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의 대(對)중국 최종병기 철광석

김동인 기자 2021. 1. 15.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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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철광석 수입량 가운데 60%가 오스트레일리아산이다. 양국의 무역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철광석 가격이 치솟았다. 1980년대 오일쇼크 당시와 같은 자원의 무기화가 재현될 수 있다.
ⓒAFP PHOTO2015년 5월24일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필바라 지역의 철광석 채굴 현장.

그해 남반구의 봄기운은 따뜻해 보였다. 2014년 11월1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에 위치한 연방의회를 찾아 “(중국이) 평화로운 발전을 추구하려는 결심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연설했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G20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시 주석을 국빈으로 대우했다.

이날 두 나라는 자유무역협정(FTA)까지 체결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농·축산물을 비롯한 주력 수출품을 관세 없이 중국에 팔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은 전략 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며 자국민을 보다 자유롭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일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때만 해도 넓은 영토를 품은 두 나라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가 장기적으로 계속되리라 예상되었다. 하지만 이 관계는 6년 만에 최악으로 치닫는다.

2020년 4월21일, 스콧 모리슨 오스트레일리아 총리가 미국과 독일, 프랑스 정상을 만난 자리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에 파열음이 거세게 일었다. 중국은 즉각 반발하며 무역 보복을 감행했다. 같은 해 5월11일 중국이 오스트레일리아 육류 가공업체 4곳으로부터 수입을 금지하면서 양국 간 불화는 본격화됐다. 5월18일에는 중국 상무부가 오스트레일리아산 보리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때부터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요 1차 산업 수출품이 중국 항구에서 발이 묶였다. 석탄과 면화에서 목재와 랍스터까지 규제 품목이 확대되었다. 중국에서 인기를 끌던 오스트레일리아산 와인 역시 수출길이 막혔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직후 한국이 겪은 무역 압박과 유사하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인 수입 금지를 발표하지는 않지만, 특정 품목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수출길이 막히며 민간 기업이 애를 먹는 방식이다.

양국 정치인 사이에 상식을 뛰어넘는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2020년 11월30일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트위터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자오 대변인은 자신의 트위터에 오스트레일리아 군인이 아프가니스탄 어린이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합성 이미지를 올렸다. 가짜 합성 이미지였지만 오스트레일리아 특수부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지른 불법행위를 꼬집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림 내용이 잔혹한 데다 외교부 대변인이 특정 국가에 대한 혐오감이 담긴 이미지를 개인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린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스콧 모리슨 오스트레일리아 총리까지 나서 “끔찍한 비방”이라고 대응할 정도였다.

두 나라의 영토 크기는 엇비슷하지만 인구와  경제력은 비교하기 어렵다. 주요 외신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중국의 무역분쟁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묘사하곤 한다. 경제적 피해도 오스트레일리아 쪽이 더 크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대(對)중국 수출은 전체 수출량의 38%(2019년 기준)를 차지한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내총생산(GDP)의 7% 수준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지난해 6월 오스트레일리아 통계청 데이터를 재구성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두 나라의 총 교역액은 2277억 오스트레일리아 달러(약 190조원)다. 이는 2위 일본(780억 달러, 약 66조원), 3위 미국(507억 달러, 약 42조원), 4위 한국(373억 달러, 약 36조원)을 압도하는 수치다. 오스트레일리아 입장에서는 당장 중국 외의 다른 나라로도 수출량을 늘리는 무역 다변화를 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AP Photo2014년 11월17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마친 시진핑 주석이 토니 애벗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의 예고편 될 수도

무역분쟁이 발생할 경우 대표적인 대응 방법이 바로 맞불작전이다. 여기서 의외의 카드가 등장한다. 바로 철광석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전 세계에서 철광석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다. 중국과 밀접한 철광석 공급·수요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중국의 철광석 수입량 가운데 60%가 오스트레일리아산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철광석 수출량의 80%가 중국으로 향한다. 철광석 가격이 오르면서 중국 내부에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2020년 7월2일 1t당 84.29달러(미화)였던 철광석 가격은 2020년 12월21일 현재 174.32달러(미화)까지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마켓인덱스, marketindex.com.au). 철광석 가격은 한동안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이후 건설 및 제조업 경기 회복에 나선 중국으로서는 주요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 상승이 반가울 리 없다.

대안으로 꼽히는 브라질산 철광석도 공급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2020년 6월엔 세계 최대 철광석 생산업체인 브라질 발레(Vale) 사의 광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산에 비해 브라질산 철광석은 운송거리가 멀어 중국 처지에서는 섣불리 수입처를 바꾸기 어렵다.

두 나라의 무역분쟁이 ‘철광석 수입 제재’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사재기’도 발생했다. 세계 최대 철광석 수출 항만 지역인 오스트레일리아 필바라에서 사이클론 경보가 내린 것도 연말 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중국 내부에서는 반발이 일고 있다. 중국강철공업협회(CISA)는 ‘철광석 가격 급등이 지나치다’며 오스트레일리아 철강회사들이 공급량을 제한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중국은 아프리카 기니 지역에 직접 투자를 통해 철광석 수입처를 다변화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채굴은 어렵기 때문에 이마저 대안은 되지 못한다. 지난 12월3일 영국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기니 지역에 매장된 철광석을 채굴하려면 최소 5년에서 최대 10년까지 소요될 전망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입장에서는, 철광석이 중국에 대응할 수 있는 일종의 ‘최종 병기’인 상황이다. 대중 수출량이 감소하더라도 철광석 가격이 오르면 자국의 손실 규모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반면 중국은 철광석 가격이 지금처럼 오를 경우 제조업 전반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2020년 12월 말 현재까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철광석을 무역분쟁 카드로 활용하는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다만 일부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철광석 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점점 힘을 얻고 있다. 1980년대 오일쇼크 당시 중동 국가들이 자원을 무기로 활용했던 상황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2021년에 재현될 수 있다.

갈등이 당장 봉합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난 12월28일 〈가디언〉은 세계보건기구 집행이사회 멤버인 오스트레일리아가 코로나19 발원지 조사 중간보고서 제출을 앞두고 ‘강력하고 독립적이며 포괄적인(robust, independent and comprehensive)’ 국제조사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중국으로서도 강경 대응을 당장 멈추긴 어려워 보인다. 오스트레일리아와의 무역분쟁은 미국과 그 주변 동맹국을 상대로 한 대리전 양상을 띤다. 향후 중국이 상대할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가와의 외교적 협의를 통해 중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무역 갈등은 훗날 미·중 무역 갈등의 예고편이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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