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5일 아황산가스에 먼지까지..극심했던 서울의 대기오염 [오래 전 '이날']

김기범 기자 2021. 1. 1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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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30년 전인 1991년 1월 15일 경향신문에는 ‘서울 대기오염 황색 경보 - 런던형 스모그의 초기 형태 겨울안개 쇼크’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서울의 심각한 대기오염이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기사를 아래에 옮겨 보겠습니다.

1991년 당시 서울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최근 서울의 대기오염 정도가 숱한 인명 피해를 낸「런던스모그」의 초기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이 확인되어 공해가 시민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그동안 서울 등 대도시 대기오염의 심각성은 그동안 서울의 아황산가스 농도가 내리 10년째 장기환경기준 0.05ppm을 넘어서고 있으며 산성비·산성눈 등이 계속 관찰됨으로써 숱하게 지적돼 왔다.

그러나 겨울철 서울의 대기가 안개 낀 것처럼 뿌옇게 흐린 날이 많은 이유는 바로 기상조건과 대기오염이 결합해 생겨난 것으로 런던형 스모그 현상임이 밝혀져 매우 충격적이다.

환경처는 서울에서 자주 짙은 안개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규명키 위해 지난해 11월 1일부터 45일간 서울 송파구 잠실동을 대상으로 기상상태와 대기오염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는 서울 상공에 자주 끼는 안개가 공해 때문이며 몸에 해로운 것이란 사실이었다. 습도가 높고 지표면 근처에서 기온 역전이 일어나 공기가 정체되면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여기에 오염도가 높은 아황산가스와 먼지가 결합, 전형적인 런던형 스모그가 발생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환경처는 주로 이른아침 짙은 안개와 높은 대기오염도가 나타나며 이는 초겨울의 독특한 기상조건과 석탄·석유 등 난방연료의 사용 증가가 원인인 사실도 밝혀냈다. 조사 기간 45일 가운데 습도 70% 안팎, 시정(視程) 거리 4㎞ 이하이며 기온역전 온도차가 2도 안팎인 데다 대기오염물질이 지표면 가까이 축적되는 스모그 발생일은 12일로 조사됐다.

이런 날은 아황산가스와 먼지의 농도가 평소보다 훨씬 높아 지난해 11월 24일의 경우 아황산가스 0.105ppm(환경기준 0.05ppm), 먼지 192㎍/㎥등 심한 오염상태를 나타냈다.

대기오염현상인 스모그는 크게 런던형과 로스앤젤레스형으로 나눌수 있다. 런던형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번에 관찰된 것처럼 난방이 필요한 겨울철에 많이 발생하는 아황산가스 등 대기오염물질이 안개·기온역전 현상과 만나 생기는 형태이며 LA형은 주로 한낮에 낮은 습도에서 질소산화물·오존·탄화수소 등 자동차배출가스가 햇볕을 받아 발생한다.

LA형은 한가지 오염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오염물질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생기는 현상으로「광화학 스모그」라고도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여름철에 자주 나타나 역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환경처는 서울의 런던형 스모그는 주로 잦은 안개와 기온역전 현상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서울의 안개 발생 빈도가 높아진 것은 도심을 통과하는 한강이 개발로 강폭이 넓어지면서 호수화, 습기를 많이 방출하는 데다 난방시설 등에서 배출하는 수증기가 많아 습도가 높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또 도시열섬효과로 서울의 기온이 주변보다 더 높다는 점도 이유로 지적된다.

이번 조사에서 지표면과 지상 50m의 온도를 비교한 결과 짙은 스모그 현상이 나타난 날에는 거의 예외없이 기온차가 2도 안팎으로 벌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즉 시정거리가 1·1㎞로 매우 짧았던 11월 3일의 경우 습도 71%, 먼지 200㎍/㎥, 아황산가스 0.079ppm이었으며 기온역전 온도차는 2.3도로 지표면보다 50m 상공의 기온이 더 높았다. 정상적인 대기는 고도가 100m 높아질 때마다 온도가 1도씩 낮아져 지표면의 더운 공기는 올라가고 찬 공기는 내려와 대류현상에 의해 공기가 활발히 뒤섞이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역전층현상이 발생할경우에는 찬 공기를 더운 공기가 둘러싸는 형태가 됨으로써 지표면의 대기오염물질이 정체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환경처는 이같은 역전층은 지표면이 밤사이에 공기보다 빨리 식어버리는 초겨울에 집중발생, 새벽부터 한낮까지 지속돼 대기오염을 악화시킨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조사결과 산성비·산성눈에 이어 서울의 안개 역시 산성을 띤 것으로 밝혀졌다. 안개의 산도는 PH(수소이온농도) 5.2~5.4로 정상비(5.6)보다 1.6~2.5배 강한 산도를 보였다. 이같은 이유로 조사지점에서의 시정거리는 45일 가운데 64%인 29일이 7㎞ 내로 불량했고 4㎞ 이내인 날도 12일 간이나 됐다. 시정거리는 도시의 경우 10㎞, 농촌은 20㎞가 정상인 점을 감안할때 이미 서울은 회색빛의 음울한 도시로 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런던스모그는 지난 1952년 12월 5일부터 9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발생, 주로 노약자와 호흡기 질환자 4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였다. 당시 런던은 대낮에도 자동차 전조등을 켜야할 정도로 짙은 안개가 바람이 안 부는 상태에서 닷새 동안 계속됐는데 이는 가정난방용 석탄에서 발생한 매연과 아황산가스가 기온역전 현상에 의해 지표에 축적되면서 발생한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사망자 가운데는 기관지염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만성기관지염, 천식, 폐섬유증, 폐렴, 인플루엔자 등도 주요 사망 원인이었다.

환경처는 이번에 확인된 겨울철 서울의 안개는 런던형 스모그의 초기단계로 확인됐으나 그 오염도는 매우 낮아 런던에서와 같은 집단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고 밝히고 있다.실제로 런던스모그는 시정거리 20~30m, 아황산가스 0.57ppm(최고1.34), 먼지 1400~4400㎍/㎥로 수치상으로는 이번에 조사된 잠실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높다. 그러나 조사기간인 지난해 11월의 아황산가스 평균오염도가 잠실이 0.064ppm이었는데 비해 쌍문동 0.121ppm, 길음동 0.112ppm, 면목동 0.104ppm, 성수동 0.101ppm 등으로 잠실지역보다 훨씬 높았고 먼지오염도 역시 2배나 높은 곳이 많았기 때문에 결코 안심할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최근 감기 등 호흡기질환이 부쩍 늘어나고 잘 낫지 않는 것은 매연과 자동차 배기가스 등에서 나온 아황산가스·먼지가 안개층에 싸여 대기순환이 이뤄지지 않는데도 원인이 있다”면서 “이같은 호흡기질환은 악성 기관지천식, 만성기관지염 등으로 발전할 우려가 높다”고 말하고 있다.

1990년 11월 서울 잠실의 먼지 농도와 시정거리와의 관계.


이 기사의 핵심내용은 당시 서울에서 장기간 지속됐던 안개가 그냥 자연현상이 아니라 기상조건과 대기오염 등이 맞아떨어져 생긴 스모그의 일종이었다는 내용입니다. 또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아황산가스의 대기 중 농도가 기준치를 넘어섰다는 것과 현재는 미세먼지라고 부르는 먼지 역시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농도를 나타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30년 전의 이 기사는 당시의 서울 공기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는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일지도 모릅니다. 최근 7~8년 사이 포털에 올라온 미세먼지 기사에 누리꾼들이 적은 댓글만 봐도 이 같은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리꾼들의 댓글에는 “옛날엔 미세먼지 같은 게 없었는데”, “푸른 하늘이 그리워요” 같은 반응들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사실 30년 전 기사의 내용처럼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울은 물론 전국 곳곳의 도시는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당시 기사에 실린 통계를 보면 1990년 11월 1~30일 한달 동안 잠실의 먼지 농도는 대체로 120~180㎍/㎥ 사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먼지 농도가 비교적 낮은 날들도 80~100㎍/㎥ 안팎이었고, 60㎍/㎥ 아래로 내려가는 날은 없었습니다. 당시의 먼지 농도와 현재의 미세먼지 농도 기준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한달 내내 나쁨, 또는 매우 나쁨 수준의 농도가 유지된 것입니다. 누리꾼들의 댓글과는 달리 1990년대 초까지 서울의 대기질이 얼마나 좋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당시에는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등을 구분해서 측정하지는 못했고 총부유먼지라는 이름으로 공기 중에 부유하는 입자상 오염물질의 농도를 측정했습니다.

기사에 언급된 아황산가스의 경우 당시의 연평균 환경기준이 0.05로 현재의 2.5배였던 것만 봐도 얼마나 대기오염이 심각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아황산가스 농도는 현재보다 훨씬 높은 기준치를 훌쩍 뛰어넘었던 것입니다. 아황산가스는 황산화물의 일종으로 물에 잘 녹는 무색의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 불연성 가스입니다. 황을 함유하고 있는 석탄, 석유 등의 화석연료가 연소될 때 배출되며 주요 배출원은 발전소, 난방장치, 금속 제련공장, 정유공장 및 기타 산업공정 등입니다. 고농도의 아황산가스는 천식에 걸린 어른과 어린이에게 일시적으로 호흡장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고농도의 아황산가스는 호흡기계 질환을 일으킬 수 있고, 심혈관 질환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황산가스는 질소산화물과 함께 1990년대까지 한국인들의 건강을 위협했던 산성비의 주요원인 물질이기도 합니다.

또 1991년은 유연 휘발유 즉, 납이 포함된 휘발유의 사용이 금지된 지 3~4년밖에 안 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1988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유연 휘발유의 사용을 금지했고, 전국의 주유소에서는 무연 휘발유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납은 피나 뼈에 잔류하면서 신장 손상, 불임, 유산. 중추신경계 손상을 일으키는 중금속입니다. 납은 특히 어린이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물질이기도 합니다.

1987년 7월 무연 휘발유를 판매하고 있는 주유소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렇다면 이렇게 심각했던 대기오염은 어떻게 현재 점점 개선되었을까요. 우선 1988년 서울올림픽은 유연 휘발유 금지를 비롯해 대기오염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취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정부의 사대주의적 태도가 대기질 개선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또 극심한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한 오염물질 배출 관련 규제들도 시행됐습니다. 산업현장과 가정의 난방 연료를 줄인 것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덕분에 아황산가스나 납 같은 대기오염물질들은 현재 굳이 기준치를 정해놓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낮은 농도만 관측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대기오염물질들과 함께 점점 낮아졌던 미세먼지 농도는 언젠가부터 정체 상태를 보이기 시작했고, 오히려 상승하는 경우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웃나라인 중국에서 뿜어내는 미세먼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국내의 미세먼지 배출원에 대한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대기 정체 현상이 잦아지는 것도 국내에 미세먼지가 축적되기 쉽도록 만드는 조건을 만드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과학자들은 고농도 미세먼지 현상이 나타날 때의 미세먼지에 대해선 중국발, 즉 국경을 넘어온 월경성 미세먼지의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월경성 미세먼지의 영향이 미미할 때도 국내의 미세먼지 농도는 독일,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나 이웃 일본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수준입니다. 고농도 현상을 야기하는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처하는 한편 국내 미세먼지 배출원, 즉 석탄화력발전소, 제철소, 시멘트공장 등 산업체와 차량 등 생활 주변의 배출원을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규제 강화도 필요하지만 시민들의 노력도 필요한 것입니다.

2019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장재연 아주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가 말했던 미세먼지 문제 해결책으로 기사를 마치겠습니다. 장 교수는 “과거 (대기오염으로 인해) 수백, 수천명씩 죽은 미국, 유럽, 일본도 현재는 깨끗한 나라가 됐습니다. 요즘 AI, 빅데이터 같은 첨단기술로 한 거 아닙니다. 재래 기술로 다 한거에요. 당연히 줄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만 방향이 중요하겠죠. 현재의 미세먼지 프레임 자체를 엎어야 합니다. 에너지를 적게 쓰고, 넘치는 쓰레기를 태우도록 하는 소비 문화를 바꾸고, 오염물질 저감장치를 적극적으로 늘리고. 우리 주변부터 고치다보면 문제는 해결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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