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선비의 풍모[이준식의 한시 한 수]〈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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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벼루 씻는 연못가에 매화나무, 꽃 핀 자리마다 옅은 먹 자국.
매화 송이송이마다 옅게 먹 자국이 배어 있다고 했으니 시는 그림 속 광경을 묘사한 것이 분명하지만, 옛 선비들이 곧잘 매화를 곁에 두고 즐겼으니 연못가 매화나무라는 실경(實景)을 읊은 것이라 봐도 되겠다.
평소 얼마나 서예 공부에 열중했던지 그들이 연못가에서 글씨 연습을 할 때면 먹 갈고 붓 씻느라 연못물이 온통 새까맣게 변할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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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그 고운 빛 자랑하지 않아도 맑은 향기 오롯이 온천지에 넘쳐나네.
(吾家洗硯池頭樹, 箇箇花開淡墨痕. 不要人誇好顔色, 只留淸氣滿乾坤.)
―‘먹으로 그린 매화(墨梅)’ 왕면(王冕·1310∼1359)
자신이 그린 ‘묵매도(墨梅圖)’에 시인은 시 한 수를 담았다. 이처럼 그림의 여백에 더러 그림에 걸맞은 시를 써넣기도 했는데, 이를 제화시(題畵詩)라 한다. 그림을 시적 제재로 삼아 화가가 직접 소회나 창작 배경을 밝히기도 하고, 때론 제삼자가 그림에 대한 비평이나 감상을 적기도 한다. 제화시는 동양화가 시·글씨·그림(詩書畵)을 한데 아우르는 종합예술이라는 걸 잘 보여준다. 매화 송이송이마다 옅게 먹 자국이 배어 있다고 했으니 시는 그림 속 광경을 묘사한 것이 분명하지만, 옛 선비들이 곧잘 매화를 곁에 두고 즐겼으니 연못가 매화나무라는 실경(實景)을 읊은 것이라 봐도 되겠다. 담묵(淡墨)으로 그려진 매화이기에 화려한 자태를 뽐내거나 억지로 주변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의 찬사를 구걸하지 않고 맑은 향기로 은은히 천지를 적실 따름이니, 자신을 과시하지 않아도 저절로 고결함이 우러나는 선비의 풍모가 바로 이런 모습이리라.
‘벼루 씻는 연못’은 서예의 대가인 후한(後漢) 장지(張芝)와 훗날 그를 본보기로 삼아 공부했던 동진(東晉) 왕희지(王羲之)와 연관이 있다. 평소 얼마나 서예 공부에 열중했던지 그들이 연못가에서 글씨 연습을 할 때면 먹 갈고 붓 씻느라 연못물이 온통 새까맣게 변할 정도였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성어가 ‘임지학서(臨池學書·연못으로 가서 서예를 익히다)’인데 각고의 노력으로 서예를 연마한다는 뜻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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