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미스트롯] 노래는 여전히 우리 삶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2021. 1. 15.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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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에 충실한 아이들이 성인들보다 나았다
박빙의 경쟁자들 중 한 명을 선택한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업인가
댄스를 보여줄 것인가 노래로 승부할 것인가
노래 잘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태어나고 있다는 것을 이 프로는 보여준다
김다현, 김수빈이 미스트롯2 1:1 데스매치 경연에서 노래하고있다./TV조선

예선에서 진과 선에 뽑힌 윤태화와 홍지윤의 대결보다 초등학생 김다현과 김수빈의 무대가 더 흥미진진했다. 어른들은 춤 추고 댄서들을 동원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들까지 총동원했는데, 김다현과 김수빈은 노래로만 승부했다. 두 아이의 발성과 호흡, 가사 전달력은 아무 데도 나무랄 곳이 없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이미 유명한 사람들인 심사위원들은 부끄러웠을 것이다. 저 열 몇살짜리들보다 자신들의 노래가 그다지 나을 게 없기 때문이다.

첫 무대인 아이돌 출신 강혜연과 발라드를 오래 불렀다는 나비의 무대부터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강혜연은 김지애의 1980년대 곡 ‘물레야’를 택했는데, 그녀의 탁성은 김지애보다도 더 이 노래에 어울리게 들렸다. 나비는 ‘대전 블루스’를 불렀고 그녀의 창법은 블루스 정통의 그것에 충실했기 때문에 트로트를 간판으로 내건 이 프로그램에서 불리할 것으로 생각됐다. 이 프로그램은 다른 장르까지 더 잘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 같았지만, 나비의 블루스는 강혜연의 상품성을 이기지 못했다. 가혹한 일이다. 조영수나 장윤정 같은 심사위원들은 저 출연자가 팔릴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백건우가 아니며 유키 구라모토에 가깝다.

지난 주 진달래에 이어 느닷없이 별사랑이 다리를 다친 채 무대에 나왔다. 왜 노래 경연에서 다리를 다치는 것일까. 노래만으로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리 다칠 줄 모르고 얼마나 많은 안무를 준비했을까. 별사랑은 다리를 찢고 요가 자세를 보여주면서 선택됐다. 그가 노래한 곡 가사도 “한 방에 훅 가는 게 청춘이더라”였다. 이것은 음악의 본질이 아니다. 이미자 선생이 왜 그토록 ‘트로트’나 ‘뽕짝’이란 단어를 거부하는지 알 것 같았다. 트로트는 박자나 창법에 머무는 장르가 아니다. 나는 그녀의 성실함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경연이 그녀의 발목을 다치게 했다는 점을 슬퍼했다.

‘진짜진짜 좋아해’를 부른 김사은 노래 후반에서 사운드보다 영상이 아주 미세하게 늦은 딜레이 실수가 일어났다. 이것은 녹화해서 편집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치명적인 잘못이다. 아무리 방송 편집이 지옥의 작업이라고 해도 이런 잘못은 일어나서는 안된다. 라이브 공연에서 이런 실수는 ‘마가 생겼다’고 표현한다. 예를 들어 가수가 곡을 끝내면서 마이크를 하늘로 쳐들고 동작을 멈추면 1초 내로 조명이 꺼져야 하는데, 그 조명이 2초 이상 늘어지면 어색해진다. 어젯밤 미스트롯엔 ‘마’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김사은이 “나는 몰랐네”를 “나은-을랐네” 하는 식으로 부른 것에 대한 장윤정이 지적했는데, 사운드 딜레이 때문에 너무 명백하게 보였고, 그 지적은 타당했다.

아홉살 김태연의 노래는 감탄할 만했다. “가야…한대요” 하는 첫 부분은 강으로 시작해 약으로 이어가는 트로트의 전형적인 도입부다. 흔한 만큼 쉽게 부를 수 없다. 장음에서 입술을 떨어 비브라토를 만드는 것도 그렇고 노래 마무리에서 악보와 다른 박자를 만들어 즉흥 연주를 하는 것도 그렇고, 이 친구는 보통 재목이 아니다. 심사위원들도 11대 0으로 김태연을 밀어줬다. 김태연과 맞붙은 임서원은 춤을 추면서 쉽지 않은 노래를 했는데 상대가 김태연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이겼을 것이다. 마돈나는 물론이고 비욘세도 댄스가 격한 노래를 부를 때는 예외 없이 립싱크를 한다. 립싱크 엔지니어링 기술은 관객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교해서, 이번 마디는 라이브로 하고 다음 마디는 립싱크를 할 수 있을 정도다. 관객들은 기술 앞에서 매번 속고 있다. 그럴 수 없었던 임서원은 모든 마디를 라이브로 했기에 격한 춤을 추면서 호흡이 가빠졌고, 그것은 자신이 생각했던 단점으로 귀결됐다.

김연지와 마리아의 경연에서 나는 마리아를 응원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마리아 같은 사람은 포기하기 어려운 출연자다. 그녀는 트로트의 문법을 80% 이상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쌀쌀맞은 심사위원들은 수능 시험 채점자처럼 김연지를 선택했다. 이후 어떤 패자부활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마리아처럼 한국 대중음악을 잘 이해하는 외국인을 최종 무대까지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 대부분이 주현미의 음악을 소화할 수 없다. 놀랍게도 마리아는 그걸 잘 알고 있다. 주현미 음악을 가마솥에 넣고 끓여 그 사골 국물을 빼먹고 있는 외국인이 마리아인 것이다. 나는 마리아를 응원한다.

‘미스트롯’은 함부로 지나치기 어려운 매력을 갖고 있다. BTS와 빅뱅과 박진영과 댄스와 온갖 멋져보이는 젊은 아이들이 독점해버린 음악계 어딘가에, 여전히 노래 잘 하고 심금을 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는 저 처음 보는 얼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여전히 노래가 우리 삶의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000만명이 매주 목요일 밤 이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이유도 바로 그것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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