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성 겨울 축령산의 맛.."달크작작한 공기에 마음까정 개안하요"

조홍복 기자 2021. 1. 1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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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설국으로 변한 전남 장성군 축령산 일대 모습./김영근 기자

지난 1일, 새해 첫날 전남 장성군 서삼면 모암리 축령산(鷲靈山·621m)은 하얀 눈이 뒤덮고 있었다. 무료 주차장을 벗어나자마자 20m 높이로 뻗은 50~60년생 아름드리 편백나무 숲이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은은한 향 내음이 코끝을 휘감았다. 수북이 쌓인 눈밭 사이로 퍼진 피톤치드 향이었다. 광주에서 온 박모(63)씨는 “달크작작한 공기가 끝내준다”며 “찬물로 카칼하게 세수한 것마냥 마음까정 개안하요”라고 말했다. 축령산은 산림청이 운영하는 국립 ‘치유의 숲’ 12개소 중 1곳이다.

지난 1일 눈 쌓인 전남 장성군 축령산을 찾은 탐방객./김영근 기자

입장료가 없는 숲 초입에서 만난 등산객은 5명에 불과했다. 각자 다른 산길로 흩어졌다. 20여분 더 오르자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포르르 떼를 지어 날아오르는 새의 날갯짓과 지저귐, 서걱서걱 내려앉는 눈발, 발밑에서 보드득거리며 눈 밟히는 것이 소리의 전부였다.

해로운 미생물과 벌레를 막는 식물의 방어 화학물질인 피톤치드는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고 면역력을 높여주는 이로운 물질이다. 활엽수보단 편백(扁柏)과 같은 침엽수가 더 많은 피톤치드를 내뿜는다. 그윽한 자연의 향기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나 홀로 3시간쯤 치유의 숲을 걷자 몸에 편백 향이 짙게 배면서 생기가 돌았다. 축령산 자락에 글방을 차린 동양학 칼럼니스트 조영헌씨는 “편백 향은 긴장을 풀어주고 생의 의욕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설국으로 변한 전남 장성군 축령산 일대 모습. 광활한 편백림이 펼쳐져 있다./김영근 기자

겨울 명산이 코로나로 지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정부가 10여년 전 조성에 나선 ‘치유의 숲’은 국립 12개소·공립 51개소 등 67곳이 전국에 있다. 장성 서산·북일면 일대 축령산 숲 전체 면적은 1766㏊. 이 가운데 388㏊를 산림청이 치유의 숲으로 관리하고 있다.

특히 축령산 전체 숲 중 상록수림 넓이는 1197㏊로 서울 여의도보다 4배가 넓다. 늘 푸른 조림(造林) 편백숲은 783㏊로 전국에서 가장 넓다. 700만 그루의 편백이 특유한 향 내음이 가득한 울창한 숲을 이룬다.

지난 1일 설국으로 변한 전남 장성군 축령산 일대 모습. 노란색 건물은 장성군이 운영하는 펜션단지./김영근 기자

노령산맥에서 뻗어나온 높고 낮은 산들을 거느린 축령산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편백 산림치유장이다. 2012년 4월 국립산림과학원이 조사했더니 장성은 전국에서 공기가 가장 깨끗했다. 전남도산림자원연구소은 “당시 대기오염측정 결과 장성의 오존 농도는 9.0ppb로 전국 평균수치(24.9ppb)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축령산의 맑은 공기가 장성 전체의 공기질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맑은 공기는 ‘산림왕’이 남긴 자산이다. 6·25 한국전쟁으로 산하는 폐허로 변했다. 숲의 가치를 깨달은 춘원 고(故) 임종국(1915~1987) 선생이 조림 사업에 팔을 걷어붙였다. 혼자서 묵묵히 1956~1976년 21년 동안 벌거벗은 축령산 사유지와 국유지 612㏊에 편백과 삼나무 230만 그루를 심었다.

지난 1일 설국으로 변한 전남 장성군 축령산에서 한 가족이 눈썰매를 즐기고 있다./김영근 기자

자비를 들여 나무를 심자 주변에서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다고 한다. 1968년과 이듬해 극심한 가뭄으로 나무가 죽어가자 물지게로 물을 일일이 퍼 올려 고사 직전의 나무를 살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선생이 조림에 나선 지 반 백년이 흘러 축령산은 전국 최대 조림 성공지가 됐다. 전국의 아토피·기관지염·암 환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축령산은 2000년 정부로부터 ‘미래를 위해 보존해야 할 숲’으로 지정됐다. 이태 뒤 산림청은 임종국 선생의 사유지 등을 포함해 388㏊를 국유림으로 관리하며 ‘치유의 숲’을 조성했다. 유두석 장성군수는 “춘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축령산도 없다”며 “그는 진정한 산림왕”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설국으로 변한 전남 장성군 축령산을 찾은 가족이 산림욕을 즐기고 있다./김영근 기자

치유의 숲을 관리·운영하는 산림청 소속 ‘장성 숲체원’은 임도(林道)를 중심으로 ‘치유숲길’인 맨발숲길(0.5㎞), 숲내음숲길(2.2㎞), 물소리숲길(0.6㎞), 산소숲길(1.9㎞), 건강숲길(2.9㎞), 하늘숲길(2.7㎞)을 조성했다. 장성군은 내년 상반기 대덕마을 주변에 10m 높이에서 걷는 하늘숲길(0.9㎞)을 따로 만든다.

다만 산림청의 산림치유센터는 지난해 말 코로나로 폐쇄돼 명상과 차 마시기 등 치유 프로그램 운영이 중단됐다. 산행은 통제하지 않는다. 축령산은 추암·대덕·모암·금곡지구로 입구가 여러 곳이다. 4개 지구에 무료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음식점과 편백 나무 용품 판매점은 서삼면 추암리 괴정마을에 있다.

지난 1일 전남 장성군 축령산 편백숲의 정수리는 뾰족했다./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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