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 금보는 구리아연 합금에 아말감 기법

최진숙 2021. 1. 15. 09:4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조선왕조부터 대한제국시대까지 500년을 이어온 대표 왕실문화재 '어보'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어보는 의례를 위해 제작된 일종의 도장같은 것이다.

고궁박물관이 이 어보의 성분, 재료, 제작기법 등을 종합해석한 '어보 과학적 분석' 보고서 3권을 15일 발간했다.

어보에 달린 붉은 끈 보수(寶綬)는 주로 비단(실크)으로 만들었지만 1740년과 1900년대 이후 제작된 일부 보수에서 인조섬유(레이온)가 사용됐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어보들 /사진=국립고궁박물관

[파이낸셜뉴스] 조선왕조부터 대한제국시대까지 500년을 이어온 대표 왕실문화재 '어보'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어보는 의례를 위해 제작된 일종의 도장같은 것이다. 국왕과 왕실 전체 권위를 보여주는 상징물로 진귀함이 있다. 지난 2017년엔 '조선왕조 어보:어책'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어보가 금보 155과, 옥보 167과 등을 합쳐 총 322과다. 고궁박물관이 이 어보의 성분, 재료, 제작기법 등을 종합해석한 '어보 과학적 분석' 보고서 3권을 15일 발간했다.
세조비 정희왕후 상존호 옥보 /사진=국립고궁박물관

보고서에 따르면 금보는 구리·아연 합금 등에 아말감 기법으로 도금해 제작됐다. 수은에 금을 녹인 아말감을 금속 표면에 칠한 후 수은을 증발시켜 표면에 도금하는 식이다. 금보의 아연 함량은 시간이 흐르면서 비중이 높아졌다. 15~17세기에는 10% 안팎, 18세기이후 10~30%, 19세기에는 20% 이상을 차지했다. 옥보는 대부분 사문암질암으로 제작됐으며 19세기 이후 대리암질암, 백운암질암이 일부 옥보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어보에 달린 붉은 끈 보수(寶綬)는 주로 비단(실크)으로 만들었지만 1740년과 1900년대 이후 제작된 일부 보수에서 인조섬유(레이온)가 사용됐다. 문화재청은 이번 보고서가 어보 환수나 유사 유물 시기 판별에 기준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