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40] 'K숟가락 얹기'는 제발 그만

양지혜 기자 2021. 1. 1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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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사한 불펜투수 연봉은 짠물
감독엔 3년 20억 퍼주기
고생한 사람 따로 생색 따로
'K숟가락질'도 악질 유행병

불펜 투수는 마취과 의사를 닮았다. 중요하지만 별로 기억되지 않는다.

KT위즈 7년 차 불펜투수 주권(26) 별명은 ‘또권(또 주권)’이다. “또 나와서 어떡하냐”는 야구 팬들의 탄식이 담겼다. KT 창단 멤버인 그는 지난해 정규시즌(144경기) 절반이 넘는 77경기에 나와 31홀드(평균자책점 2.70)를 기록해 ‘홀드왕’이 됐다. 이강철 KT 감독은 그가 “필승조이자 추격조인 투수”라면서 이기든 지든 내보냈다. 투수 어깨는 한 번 닳으면 끝인 타이어 신세이건만, 감독은 마모 없는 타이어처럼 그를 다뤘다. KT는 그가 1~2점 차 박빙 승부마다 지켜준 승리를 끌어모아 창단 첫 정규시즌 2위를 했다.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1~4차전에도 그는 다 나왔다.

/일러스트=박상훈

자타 공인 KT 투수 고과 1위 주권은 올겨울 연봉 협상에 자신 있게 임했다. 지난해 1억5000만원 받았던 그는 2억5000만원을 원했다. 잦은 등판으로 누적된 피로, ‘주자 장작’을 넘겨받고 시작하는 부담감, 계투진의 헌신은 덜 부각되는 쓸쓸함 등을 이겨낸 성과여서 저 정도 받을 자격은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구단은 “컴퓨터로 산정한 결과”라며 2억2000만원을 내밀었다. 3000만원 간극은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땀 값을 제대로 보상받고 싶었던 주권은 며칠 전 ‘5%의 싸움’을 선택했다. KBO에 연봉 조정을 신청한 것이다. 지금껏 KBO 연봉 조정에서 선수가 이긴 사례는 20번 중 단 한 차례(2002년 LG 류지현)뿐. 11년 전 타격 7관왕 했던 이대호도 당시 롯데와의 ’7000만원' 조정 싸움에서 졌다.

반면 이강철 감독은 정규 시즌이 다 끝나기도 전에 KT와 ‘3년 20억원’에 재계약했다. 류중일 감독이 삼성에서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하고 LG로 옮길 때 ‘3년 21억원’ 받았고, LA 다저스의 5년 연속 지구 우승과 32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데이브 로버츠 감독 연봉이 110만달러(약 12억원)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우승 트로피도 없는데 엄청난 파격이다. 농사는 KT 선수단이 다같이 땀흘려 지었는데, 감독이 한 숟가락 퍼가고 나니 선수들 먹을 밥은 확 준 모양새다. 그마저도 소금 맛이 난다. 이건 아무리 봐도 ‘K숟가락질’이다.

K숟가락질은 코로나 못잖은 악성 유행병이다. 지난 겨울 대구는 의료진과 시민이 똘똘 뭉쳐 코로나 위기에서 회복하는 기적을 일궜다. 마스크조차 턱없이 모자랐는데 동산병원을 노아의 방주 삼아 일어섰다. 정부와 여당은 여기에 숟가락을 얹었다. ‘대구 코로나’라고 조롱하던 자들이 태도를 바꿔 ‘K방역’을 떠들어댔다. 코로나와 진짜로 싸운 사람들은 악착같이 마스크 쓴 시민과 의료진, 그리고 정부의 방역 지침을 묵묵히 따랐던 소상공인들이다. 헬스장, 노래방, 당구장, 학원, 카페 등 셀 수 없는 가게 주인들이 텅 빈 매출 장부에 절망하고 따박따박 날아오는 세금 고지서에 짓눌리다가 이웃의 안전을 위해 차마 가게 문은 못 열고 숨죽여 울었다. 그사이 정부는 병상 확보나 백신 구매 같은 기본조차 소홀했고 검찰 개혁만 24시간 읊어대며 허송세월했다. 이제는 이들이 피 흘린 만큼 보상해달라고 절규하는데 정부는 마땅한 답이 없다.

노력하고 희생한 만큼 보상이 주어진다는 확신이 있어야 개인은 꿈을 갖고 사회는 비전을 품을 텐데, 이 나라는 반대 방향으로 간다. 한국이 지구의 중심인 것처럼 온갖 것에 K딱지를 붙이고 K찬양가를 불러 젖히기 전에 뻔뻔한 K숟가락질부터 어서 박멸되기를. 새해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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