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정인이 사건', 검찰이 공소장 '지각 변경'한 이유는?
'16개월 정인이 학대 사망사건' 첫 공판이 그제(13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렸습니다. 첫 재판의 핵심은 단연 검찰의 공소장 변경 여부였습니다. 당초 검찰은 경찰에서 송치된 대로 양어머니 장 씨를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했다가 거센 여론의 압박 속에 뒤늦게 살인죄로 죄명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장 씨가 정인이를 가혹하게 학대한 정황, 만신창이가 된 정인이 몸속 곳곳의 장기들이 언론을 통해 속속 공개된 뒤의 입장 변화였습니다. 여러 단체들의 비판 속에, 공판 전까지 공소장 변경 여부를 알려줄 수 없다며 취재진과 씨름하던 검찰은 첫 재판 시작과 동시에 공소장 변경 신청을 했습니다.
검찰이 재판에서 밝힌 공소장 변경 사유는 이렇습니다.
검찰은 피고인 구속기간 내 보강 수사하면서 프로파일링 기법의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남부구치소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해 결과를 수령하지 못한 채 구속기간 마지막 날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결과 수령 이후 유의미한 결과가 확인돼 추가로 법의학자에게 사인 재감정을 받는 등 11일까지의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내부 검토를 거쳐 살인죄를 주위적 공소사실, 아동학대치사죄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하는 공소장 변경을 신청합니다. (1월 13일 서울남부지법 1회 공판 中)
아동학대치사죄 대신 살인죄로 장 씨를 처벌하려면 살인의 고의성이 입증돼야 하기 때문에 여러 보강 수사가 필요해 공소장 변경이 늦어졌다는 겁니다.
검찰이 새로 확보했다는 두 가지 증거는 1) 장 씨에 대한 프로파일링(통합 심리분석) 결과 2) 정인이 사인에 대한 전문가 의견입니다. 특히 검찰은 별도 보도자료까지 내서 장 씨에 대한 프로파일링 결과가 살인의 고의성을 드러내는 데 필요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살인의 고의 여부에 대하여는 사망에 이르게 한 외력(외부적 힘)의 양태와 정도뿐 아니라, 피고인의 통합 심리분석 결과, 학대의 전체적인 경위, 사망에 이를 가능성 정도 등 범행 전후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국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인식과 이를 용인하는 의사도 있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어 살인에 대한 (미필적)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1월 13일 서울남부지검 보도자료 中)
실제로 증거도 없고 목격자도 없는 사건에서 피의자에 대한 프로파일링은 중요한 수사기법 중 하나입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SBS와 통화에서 "통합 심리분석 검사에는 거짓말 탐지 결과도 포함된다. 부검의 소견을 토대로 장 씨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 이에 대해 거짓말 탐지기에서 유의미한 결과값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이 교수는 "직접 증거가 없는 아동 학대사건 특성상 프로파일링 결과들도 재판부 심증을 형성하는 의미 있는 정황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심리성격 검사에서 경계성 인격장애나 히스테리성(연극성) 인격장애 판정이 나왔다면 이 역시 다른 증거들과 종합해 장 씨의 고의성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정황적 근거로 검찰이 법정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이 교수 설명입니다.
검찰이 주요 증거로 제시한 전문가들의 의견서에도 기존 부검 감정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내용이 담겼습니다. 검찰 요청에 의견을 회신해 온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정인이 사인에 대해 "주먹이나 발 등으로 복부에 강한 힘이 가해져 췌장이 파열돼 복강 내 과도한 출혈이 발생했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등을 벽이나 바닥에 고정시킨 상태에서 강한 힘으로 내리쳐야만 췌장이 파열된다는 건데 검찰은 살인죄를 추가하며 이 내용을 종합해 구체적인 공소사실로 적시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검찰이 새로운 증거로 내놓은 두 가지를 뜯어보면 결국 '새로운 물증'은 없습니다. 기존 증거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정황 증거입니다. 바뀐 건 검찰의 수사 의지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검찰은 지난 11월 19일 경찰에서 사건이 넘어온 지 한 달도 넘게 지난 뒤에야, 여론의 공분이 일고 나서야 정인이의 '췌장 절단'에 비로소 주목했습니다.
재판에서 검찰은 "남부구치소 코로나 상황 때문에 장 씨에 대한 프로파일 결과 수령이 늦었다"고 '지각 변경'의 사유를 설명했습니다. 어쩐지 여러모로 구차해 보이는 변명입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SBS와 통화에서 "검찰이 지난달 29일에야 의견서를 요청해왔고 1회 공판 전까지 회신을 달라고 해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목격자도, 피해자의 목소리도, 피해자를 위해 싸우는 가족의 목소리도 소거된 채, 상처투성이 아이의 몸만 가지고 법정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게 아동 학대사건의 가슴 아픈 특성이라고 한다면 결국 그 죽음의 실체를 밝혀내는 건 많은 부분 수사기관의 의지에 달려 있을 겁니다.
살인의 고의성 여부를 밝혀내는 게 쉽지 않은 만큼, 검찰은 공소장에 아동학대치사죄를 남겨뒀습니다. 살인죄로 인정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건데 특별한 사유가 없을 경우 대법원 양형 기준은 살인죄(징역 10~16년)가 아동학대치사죄(징역 4~7년)의 2배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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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김민정 기자compas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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