경을 잠근 지금, 이국이 그리울 때 섬으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해보면 어떨까. “아직은 파도가 세드라고. 허탕을 몇 번 해야 봄이 오는 거시제.”(p19) 지구 전체가 폭풍우 부는 겨울 섬 같은 지금, 책 속 맹골도 어부의 말처럼 봄을 기다리며 섬 여행을 기획해보자.
[글 박찬은 기자 사진 파람북]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63호 (21.01.1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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