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위한 선물을 샀다가 시작된 사업

유럽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대표하는 것은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보통은 마을의 가장 큰 광장에 천막을 치고, 11월 말부터 12월 넷째 주까지 점포가 들어선다. 파는 물건들은 지역별 크리스마스 먹거리를 비롯해, 서로에게 선물하거나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하면 좋을 법한 것들까지 다양하다. 원래 독일어를 쓰는 지역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탁재형 제공독일 로텐부르크에 위치한 크리스마스 명소 ‘케테 볼파르트’ 장난감 가게.

크리스마스 마켓의 본고장 독일에서 크리스마스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도시를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로텐부르크를 말할 것이다. 타우버 강가에 위치한 이 아담한 중세도시를 크리스마스 명소로 만든 것은 ‘케테 볼파르트’라는 이름의 장난감 가게다. 이 가게를 찾는 것은 매우 쉽다. 그리 넓지 않은 로텐부르크 중심가에서, 선물을 가득 실은 1930년대풍의 버스가 정문 앞에 주차되어 있는 곳을 찾으면 된다. 별로 크지 않아 보이는 외관과 달리,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내부가 무한히 확장되는 마법의 세계에 오기라도 한 듯한 인상을 받는다. 넓게 펼쳐진 공간 안에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는 물론이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크리스마스 선물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트리 장식과 호두까기 인형을 비롯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손으로 깎은 목제 장난감이 선반을 가득 메운다. 사실 이 케테 볼파르트는 독일 전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까지 지점이 있는 회사다. 하지만 그 시작에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친구가 좋아할 법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던 가난한 부부가 있었다.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구현된 크리스마스 정신

1963년 케테와 빌헬름 볼파르트 부부는 친하게 지내던 미군 장교 가족을 집으로 초청해 크리스마스 저녁식사를 했다. 집에 온 미국인들이 빌헬름이 고향에서 가져온 오르골(뚜껑을 열면 자동으로 음악이 연주되는 상자)에 큰 관심을 보이자 그는 비슷한 것을 구해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오르골 장수를 찾아갔지만 그는 이미 선물용 오르골을 창고에 다 집어넣어버린 후였다. 창고를 다시 뒤지도록 부탁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열 개는 사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미군 장교에게 한 개를 선물하고 아홉 개를 떠안은 빌헬름은 손해를 벌충하려고 이것들을 팔아보려 했다. 크리스마스도 지나버렸는데 이런 것들을 사줄 사람은 현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밖에 없었다. 행상을 나갔다가 미군기지 경비병에게 붙잡히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지만, 행운이 뒤따랐다. 그를 체포한 경비병이 부인 선물용으로 오르골을 구입하기로 하고, 다른 군인들을 상대로 판매하는 바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주선까지 해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선물 가게에 그는 아내인 케테의 이름을 붙였고, 이렇게 시작된 사업은 현재 연 매출 2200만 달러가 넘는 체인점으로 성장했다. 독일판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분위기는커녕 이대로라면 설 명절까지도 친지들을 못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 속에서 지나쳐버렸다. 그렇다고 이웃을 생각하고 서로가 품은 온기를 나누는 크리스마스의 정신까지는 잊지 말자.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났던 기적을 기억한다면 조금은 더 가벼운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 이번 호로 ‘여행 한 컷’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하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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