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결국은 미국이 필요한 김정은체제
[경향신문]
최근의 한반도 정세는 북한 노동당 제8차 대회 관련 소식이 대내외적으로 많은 관심과 화제를 만들었다. 알려진 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 당 대회를 통해 아버지 김정일의 직위였던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되었다. 반면 동생 김여정은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제외되었다. 당 중앙위 위원 명단에는 여전히 이름이 올라있다. 하지만 당 직책이 종전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에서 부부장으로 강등이 확인된 것도 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이번 북한 노동당의 주요 당직 인사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점은 북한 외교의 미국통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당 중앙위원회 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강등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중국통인 김성남 당 국제부 제1부부장은 당 국제부장으로 승진한 사실이다. 이에 대해 북한이 대미 외교라인에게 핵 협상의 정체에 대한 책임을 묻는 동시에 실익을 얻어내기 어려운 미국보다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려 한다는 해석이 많이 나타났다.
북·중 간 분위기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는 모습이다. 지난 1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김정은에게 “노동당의 최고 영도자로 또다시 추대된 것”을 축하하고 중국과 북한의 친선과 협조를 강조하는 축전을 보냈다. 다음날인 12일 북한의 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은 이를 함께 보도했다. 김정은은 12일에 답전을 보내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북한 노동당 제8차 대회에 제일 먼저 축전을 보내왔고,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노동당 총비서에 오른 자신에게 제일 먼저 축하를 보내온 것이 자신과 전체 노동당원을 감동시켰다며 사의를 표했다.
북한의 당 대회 기간에 나타난 북·중관계는 마치 우애로운 형제 같아 보였다.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점차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략적 완충지로서의 역할을 하는 북한이 필요하다. 북한 또한 미국과의 핵 협상이 정체되고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협력과 지원은 필수적이다.
실제로 북한의 경제 상황은 중국과의 협력을 더욱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북 제재의 효과에 대해 많은 논쟁이 나타났다. 하지만 최소한 현재의 북한 경제는 대북 제재, 코로나19, 자연재해의 3중고로 인해 김정은이 이번 당 대회의 개회사에서 실패를 시인할 정도로 좋지 않아 보인다. 미국이 정권교체기에 들어가고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상황의 지속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이 증가해가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중국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한국 내 일각에서는 중국을 움직여 경직된 남북관계의 활로를 찾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북·중관계의 본질과 북한이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이유를 다시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수사학적 용어로 포장된 표면과는 다르게 최근까지 수면하의 북·중관계는 경색되어 있다. 중국은 어려움을 마주한 북한에 대해 김정은체제가 유지될 최소한의 지원만을 제공해왔다. 앞으로도 말잔치가 아닌 실질적인 지원이 증가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미국으로부터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바쁜 중국은 북한으로 인해 미국과의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을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북한이 경쟁하고 갈등하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펼치는 특유의 ‘시계추 외교’를 잘 이해하고 있다. 북한은 냉전 시기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최근에는 미·중을 사이에 두고 계속해서 시계추 같이 오가며 생존과 이익의 극대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경험’ 많은 중국은 자신의 방식대로 북한을 다루고 있다.
현재 북한의 입장은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자력갱생’을 외칠 수밖에 없는 곤고한 상황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 중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지만 그렇다고 중국에 올인할 수도 없다. 강대국에 과도하게 의지하는 순간 김씨체제가 자랑하고 내세워온 주체사상과 자주외교가 무너지고 강대국의 영향력에 함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경제적으로 중국에 과도하게 기울어져 있는 북한은 표면적인 반미 외침과는 다르게 궁극적으로는 미국과의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을 모색할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겉으로 들어난 북·중관계의 모습보다는 본질을 살피고 북한의 강대국 외교를 다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북한을 설득하는 한편 북·미 대화의 ‘촉진자’ 역할을 차분히 준비하며 북한을 다루어야 한다. 때로는 북한의 요구와는 역으로 한·미 동맹의 신뢰 강화를 통해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장 서는데 장돌뱅이가 안 가느냐”…조기 대선 출마 공식화한 홍준표
- ‘계엄 특수’ 누리는 극우 유튜버들…‘슈퍼챗’ 주간 수입 1위 하기도
- “비겁한 당론은 안 따라”···김상욱·김예지·조경태·한지아, 헌법재판관 선출안 표결 참여
- 오세훈, 윤석열 탄핵·수사지연 “옳지 않다”…한덕수에 “당당하려면 헌법재판관 임명”
- [Q&A]“야당 경고용” “2시간짜리” “폭동 없었다” 해도···탄핵·처벌 가능하다
- [단독]김용현, 계엄 당일 여인형에 “정치인 체포, 경찰과 협조하라” 지시
- 혁신당 “한덕수 처, ‘무속 사랑’ 김건희와 유사”
- 병무청, ‘사회복무요원 부실 복무’ 의혹 송민호 경찰에 수사 의뢰
- ‘믿는 자’ 기훈, ‘의심하는’ 프론트맨의 정면대결…진짜 적은 누구인가 묻는 ‘오징어 게임
- 박주민 “어젯밤 한덕수와 통화···헌법재판관 임명, 고민하고 있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