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대통령에게서 나라 지켜야 하는 미군들

김태훈 논설위원 2021. 1. 15.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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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각) 미 의회에서 누워서 쉬고 있는 미군들 /EPA 연합뉴스

미국에서 벌어지리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못 했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엊그제 미 워싱턴 의사당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총을 든 군인들이 의사당을 완전히 둘러싸고 지켜야 했다. 의사당 안에서는 많은 군인들이 복도와 로비에 드러누워 쉬거나 잠을 잤다. 미국 주 방위군이다. 현장을 지켜본 기자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다. 군인들이 빈 라덴이 아닌 미국 대통령에게서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여기에 있다”고 개탄했다. 미국 대통령에게서 미국을 지키기 위해 동원된 군인 숫자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에 파병된 군인보다 많다고 한다.

▶주 방위군은 ‘내셔널 가드’라고 불린다. 연방 소속 미군과 달리 지역의 치안 유지를 맡지만, F22 전투기와 스텔스 기능을 갖춘 B2 전략 폭격기 등 막강 화력을 지녔다. 1,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베트남전, 걸프전, 아프간·이라크전에도 참전했다. 이런 군대가 자국 대통령에게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중무장하고 의회에 진주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러스트

▶이 사태는 트럼프의 대선 불복 지지 시위대가 미 의사당을 점거하는 난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5명이 사망했다. 트럼프가 펜스 부통령을 비난하자 트럼프 지지자들이 “펜스를 목매달자”며 의회를 헤집고 다녔다. “펠로시 하원의장을 죽이겠다”는 문자를 날렸다가 체포된 이도 있다. 난동 현장에 있던 의원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했다.

▶대통령 취임식이 다가오면 미 의사당 주변에 경찰과 주 방위군이 배치된다. 오바마 때도, 트럼프 때도 그랬다. 링컨 취임식 때는 노예 해방 반대파들이 “워싱턴에 도착하기 전에 암살하겠다”는 협박 편지를 보낸 적도 있다. 워싱턴 치안을 담당했던 육군 사령관이 의사당에 무장 병력을 배치하고 “누구든 손가락 하나라도 쳐드는 자가 있으면 대포알을 먹여 지옥에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조치였지 대통령에게서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전역에서 무장 공격을 벌일 것이란 첩보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제 민주주의는 잘못된 지도자를 만났을 때 어이가 없을 정도로 취약해진다. 트럼프가 얻은 7400만표에 눌린 많은 공화당 의원은 트럼프가 “우리는 의사당으로 간다. 죽기살기로 싸우지 않으면 우리는 더 이상 나라를 가질 수 없다”고 선동하는 데도 그를 꾸짖지 못했다. 그래도 10명의 공화당 하원의원이 트럼프 탄핵에 찬성했다. 이런 용기가 미국을 다시 일으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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