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린의 로컬리즘] "온라인에 질렸다" 우리 동네 가게가 '로컬화'로 진화한다

모종린 연세대 교수·‘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 저자 입력 2021. 1. 15. 03:06 수정 2021. 1. 1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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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 익숙해지고 생활반경 좁아진 소비자들
코로나 이후에도 '온·오프 융합' '동네 소비' 요구
공유 사무실된 日커피숍, 지역 명소로 변신 美호텔..
'동네 사랑방' 모델, 글로벌기업 포스트 코로나 전략
오프라인 기업 활로, 생활권 중심 로컬화서 찾아야

많은 트렌드 리포트의 예측과 달리 ‘오프라인의 귀환’은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 백신 접종의 효과가 기대한 대로 나오면, 2021년 하반기에는 기업들이 포스트 코로나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에 대한 피로감도 오프라인 회귀 가능성을 높인다. 코로나 1년의 의식주 생활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온라인에 질렸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오프라인이 코로나 전의 과거로 돌아간다는 말은 아니다. 오프라인의 미래는 코로나 시대의 경험을 기반으로 진화할 것이다. 코로나 위기의 교훈은 공간 위생과 쾌적성, 디지털 전환, 동네 경제의 중요성이다. 안전 의식이 높아지고 온라인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소비자는 코로나 이후에도 공간 안전과 온라인-오프라인 융합을 요구할 것이다. 코로나 위기로 생활 반경이 좁혀지면서 늘어난 동네 소비도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일러스트=백형선

이 중 오프라인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주목해야 하는 트렌드가 소비의 로컬화다. 로컬 지향은 코로나 위기 전인 2010년 경에 골목 상권, 제주 이민, 장소애, 고향 귀환, 귀농·귀촌 등 다양한 형태로 출현했다. 도시 안의 대표적인 로컬 지향 현상이 동네 소비와 직주 근접 선호다. 2018년에 이미 서울에서 같은 자치구에서 일하고 거주하는 직장인 비율이 50%를 넘어설 정도로 밀레니얼 세대는 직장과 가까운 곳에서 살기를 원한다. 대중교통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진 코로나 시대에 ‘직(職)·주(住) 근접'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 밀레니얼 세대의 주택 구매를 부추긴 요인 중 하나다.

도시 구조가 직주 근접 생활권 중심으로 재편된다면, 정부는 일자리를 생활권으로 분산하고 그곳에 새로운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생활권 완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 상권이다. 스타벅스가 위치한 동네를 의미하는 ‘스세권'의 부상이 말해 주듯이, 상업 시설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오프라인 기업은 생활권 중심의 로컬화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의 로컬화 전략이 그 방향성을 제시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기술과 디자인 기반의 브랜드가 넘치는 상황에서 로컬화로 다른 기업과 차별화한다. 인터넷, 소셜미디어 등 새로운 기술이 로컬화 비용을 낮춘 것도 로컬화가 용이해진 요인이다. 최근 부상하는 로컬화 모델은 ‘동네 사랑방’이다. 동네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소통하는 플랫폼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일본 전역에 콘셉트 스토어 15곳을 운영하는 스타벅스가 대표적이다.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 지역의 문화재 건물을 매입하거나 그 안에 입점하는 것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건축물에 입점하는 매장이 콘셉트 스토어다. 스타벅스 콘셉트 스토어는 이를 찾아다니는 여행자가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도쿄 긴자에 개장한 스타벅스 서클스(Circles) 매장은 사무 공간 공유 업체 ‘싱크 랩(Think Lab)’과 협업으로 쾌적한 사무 공간처럼 꾸며졌다. 지역의 플랫폼이 되려는 기업의 노력이 아예 매장 안에 1인실 중심의 코워킹 스페이스를 조성하는 수준으로 확장한 것이다.

미 포틀랜드에 본사를 둔 에이스호텔의 로컬 플랫폼 전략은 커뮤니티 호텔이다. 이 호텔은 널찍한 로비에 커다란 테이블과 편안한 소파를 배치한다. 숙박객과 주민이 호텔에서 편하게 대화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입지 선정도 남다르다. 의도적으로 목이 좋거나 접근성이 뛰어난 곳은 피하고 낙후 지역의 유서 깊은 건물을 찾는다. 포틀랜드에서는 1912년 지어진 건물의 구조를 살린 채 복원하고 피츠버그에서는 낙후 지역의 오래된 YMCA 건물을 선택했다. 호텔 시설도 로컬을 지향한다. 객실을 지역 예술가와 협업해 디자인하고 편의용품을 로컬 브랜드로 공급해 지역 문화와 어우러진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지 문화를 경험하고 현지인처럼 살고 싶은 여행자에게 최적화한 호텔이다.

일본의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는 로컬 브랜드 편집숍으로 로컬 플랫폼을 구축한다. 각 지역에서 오래도록 사랑받은 물건,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소비재 제품을 ‘롱 라이프 디자인’으로 정의하고 그런 제품만 편집해 파는 기업이다. 창업자 나가오카 겐메이는 2000년 도쿄에서 창업한 후 일본 곳곳에 지점을 내고, 한국의 이태원과 제주에서 해외 매장을 열었다. 한국에서도 한국의 오래된 브랜드를 수집한다. 각 매장은 롱 라이프 디자인을 즐기는 지역 주민이 모여 소통하고 즐기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정기적으로 주민과 고객이 모여 지역의 정체성과 가치에 대해 토론하거나 지역에서 새롭게 발굴된 물건을 소개하는 세미나를 연다.

생활권 중심의 로컬화는 삶의 질을 중시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오프라인을 지배하는 트렌드가 될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과 로컬 크리에이터는 글로벌 대기업과 같이 공간 혁신으로 로컬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공간 혁신의 목표는 지역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지원하는 동네 사랑방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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